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빗방울 Nov 07. 2021

커피 한 잔 하실래요?

Feat. 타이페이 카페스토리 & 카페 소스페소: 모두를 위한 커피


힘들다. 커피 한 잔이 절실하다.

좋은 음악이 나온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듣고 싶다.

예쁜 카페가 보인다. 우선 들어가 본다. 밥 먹은 뒤라 배가 부르지만 커피 배는 따로 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찾게 된다. 커피는 그냥 음료수가 아니다. 생활이자 문화가 되어버린 이 합법적인 마약은 ‘커피’라는 단어를 떠올리거나 간판에 쓰인 글자만 봐도 무언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커피는 영혼이 깃든 생명체 같다는 느낌이 든다. 카페의 작은 테이블에 나와 이 커피 한 잔뿐인데 마치 친밀한 누군가가 같이 있는 것 같다. 커피 한잔 마시자는 것은 그저 커피를 맛보자는 뜻이 아니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같이 얘기를 하고 시간을 보내자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인가? 커피를 주제로 한 영화라면 무작정 보고 싶어 진다. 그렇게 <타이페이 카페스토리>를 보았다. 아주 간략하고 건조하게 말하면 두얼과 창얼 두 자매가 카페를 차려 운영하는 이야기이다. 인생의 쓴맛은 전혀 없고, 창업과 운영의 고달픔도 솜사탕처럼 가볍고 달콤하게 그려진다. 그야말로 우리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달달한 영화이다. 



한 주의 디저트를 소개하며 시작하는 첫 장면에서 이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영화라는 것이 바로 감지가 된다. “월요일은 치즈케이크 화요일은 티라미수 수요일은 에클레어 목요일은 브라우니 금요일은 크렘블레 토요일은 시폰“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분위기 좋은 카페란 카페는 다 가보고 싶어 진다. 엄청 유명해서 줄 서서 기다려야 하거나 사람으로 북적대는 곳 말고, 어슬렁거리다 우연히 들어간 카페인데 분위기도 좋고 커피도 맛있는데 심지어 한가해서 보물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카페 말이다. 그런 곳에서 그냥 시간을 탕진하며 여유롭고 한가롭게 커피와 디저트를 맛보고 싶어 진다. 


두얼의 카페에서는 커피만 파는 것이 아니다. 잡동사니 물건을 잔뜩 쌓아 놓고 물물교환도 한다.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입소문이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그중 한 남자는 전 세계 서른다섯 개 도시에서 가져온 서른다섯 개의 비누를 가지고 와서 두얼에게 도시에 얽힌 이야기를 하나씩 해준다. 독특하고 로맨틱한 작업 걸기가 시작된다. 역시 커피란 그냥 마셔버리고 끝나는 음료수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이야기가 피어나는 매개체가 된다. 


몇 년 전 방문했던 타이베이는 대도시인데도 고즈넉한 느낌이 있었다. 우연히 들어간 한 카페에는 문 앞에서 고양이가 무료함을 달래며 들어오는 손님을 구경하고 있었다. 셀프서비스가 아니고 자리에서 주문을 받아 서빙해 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머그가 아니고 컵받침이 있는 커피잔에 정성스러운 라테아트까지 있었다. 2000년대 중반 한창 유행했던 하트나 나뭇잎 모양의 라테아트 말이다. 과거로 돌아간 것 같은 포근한 느낌이 좋았다. 


마침 묶고 있는 호텔 근처에 대형서점이 막 오픈을 했다. 그 안에 있는 카페는 서가로 둘러싸인 벽과 클래식 음악이 조화로운 곳이었다. 쌍둥이일까 싶을 정도로 닮은 두 명의 키 크고 훤칠한 남자 직원이 서빙을 담당했다. 배우 박해진을 닮은 이 둘은 안경을 끼고 하얀색 남방에 물 빠진 색깔의 연한 진을 입고 있었다. 언제 가던 테이블은 모두 다양한 연령대의 여자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나 역시 괜스레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커피를 마셨다. 



혹시나 해서 넷플릭스에서도 커피 영화를 찾아보았다. 검색어를 ‘커피’로 넣었더니 첫 번째로 나오는 영화는 <카페 소스페소: 모두를 위한 커피>였다. 커피에 무조건적으로 반응한 뇌의 명령에 손가락이 바로 플레이를 클릭했다. 


영화는 진하게 한 잔,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는 이탈리아가, 거기서도 나폴리가 배경이다. 이곳에는 ‘카페 소스페소’라는 전통이 있다고 한다. 혹시 커피가 너무 절실한 누군가를 위해 대신 계산을 해 놓는 것이다. ‘카페 소스페소’를 주문할 수 있다는 표지판을 내건 카페에 가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돈을 낸 사람도 누가 커피를 마실지, 카페 소스페소를 주문한 사람도 자신을 위해 누가 커피를 미리 결제해 놓았는지 모른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전통이다. 게다가 카페 소스페소를 주문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도 마음에 든다. 공짜 커피를 마시지만 마음 다치는 일 없이 쭈빗쭈빗 망설일 필요 없이 눈치 보지 않고 여느 손님처럼 커피를 주문해서 테이블에 앉아서 천천히 그 시간을 즐기면서 마시면 되는 것이다. 커피 한 잔으로 나폴리라는 도시 전체가 연대된 느낌이다. ‘카페 소스페소’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영화에는 범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있는 아이들에게 카페 일을 가르쳐 바리스타로 키우는 민간단체가 나온다. 모든 아이들이 교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 몇 명은 분명 새로운 인생을 살 게 될 것이다. 그 단체에서 운영하는 카페의 벽에 걸려있는 글귀가 마음에 든다. 


“카페 소스페소는 남겨져 있다. 

이 아름답고 저주받은 도시의 아이들처럼

지상과 천국, 삶과 죽음 사이에 매달린 곡예사처럼

나폴리의 모든 아이들은 스스로 만회할 권리가 있고

아이들을 판단할 때는 실수가 아닌 좌절에서 재기하는 시간을 봐야 한다.

아이들은 공중에 매달려 있지만

꿈이 아닌 현실에서 좋은 날이 올 것을 알아야 한다.” 


이탈리아의 커피 성지 나폴리에는 가보지 못했지만 미국의 커피 성지 시애틀에는 가 본 적이 있다. 시애틀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다 길거리 커피 스탠드에서 카푸치노를 마셨다. 바람이 불고 비도 조금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 때문이었는지 손님은 달랑 나 하나였다. 키 크고 깡마른 청년은 카푸치노와 카페라테의 차이를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그가 커피를 만들어 나에게 전해주고 내가 천천히 커피 한 잔을 다 마시는 시간 동안 말이다. 카푸치노와 카페라테에 들어가는 우유의 양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손가락으로 컵에다 표시를 해가며 반복적으로 설명했다. 막 바리스타가 되어서 본인의 지식을 자랑하고 싶었던 것일까? 계속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그저 어떻게 그의 말을 끊고 떠나야 할지 몰랐던 까닭이다. 게다가 딱히 바쁜 일도 없는데, 열심히 설명해주는 그 바리스타를 멋쩍게 만들고 싶지 않기도 했다. 


요즘은 카페라테를 거의 마시지 않지만 주구장창 카페라테만 마시던 시절이 있었다. 이건 순전히 스타벅스에서의 첫 경험 때문이다.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던 시절 한 친구가 강력히 추천했다. 스타벅스라는 커피집에 가서 커피를 꼭 마셔보라고. 그러면서 주문하는 법을 문장으로 가르쳐 주었다. 

“Can I have a tall caffe latte?” 

이렇게 주문하면 된다고. 

여러 가지 메뉴 중에서 왜 그 친구가 카페라테를 마시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 친구가 나에게 말해줬듯이 누군가가 그 친구에게 똑같은 문장을 가르쳐줬는지도 모른다. 결국 얼떨결에 나도 처음으로 방문한 스타벅스에서 톨 사이즈의 카페라테를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스타벅스만 가면 자동적으로 그 문장이 튀어나왔다. 


예전에 품었던 커피와 카페에 대한 로망은 여전히 살아있다. 카페를 직접 경영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해보고 싶은 로망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웬만한 카페 사장님보다 나이가 많아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하기에는 매우 부담스러운 나이대에 진입했다. 안타깝다. 





이전 09화 가장 길었던 덕질. 사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