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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이야기

우물가 수다

by 둥이

우물 이야기

우물가에 웃음꽃이 피었다.


마을 어귀나 마당 넓은집에 하나씩은 있었던 우물은 둘레로 예쁜 돌담이 쌓여져 있었다. 그리 높지 않았던 돌담은 아이키만큼은 됐던듯 하다. 까치발로 들여봐 본 우물속은 깜깜했고 목소리를 던지면 메아리가 들려왔다. 아득하고 깊어 보였다. 햇볕 좋은날은 그대로 하늘을 받아냈다. 우물 바닥까지 햇살이 떨어지는 날이면 우물둘레에 쌓여 있는 돌들 하나 하나에 끼여 있는 푸른 이끼까지 보였다. 심해를 뚫치 못한 햇볕들은 사방으로 튕겨가며 눈부시게 빛났었다.


" 첨벙 "


차가운 우물물에 던져진 두레박이 물에 닿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이미 물에 손을 담근듯 소리만으로 시원해진다. 두레박이 물속에 잠겨 물을 퍼올리는것도 쉽지 않았다. 요리 저리 좌우로 흔들어야 부력을 잃고 주둥이가 물속으로 향하게 된다. 두레박 무게가 무거워야 부력을 이기고 쉽게 물을 기를수 있었다. 아이들은 두레박을 던져 놓코도 두레박이 물에 떠있기만 할뿐 늘 빈 두레박만 퍼올리기만 했다. 우물속으로 던져지는 두레박질이 쉽지만은 않았다. 컴컴한 우물에서 기려진 물은 어름장처럼 차가웠다. 물에 손을 담글때면 마르지 않는 우물물이 마냥 신기했다. 그 많은 동네 사람들이 길여 올려도 우물물은 마르지 않았다. 소리없이 물은 고여졌고 조용히 하늘 풍경을 비추고 있었다. 오래도록 우물은 마르지 않았다.


두레박을 던질라 치면 두레박이 깨지지 않게 허리를 숙여가며 조심히 드리어야 됐다. 두레박은 양철로 만들어 진것도 있었고 나무를 이어 붙힌것도 있었다. 나무로 이어붙힌 두레박은 소여물통처럼 생겼는데 물에 닿아 부딪히는 소리가 양철보다 더 좋았다.

"첨벙"

먼데서 울려오는 종소리 같았다.

양철 두레박이 가볍고 좋았지만 길어 올리는 재미는 나무 두레박을 따라올수 없었다.우물로 던져진 나무 두레박은 물을 받아 들여 내치지 않았다. 양철 두레박은 물을 받아내지 못하고 밀어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공명은 태생부터 달랐다. 두레박줄은 그 끝을 알수 없을 정도로 길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첨벙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이들 손에서는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던 두레박질 이였다.


요행이 지나가던 어른들이 웃으시며 한번을 길어 주었다. 철렁 철렁 두레박에 차가운 물이 넘쳐 흐르며 우물돌담 위에 얻혀졌다. 아이들이 두레박 주위로 모여들어 수박통만한 까만 뒷통수만 동동 떠있었다. 차례로 물을 마셨고 손을 담그고 발에 물을 적셨다. 두레박으로 퍼올린 차가운 우물물은 온동네 아이들의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우물가 옆으론 언제부터 인가 녹슨 펌프가 설치 되었다. 두레박으로 퍼올린 물을 마중물을 부어 여러번 펌푸질을 하면 우물속의 차가운 물이 콸 콸 쏟아져 나왔다. 푸른 힘줄이 돋아날 정도로 힘을써야 물을 길을수 있었다. 쓰는 양에 따라 두레박질을 할지 펌프질을 할지 편한양으로 골라서 사용했다. 펌푸질로 물 올라오는 소리를 들으며 등목을 했고 더위로 데워진 머리통을 식혔다. 귀가로 들려오는 펌프질 소리와 물쏟아지는 소리는 한낮 불볕 더위를 식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우물안에 수박과 참외를 담궈 놓았고 누구네것인지 묻지도 않았다. 모기향 냄새 맡아가며 평상위에 누워 우물속 수박을 갈라 먹었다.



그리 시원 했을까!


명절날 큰집에 가게 되면 마당 뒷란 우물가에 모여 음식을 준비하던 큰엄마가 두레박질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큰집 우물가는 마을 어귀 우물보다 더 얇음직 했지만 물은 더 차가웠고 물맛도 좋았다. 물맛이래야 차이가 없었겠지만 명절 음식을 옆에서 지켜봐야만 하는 배고픈 허기가 두레박으로 퍼올린 차가운 물을 다 드리켜야 잊을수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허기가 가시지 않던 배고프던 시절에 두레박 우물물은 우리의 배꽈리를 채워진 소중한 음식이였다.

까만 무쇄 솥뚜껑 밑으로 장작불이 타오르고 동태전과 호박전 파전들이 부시시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그옆을 지키고 서있으면 큰엄마가 찌그러진 동태전을 하나 내주었다. 전을 부치던곳은 항상 우물가 옆이였다. 우물가로 달려가 둘레박으로 물을 길어 옷을 적셔가며 마시고 나서야 냄새의 유혹을 벗어날수 있었다.


해질녁 찬거리를 다듬기 위해 마을 어귀 우물가에 모인 엄마들은 해도 해도 같은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누었고 그 주변으로 아이들은 뜀박질 하며 두레박 우물물을 마시곤 했다. 냇가로 가지 못한 손빨래들을 싸들고 나온 엄마들은 해질녁 까지 빨래방망이를 두들기고 있었다. 온 동네를 울리던 빨래 방망이 소리가 우물속으로 메아리쳐 들려왔다.

촥 촥 젖은 옷들이 빚져내는 찰진소리가 아름다웠다.


우물가는 늘 시원 했고 웃음꽃이 피었고 이야기가 떠나지 않았고 사람들로 붐볐다. 둘레로 심켜진 향나무의 진한향과 한켠으로 드리어진 그늘이 한폭의 그림으로 남아있다.


아버지는 세번 집을 짓고 세번 우물을 파셨다.

물을 긷기 위해 물길을 찾았다.

땅을 팔때 마다 물길이 잡히는건 아니였다. 물길을 잘못 잡아 다시 메우곤 했다. 파 내려간 깊은 자리에 물길이 안잡힐때면 다시 덮어나갔다. 땅속 보이지 않은곳을 땅의 기운으로만 흝어 본후 거침 없이 파들어 갔다.


아버지의 우물은 돌담으로 쌓아올린, 두레박질을 할수있는 우물은 아니였다.

적정 깊이 만큼 파들어 간후 차오르는 우물 위에 큰됫돌로 덮어 그 위에 모타를 설치해서 수돗물처럼 이용할수 있게 만들었다.

우물가 만큼은 아니였지만 마당 한가운데 만들어 놓은 수돗가는 마실온 어른들로 항상 시끄러웠다. 깊은 우물속에 두레박은 아니였지만 돌리기만 하면 콸 콸 쏟아지던 수돗물도 우물물 만큼이나 시원했다.편하고 좋았지만 더이상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우물은 아니였다. 깊은 땅속에 묻혀진 우물이였다.


물을 긷기 위해 우물을 파본 사람은 알것이다.

삽과 곡깽이 만으로 땅을 수직으로 파내려 간다는게 얼마나 힘들일인지를 ᆢ

흙을 두레박으로 끌어 올리면서도 과연 물이 나올까 다시 메우는건 아닐까 나는 쉽게 지쳐갔다. 아버지는 물길이 잡힐때까지 땅을 파내려 갔다. 큰돌이 삽길을 막으면 정과 망치로 두둘겨 큰돌을 잘게 쪼갰다. 물길이 나올 거라는 보장보다는, 물길을 잡아야만 살아갈수 있다는 절박함이 더 컸을것이다. 아버지 삶의 모든 시간이 그러 했을것이다. 파내려간 우물밑이 햇빛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깜깜해 졌을때쯤 바로 그 순간 아버지 이마 위로 물이 치솟았다. 맑고 시원한 물길을 만난것이다. 아버지와 우물을 파고난후 우물을 판단는건 마치 삶을 대하듯 매순간 자신이 하는일에 최선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은 시간들이 모아져야만 된다는걸 알게 되었다. 물길을 만날때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된다.


지금은 찾을래야 찾을수도 없는, 메워진 우물자리로만 존재하는 우물이 요즘 들어 가끔 생각난다.


우물가에 모여 펌푸질을 해주고, 같이 등목을 밀었던, 그 시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어렸을 내가.. ᆢ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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