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미국 출산 이야기
아직도 30개월 전의 출산일이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국 대학병원에서 첫 아이를 출산한 경험이 있는 저는, 임산부와 아기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극진한 대접과 의료서비스에 모든 과정이 경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출국 직전 둘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고 미루고 미루다 임신 14주 차가 되었을 때 미국에 입국하게 되었고 임신기간 내내 출산에 대한 걱정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저와 남편이 출산을 위해 병원을 가면 아직 4살인 큰 아이가 불안할까 봐 걱정이 컸습니다. 그러던 중 다행히 미국에 사는 동생을 보러 온다고 언니네가 방문을 하게 됐고, 그 덕에 안심하고 출산을 하러 갈 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의 출산 경험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15주 차 처음 주치의를 정하고 정기적으로 검진을 갈 때마다 의사는 늘 산모의 정신적 건강상태와 아이를 낳을 가정환경을 체크하는 문진에 초점을 두고 진료를 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산부인과로 3위 안에 든다는 대학병원이었지만 임신기간 중 초음파를 한건 26주 차 정밀초음파가 유일했고, 매 검진마다 줄자로 배 크기를 재고, 손으로 아이의 머리 크기와 몸의 크기를 체크하였고 심박수를 듣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실 이렇게 안이하게 진료를 해도 되는지 걱정이 되어 주치의에게 물었지만 산모에게 특별한 사유가 발견되지 않는 한 초음파는 산모와 태중의 아기에게 좋지 않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한국에서 매주 초음파를 했던 저에겐 참 생소했습니다. 21세기에 줄자로 배를 재는 의사라니요. 과잉진료 없는 미국 산전관리에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출산 당일 새벽 양수가 터져 병원에 전화를 하고 방문을 했습니다. 양수검사를 하고 바로 입원을 했는데, 입원과 동시에 산모는 움직일 필요 없이 분만과 회복까지 가능한 1인실이 가능했고, 의료진이 바뀔 때마다 십여 명의 의료진과 통성명을 했으며, 진통을 느끼는 와중에 악수와 함께 스몰토크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너무나 미국스러운 문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첫애 때는 자궁문이 5센티가 열려야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고 해서 진통을 다 겪었고, 심지어 마취과 의사를 부르러 간 10분 사이 나머지 5센티가 다 열려 순도 100프로 진통으로 아이를 낳은 저로서, 둘째 출산은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담당 의사는 처음 진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언제나 제가 원하는 순간, 말만 하면, 바로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이야기를 해주었고 첫 진통 시작 30분 만에 에피 듀럴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대여섯 시간이 지난 뒤 남편과 수다를 떨다가 출산에 임박했다며 십여 명의 의료진이 병실에 들어와 어리둥절하게 출산을 시작했습니다. 출산과정 또 하나의 행운은 바로 정오에 입원해서 두 번의 의료진이 교체되고, 저녁 8시가 되는 순간 담당의가 나의 주치의 선생님으로 교대되어 출산을 도와주셨다는 사실입니다. 타지에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주치의 선생님을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갑던지, 의사 선생님이 정말 친정엄마 같이 느껴졌습니다. 에피 듀럴을 맞은 탓에 감각이 전혀 없었지만, 출산 중 의사와 간호사의 아낌없는 칭찬과 격려를 받으며 의료진이 알려주는 푸시 방법을 한 덕분에 30여 분 만에 둘째를 순산했습니다. 그리고 출산 후 바로 핏덩이의 뜨거운 아이를 가슴에 안겨주는데 눈물이 줄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첫째 때는 옆에서 사후 처치 후 아기를 씻겨서 보자기에 싸서 안겨줘서 내가 낳은 아기가 맞나 싶었는데 그 역시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출산 후 모자동실에 아기를 전담하는 간호사와 산모를 전담하는 간호사 2명이 배치되어 밤새 2시간 간격으로 방문하여 배 마사지를 해주고 오로 배출을 도와준 덕분에 훗배알이가 전혀 없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미국은 출산 후 바로 햄버거와 콜라를 먹는다고 했는데, 정말로 출산 후 터키 샌드위치와 따뜻한 치킨 수프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출산과정에서 지칠 때마다 원하면 콜라와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한국에서 금기하는, 출산 직후 샤워도 가능했습니다. 아마도 체질적으로 서양인과 동양인의 차이도 있고 산모의 건강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자연분만 후 3일간 입원하는 동안 식사는 미국식 애피타이저부터 본 메뉴, 사이드까지 매끼 선택 항목이 열 가지는 되었던 병원 룸서비스라 새로운 음식체험으로 재미있게 먹었던 기억과, 남편은 낯선 메뉴 주문에 매끼 곤란을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과정의 어머어마하게 놀라운 모든 금액들은 코페이(환자 본인 부담금으로, 100불 정도 우리 돈 13만 원)를 제외하고, 모두 대학교에서 부담하는 보험으로 처리되었습니다. 미국 병원비는 개인이 갖고 있는 보험에 천차만별인데, 저 역시 두려워했고 궁금했던 터라 공개하면 3년 전 대학병원 출산 시 2박 3일 입원비용만 2만 불, 원화 2천4백만 원 정도 청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특이한 것은 병원에서 퇴원할 때 신생아의 바구니 카시트 착용을 확인하고 퇴원 수속을 해준다는 점입니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미국의 문화이며 미국에서 태어난 아기들은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병원에서 출산한 다음날 출생신고를 하고 바로 사회보장 번호(SSN)가 발급됩니다. 그리고 출산 일주일 후엔 집으로 직접 방문한 의료진이 아기와 엄마의 건강상태를 살펴보고, 아기가 사는 환경을 꼼꼼히 체크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주일 동안 아기에 대해, 또 내 건강상태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볼 수 있어서 참 좋았고, 저의 경우엔 아기침대 안에 햇살이 강하게 들어올 수 있으니 침대 옆면에 수건을 걸어 아이가 낮밤을 구분하되 눈에 자극이 없도록 해주라는 조언도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타 지역에서 출산한 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과 비슷한 출산 풍경도 있고, 주마다 병원의 서비스가 다르니, 이는 유학생 부부로서 개인적인 출산 경험임을 밝혀두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