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이야기
말수가 적어 성격이 어두울까 걱정했던 희수는 누리를 대하는 강림의 태도에 안도감이 들었다.
“오빠 오빠~ 강림이 오빠.~~ 나 오늘 학교 숙제 다했어. 이제 놀자“
“누리야 강림이 오빠도 공부해야지. 귀찮게 하지마!”
“아니에요. 저 공부 다 했어요. 누리야. 오늘은 뭐하고 놀까?”
입을 삐죽 내밀며 삐져있던 누리가 환하게 미소지으며 강림에게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보는 희수는 아들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며 흐뭇해한다.
그렇다고 편하기만 한건 아니였다. 비슷한 나이인 우리와는 아직 서먹한지 대화를 나누는걸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누리의 학교 행사로 성준, 누리와 함께 며칠 비워야 하는데 둘이 저렇게 서먹하니 걱정이 되었다.
“괜찮아. 일하시는 아주머니들도 계시고.. 안 심심해요”
“그러니까 우리야. 강림이가 우리집에 온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는데 네가 좀 잘 돌봐주렴.”
“음…..알겠어요”
억지로라도 고개를 끄덕여주는 우리가 고마워서 희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강림아 우리가 좀 쌀쌀맞게 굴어도 네가 잘 챙겨주렴. 아파서 그런지 예민해진 것 같아.”
“예! 걱정마세요“
“강림학생. 미안한데 내가 지금 시장에 다녀와야해서 이거 우리 학생 방에 가져가서 같이 먹어요.”
“예, 감사합니다.“
강림은 도우미 아주머니가 챙겨주신 과일을 들고 우리의 방으로 갔다.
문 앞에 서서 문에 손바닥을 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들어와.”
“어떻게 알았어?“
“내가 어떻게 아는지 너도 알잖아.”
“하긴….”
“이제야 우리 둘 뿐이네….그치?“
“하하…이제 말하는거야?”
우리가 강림을 한번 쓱~ 보더니 눈을 쳐다본다.
“너 누구야?”
“강림이지. 이름도 몰랐어?“
“장난 치지마. 죽여버릴 수도 있어!!”
얼굴 표정이 바뀐 우리가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로 소리친다.
놀랄만도 한데 강림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짐짓 여유롭게까지 하다.
“니도 아는 사람. 갸 몸에서 기어나온다! 안 그럼 내가 니 환생도 못하게 진짜 갈기갈지 찢어뿔끼다!”
순간 우리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목소리… 빙의된 몸이지만 손발이 덜덜 떨릴만큼 영혼에 타격을 주는 신력.
“네 년…. 그 무당년이구나!! 그래 그날 내가 니 손녀에게 갈 어린 영을 먹고 숨어 있는걸 네 년은 이미 알고 있었어!”
“아니. 몰라제. 내 아무리 큰 무당이라 해도 가족일에 맴이 흔들려뿐기라. 주씨가 들어오는 순간 검은 연기로 다가오는 니 놈이 보이기에 아차 싶었지만 그때는 이미 칼에 찔려서 내도 뭘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니는 주씨 몸에 깃든 영을 죽인 그놈이제? 주씨에게 붙어 들어와 있던거라. 니가 우리에게 잡귀들을 보내서 아를 괴롭힌거제!!!!”
강림의 입에선 죽은 무당 허씨의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키키키키 맞아. 나야. 내가 그년을 죽이고 돌아가다가 절벽으로 떨어져서 뒤져버렸지 뭐야. 그러고 얼마나 있었나. 그년이 매일 우는거야. 그러고는 몸 뚱아리를 찾았다고 좋아하더군. 그때 그 죽은 년의 몸에 나도 슬며시 들어갔지. 그 둔한 년은 모르더군. 근데 그 년이 널 찾아간거야.
아~ 망했구나 싶어서 얼른 대나무 숲으로 숨었는데 오며가며 귀신들이 그러더라. 네년 자손에게 신병이 갈꺼라고…키키키키 그때부터 기다렸어.”
“불쌍한기라. 그런다고 니가 갸 몸뚱이를 가질수 있을꺼 같나? 아직은 약해도 큰무당인 내 자손이다.!”
“씨팔. 그래서 아직까지 이러고 있잖아. 아직까지!!!”
버럭 소리지르던 우리가 싸늘하게 입꼬리를 올린다.
“근데 고맙게도 네가 이렇게 찾아왔네…그것도 건강한 몸뚱이 하나 챙겨서 키키키키키키”
“이 아이는 무구다. 신에게 선택된 무구. 너 같은 놈이 가져 갈 수 있는 몸이 아인기라. 내가 이승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는데 이 아이의 힘이 나를 땡겨 데려간거제”
싸늘하게 미소짓던 우리의 표정이 변한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하는 모습이다.
강림이 우리에게 한 발 다가서자 우리가 흠짓 놀란다.
“이제 고마. 우리에게서 나가라.!”
“아니야..아냐.. 아직은 아냐....”
순식간에 우리는 과일과 함께 온 작은 포크를 휘둘렀다.
“난 더 살꺼야. 내가 어떻게 버텼는데…얼마나 참고 살았는데….아직은 안되지….키키키키키키”
“아니 더는 안될끼다!”
어느새 우리의 손을 잡고 있던 강림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아냐.. 아니야.."
우리가 포크로 강림의 왼쪽 눈을 찔렀다.
“아악!!” 강림이 눈일 부여잡고 소리 질렀다.
“난 다시 사람의 피냄새를 맡고싶어. 이 년 몸뚱아리로. 키키키키키”
“안돼. 안돼.“
흐릿해져가는 강림의 의식 속에 허씨의 목소리도 사라졌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오는 길.
“우리 학생. 어디가?”
“아~ 아주머니. 시장 다녀오세요? 네. 엄마아빠가 누리 행사 참석하라고 연락와서요. 누리가 언니 보고싶다고 울고있대요.”
“강림학생은?”
“강림이는 먼저 출발했어요. 아주머니도 며칠 휴가 가시라고 하셨어요. 집에 사람없으니 문단속만 부탁드려요.”
“아이고~ 덕분에 나 휴가가네. 알겠어요. 우리 학생. 기사님께 오시라고 할까?”
“아뇨. 강림이가 먼저 연락드려서 오시고 계실꺼여요. 걱정말고 퇴근하세요“
“그래 그럼 이거 정리하고 갈께.”
“네…그럼 다녀오겠습니다. ”
유유히 걸어나가는 우리.
우리의 방에 쓰러진 강림.
그리고 시작되는 살인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