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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이야기 2

by 둥이

며칠 전에 걸어 놓은 빨래들이 봄 햇살을 들이마셔 개기 좋은 옷감으로 변해 있을 때 ᆢ

그런 옷감들이 촥 촥 앞과 끝이 단정하게 개어졌을 때 ᆢ 잘 마른 옷감 위로 올라오는 거친 질감들이 손마디 끝으로 튕겨졌을 때 ᆢ잘 마른 옷감에서 풍겨 나는 푸릇한 비린내가 거실에 가득 찰 때 ᆢ 퍼드덕 퍼드덕 옷감들의 잔주름이 날아가는 소리를 들을 때 ᆢ아이들의 까만 양말이 검은색을 토해 냈을 때 ᆢ달그락달그락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달팽이관을 간지럽힐 때 ᆢ ᆢ 뭉툭한 두 손으로 야무지게 손빨래를 해나갈 때ᆢ그때 오른손과 왼손이 만들어 내는 천상의 소리들과 만날 때 ᆢ물소리 거품 올라오는 소리 거품 꺼지는 소리 거품과 물이 섞이는 소리 ᆢ 냇가에서 들려오는 빨래하는 소리가 불현듯 찾아왔을 때 ᆢ 빨래 방망이가 찰지게 만들어 냈던 중독성 강한 중저음과 고된 노동이 목울대로 올라왔을 때, 그런 푸른 기억이 스멀거리며 피어났을 때 ᆢ


예쁘게 개어진 수건들을 서랍 속에 세로줄로 정리할 때 ᆢ 겉옷과 속옷이, 검은색과 흰색이, 양말과 속옷이, 손세탁과 세탁이, 손수건과 발수건이, 청바지와 면바지가 섞이지 않고 잘 구분돼서 빨래했을 때 ᆢ 얕은 바람 불던 날 빨랫줄에 걸려있는 색색들의 옷깃들이 춤을 추고 있을 때ᆢ 그 위에 올라앉은 잠자리 떼들이 군무를 추고 있을 때 ᆢ 그 모습이 오케스트라 현악기 연줄처럼 단아하게 출령이었을 때 ᆢ


바사삭 부서질 것처럼 말라 버린 빨래들을, 네모난 두부처럼 단정하게 개어 놓았을 때 ᆢ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노트 공책을 탐닉하며 사는 내 모습을 볼 때.. 푸른 하늘, 푸른 바다,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푸른 산등성, 엷은 푸른색의 하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풍경 그 풍경색 배경색이 되는 그 푸른색을 멍 때리며 쳐다볼 때.. 생각 없는 생각을 하며 생각이 없는 그 자리에 아무 생각도 들어가지 못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그 공간을 바라다보고 있는 생각 없는 아(我)를 응시하고 있을 때.. 나는 내가 아니며 내 생각도 내가 아니며 내 것 에서 움튼 생각을 생각하며 그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 생각이 나일까 회의하는 나를 바라볼 때 그때 아(我)는 실존으로 다가와 줄까 하는 생각을 할 때.. 그래 결국 공(空) 이였구나라고 생각 하고 어떻게 비울까 어떻게 채울까 가 아닌 어떻게 비울까를 고민하고 있는 아(我)를 의식 저쪽에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존재가 실존적 자아 일까 비우면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비워야 할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만 할 때, 그 생각 이전으로 돌아가서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을 때 바로 그때... 바로 지금 바로 여기 지금 내 속의 아(我)는 그러고 있는 듯하다.... 자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한번 된다라고 생각할 때... 그렇지 이게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그대로의 나였지라고 생각할 때, 적어도 나의 무지를 아(我 )가 알고 있고 앎이란 내가 무지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명제라는 걸.. 그 중력의 뻘에서 허우적거리는 피아(彼我)를 3인칭으로 바라볼 때....


행복하다



그렇게


습기 먹은 오후가,


관계로 얽힌 하루가,


묵혀 놨던 감정이,


차오르던 절망이,


이유 없는 불안이,


지루 했던 장마가,


마음속 켠켠이 쌓였던 먼지가



사라져 갈 때 ᆢ


번져 오는 행복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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