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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흑곰아제 Aug 11. 2022

물 폭탄과 함께했던 기억들

우리도 그녀들처럼

며칠사이 서울에는 물 폭탄이 떨어졌네.

아직 우리가 있는 곳은 조용한데,

이럴땐 우리 나라가 참 넓구나 싶어.


뉴스를 통해서 인명 피해 소식과 이재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철없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어.


그때가  11살 무렵이였는데,

고모네 식구가 빌라를 사서 이사가면서

그곳 반지하 단칸방으로 이사를 갔어.

그 전에도 단칸방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사실 큰 차이를 못느꼈어. 그냥 이사왔구나

하는 정도로

반지하가 뭔지 잘 모르고 있었던것같아.


부엌과 거실개념의 작은 공간에

밖으로 나있는 창이 전부였던 집이였어.

그때 4가구가 반지하에 살았는데

화장실이 밖에 2개뿐이라

아침마다 치열했었어.

그리고 그때는 왜 화장실 불은 빨간색이였을까?

밤엔 화장실이 무서워서

동생과 엄마를 깨워서 좁은 화장실 안에 함께

들어가기도 했지.

음식을 조금만 해도 연기가 꽉 차서

작은 창을 열어두면 음식냄새를 맡고

동네 고양이들과 강아지들이 창문앞에서

울기도 하고

 가끔 미친놈들이 작은 창으로 자신의 성기를

꺼내 흔들기도 했어

처음엔 무섭다가 나중에는 가위를 들고 쫒아가는

용기까지 생겼지 .

만약 지금 '그렇게 다시 살아봐'라고 한다면

'NO'를 망설임없이 외치겠지만 말야.


나는 그때가 내가 기억하는

유년기 중 가장 행복했던 시절같아.

아마 비때문에 생긴 추억때문이 아닐까?


정확하게 몇년도는지 기억이 안나는데

지금처럼 그해에도 비가 많이 왔어.

반지하는 비가오면 식구들이 초 긴장이야.

그날도 문앞에 물이 흘러들어오지 못하게

수건으로 막고 하수구도 잘 정리하고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몸이 붕~떠서 놀라서 깼더니

방안으로 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더라.

여동생은 무서워서 울고

나도 무섭지만 여동생 손을 꼭 잡고

부모님이 하시는걸 보고있는데

보통 이런 상황에선 귀중품을 챙기거나

필요한 것들을 챙기잖아.

우리 아빠는 여름에 계곡에 가서 사용했던

보트를 불고 계신거야.


뭐지???

한참 짐정리하던 엄마도 울고 있는

우릴 보고는 짐은 다 버리고

아빠를 도와서 보트를 불더라.

잠시 후에 보트가 다 되고

동생과 내가 보트에 타고 몇가지 짐과 함께

밖으로 나왔는데

계단은 이미 어른 허리 높이로 물이 차있었어

아마 물때문에 문이 안 열렸기에  

물이 찰때까지 기다리셨던게 아닐까 싶어

그 기다림의 순간 부모님은 얼마나

무서우셨을까?

(그때 부모님 나이가 서른 초반이였으니까)

우리가 문앞에서 보트를 타고 있는동안

아빠가 "물놀이 하고있어"라고 해서

그때 진짜 여동생이랑 보트에 앉아서

까르르 거리면서 웃었던 기억이 나.


시간이 지나니

그 시간이 가난의 시간이 아니라,

가족과의 추억이고 나의 가장 즐거운 순간이

되었더라.

아마도 부모님의 그 작은 행동 때문이겠지

놀란 아이들을 진정시키자.

어린 나이에도 자식이 먼저였겠지?

그걸보면 난  지금 얼마나 철이 없는지.


요즘 며칠 바빠서 글을 못 썼어.

바쁘다기보다는 감정이 힘들어서.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짜증도 늘고 감정기복도

심하다고 했잖아.

그 감정풀이 대상이 나인거야.


'넌 왜 이렇게 못하니?"

"넌 애가 왜 그 모양이냐?"

너는 너는 너는...

나를 깍아내리는 걸 억지 웃음으로 넘기고나면

반응없이 웃기만 하는 내가 미우신건지

짜증과 혼잣말을 빙자한 욕들로 뒤를 채우셔

물런 내가 못하는거 알지. 이제는 포기할건

포기 해주시면 좋겠는데 그걸 강요하시고

당연한 것을 못하는 무능력한 엄마로

만들어버릴때는 나도 속에서 욕이 치밀어 올라와.


그 감정들이 혹여나 너와의 글에 표현되어서

어머니가 나를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들어버리시듯

너와의 이 소중한 공간을 내 감정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리지는 않을지 겁이나서  망설였어.


가끔 내가 글을 안 올리면

"이 가시나 또 쓰레기치우고 있구나"

생각해줘.


오래 기다렸을 너에게  왜 늦었는지

주저리 주저리 설명하면서 오늘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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