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옅어지는 방법, 기록
나의 자잘한 기록들
어머님, 둘째는 언제 예정일이라 했죠?
아, 제가 말씀을 안 드렸죠. 하하, 그게... 잘 안 됐어요
딸아이 어린이집 선생님과 대화하다가 잊고 있었던, 아니 잊으려고 노력했던 둘째 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알릴만한 사람은 다 알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알리지 않은 사람이 있었구나...
이후의 대화는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선생님의 진심 어린 위로에 삼켰던 울음이 터져 나올 뻔했지만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속으로 외치며 눈물꼭지를 잠그느라 여념이 없었다.
둘째는 3월 중순쯤 임신 10주 경에 계류 유산이 되었다.
원인은 알 수 없었고, 한 동안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이 심했다. 이것저것 하겠다고 무리하며 움직였던 나를 책망하며 '~않았더라면' 생각에 갇혀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슬픔의 무게에 비해 둘째에 대한 생각을 제법 빨리 떨칠 수 있었는데
생각지 못한 진심 어린 위로 덕분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30분 동안 위로를 해주셨다.
나의 첫 째를 받아준 의사 선생님이자 항상 예약이 꽉 차있는 저명한 의사 선생님이다.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는 내가 딱해서인지 자신의 경험담과 많은 위로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같이 안타까워해 주시는 모습을 보고 아, 의사는 겉으로 드러난 상처만 치료를 해주는 게 아니구나. 마음속 상처까지 치료해 주시는 모습에 조금은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본인도 슬플 텐데 나를 위로하느라 내색하지 못한 남편.
보양식으로 위로해 주시는 엄마와 시어머님.
나 대신 울어주던 친구.
슬픈 생각 들지 않게 매일 전화해 주던 또 다른 친구.
그 고마움과 슬픔을 모두 기록했다.
기록을 하면 신기하게도 고마움은 진해지고, 슬픔은 옅어진다.
나는 감정일기를 따로 만들어서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있으면 끄적였다.
내 서재에는 다이어리, 3년 일기(감사일기), 감정일기 노트, 드로잉 노트(잘 안 쓰지만)가 놓여있다.
다이어리는 내 일정과 하루 공부한 내용을 적는 용도이며, 3년 일기는 말 그대로 날짜별로 3년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로서 보통 감사일기로 많이 쓴다.
감정일기는 남 뒷담화하듯 내 감정을 솔직하게 있는 대로 다~ 쓴다.
쓰면서 감정이 정리되고 끝맺을 때는 나 스스로 감정을 털고 일어나게 된다. 물론 후에 읽어봤을 때는 아니 내가 이렇게 유치했나 싶기도 하고, 누가 볼까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밑바닥인 생각들도 많다. 그래도 이게 난데 어쩌나. 나만 알고 있으니 괜찮다. 남편한테는 이 일기장을 열면 저주가 걸린다고,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엄금하니 열어보지는 않는 것 같다. 무척 다행이게도.
일단 기록을 시작하니 기록할 만한 일을 찾게 된다.
내 감정들과 독서 기록, 지난달부터 시작한 한 달의 어워즈, 그리고 앞으로 적어갈 육아 기록까지.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지만 막상 찾으면 기록이 되고 추억이 된다. 덤으로 성취감까지!
요즘에는 외출하게 되면 가방에 책과 메모장을 꼭 넣어 다닌다.(물론 아이랑 외출할 땐 아니다)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나서 나의 생각을 메모장으로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지만... 사실 쉽진 않다. 휴대폰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기도 하고.
그래도 사색에 빠져 무언가를 끄적이는 내 모습이 나쁘지 않지도 하고, 자잘한 기록들이 계속 쌓이고 쌓이면 나 또한 성장하지 않을까 뭐, 그런 작은 바람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