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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보 May 14. 2024

슬픔이 옅어지는 방법, 기록

나의 자잘한 기록들

어머님, 둘째는 언제 예정일이라 했죠?


아, 제가 말씀을 안 드렸죠. 하, 그게... 잘 안 됐어요


딸아이 어린이집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고 노력했던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알릴만한 사람은 다 알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알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구나...

이후의 대화는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 진심 어린 위로에 삼켰던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속으로 외치며 눈물꼭지를 잠그느라 여념이 없었다.

 

둘째는 3월 중순쯤 임신 10주 경에 계류 유산이 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고, 동안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 심했다. 이것저것 하겠다고 무리하며 움직였던 나를 책망하며 '~않았더라면' 생각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슬픔의 무게에 비해 둘째에 대한 생각을 제법 빨리 떨칠 수 있었는데

생각지 못한 진심 어린 위로 덕분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30분 동안 위로를 해주셨다.

나의 첫 째를 받아준 의사 선생님이자 항상 예약이 꽉 차있는 저명한 의사 선생님이다.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내가 딱해서인지 자신의 경험담과 많은 위로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같이 안타까워해 주시모습을 보고 , 의사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만 치료를 해주는 게 아니구나. 마음속 상처까지 치료해 주시는 모습에 조금은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슬플 텐데 나를 위로하느라 내색하지 못한 남편.

보양식으로 위로해 주시는 엄마와 어머님.

대신 울어주던 친구.

슬픈 생각 들지 않게 매일 전화해 주던 또 다른 친구.


고마움슬픔 모두 기록했다.

기록을 하면 신기하게도 고마움은 진해지고, 슬픔은 옅어진다.

나는 감정일기를 따로 만들어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으면 끄적.


내 서재에는 다이어리, 3년 일기(감사일기), 감정일기 노트, 드로잉 노트(잘 안 쓰지만)가 놓여있다.

다이어리는 내 일정과 하루 공부한 내용을 적는 용도이며, 3년 일기는 말 그대로 날짜별로 3년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로서 보통 감사일기로 많이 쓴다.

감정일기는  뒷담화하듯 내 감정을 솔직하게 있는 대로 다~ 쓴다.

쓰면서 감정이 정리되고 끝맺을 때는 나 스스로 감정을 털고 일어나게 된다. 물론 후에 읽어봤을 때 아니 내가 이렇게 유치했나 싶기도 하고, 누가 볼까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밑바닥인 생각들도 많다. 그래도 이게 난데 어쩌나. 나만 알고 있으니 괜찮다. 남편한테는 이 일기장을 열면 저주가 걸린다고,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엄금하니 열어보지는 않는 것 같다. 무척 다행이게도.


일단 기록을 시작하기록할 만한 일을 찾게 된다.

내 감정들과 독서 기록, 지난달부터 시작한 한 달의 어워즈, 그리고 앞으로 적어갈 육아 기록까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막상 찾으면 기록이 되고 추억이 된다. 덤으로 성취감까지!


요즘에는 외출하게 되면 가방에 책과 메모장을 꼭 넣어 다닌다.(물론 아이랑 외출할 땐 아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나서 나의 생각을 메모장으로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쉽진 않다. 휴대폰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기도 하고.

그래도 사색에 빠져 무언가를 끄적이는 내 모습이 나쁘지 않도 하고, 자잘한 기록들이 계속 쌓이고 쌓이면 나 또한 성장하지 않을까 뭐, 그런 작은 바람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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