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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렁한 일상의 행복 이야기 속으로

by 둥이

활자가 글이 아닌 소리로 다가올 때 ᆢ바스락 거리는 글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 때 ᆢ 해 질 녘 오후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라야 글 밖으로 나왔을 때 ᆢ 보물을 찾은 듯, 반가운 지인을 만난 듯 문장 속에 흩어져 있던 밀도 높은 단어와 해후했을 때ᆢ 토지 속 용이가 속삭이듯 말을 걸어왔을 때 ᆢ날것에서 풍겨 나는 싱싱함으로 문장들이 퍼덕일 때ᆢ 봄 햇살에 움터 올라오는 새순들의 위대함을 글 속에서 맞이했을 때ᆢ 주문한 책들을 기다리는 지루하지 않을 시간들로 둘러싸여 있을 때ᆢ주문한 책이 단정하게 포장되어 현관문 앞에 도착했다는 택배 문자 신호가 왔을 때 ᆢᆢ아이들과 책을 고르며 도서관 일층 연람실 공기를 마시고 있을 때ᆢ 리베카솔닛의 책을 읽으며 형영 색색 황홀하기까지 했던 그의 글들이 지어내는 절정의 쾌감을 온 촉수로 더듬어 들어갈 때ᆢ 버지니아 울프의 1930년작 산문을 읽혀 내려갈 때쯤 마치 그와 나란히 런던 거리를 걸으며 연필을 사러 갔었던 것만 같은 의식이 들 때ᆢ 글이 글이 아닐 때 ᆢ 글이 살아 말을 걸어올 때 ᆢ ~ 살아온 날들과 읽고 써서 깨달은 앎이 같을 수 있기를 바라볼 때ᆢ 순간순간 찾아드는 단어들이 문장으로 쓰일 때 ᆢ 꼭 맞는 드레스코드를 걸쳐 입고 있어야 할 장소에 몸단장하고 서있는 문장 속 단어들과 만났을 때 ᆢ어쩌면 저렇게 맑고 투명한 언어를 찾아냈을까 작가의 약력을 뒤져보고 몇 권의 책을 추가 주문했을 때 ᆢ 가방 속에 챙겨 놓은 두 권의 책들이 무겁지 않게 느껴질 때 ᆢ 무언가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그것들이 궁금해졌을 때.. 중고 서점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구매했을 때.."나는 삶의 일상성과 구체성을 추수하듯이 챙기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김훈 작가의 글을 봤을 때.. 짧고 여백이 깃든 잔상이 남는 시를 쓰시는 김종삼 시인의 시를 읽었을 때.. 글이 글을 낳아 길을 잃어버렸을 때 지시등을 켜주었던 그래서 방향성을 잃지 않았던 문장을 만났을 때 그리고 평생을 간직했을 때.. 나의 정체성을 알게 해 준 나의 독서 구매 성향을 보고 엷은 미소를 지었을 때 --- 포슬포슬 기름진 흙을 비집고 올라온, 물을 잔뜩 마셨을 청보리 새순들이 바람결에 군무를 출 때... 이리 휘영청 저리 휘영청 쉬어 이익 쉬어 이익 머릿결 흩날리듯 무심한 청보리 새순들의 합창 소리를 들을 때 ᆢ무료하게 반복되는 보통의 일상을 바로 볼 때.. 그런 헐렁한 일상들로 채워진 별 볼 일 없는 대단할 것 없는 요란하지 않은 소박하고 담백한 그런 나의 삶을 바라볼 때.. 그런 게 사는 거지 모!!라고 미소 지을 때.. 지금의 내가 바로 여기에 지금을 살아내는 내가 기특해 보일 때ᆢ 수리산 너머로 붉은 해가 서서히 넘어갈 때 하루가 저물며 저녁이 다가올 때 ᆢ

앞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의 까만 뒤통수를 바라볼 때.. 곁에서 같이 걷는 집사람이 쫑알쫑알 일상을 늘어놓을 때.. 그때 짖고 있을 표정..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그 표정을 바라볼 때 ᆢ


그렇게 일상을 맞이하고 살아갈 때 ᆢ


그럴 때


난 미치도록 행복하다 ​​



"한 시골장터의 낡은 선지 해장국집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이 열린 문틈을 뚫고 비집어 들어옵니다. 오라는 손님은 아직 그림자도 안 보이는데 늙은 주인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성스레 고기 육수의 간을 봅니다. 점심때도 되었고 슬슬 뱃속 허한 이들이 요란하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 좋으련만 어째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렇다가 혹시 주인 할머니가 꾸벅꾸벅 졸기라도 할까 봐 괜스레 조바심이 생기기까지 합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한 무리의 손님들이 들이닥쳤습니다.



"아따! 그동안 밸 일 없었는가요?"


"하이 고오! 뭔 입을 그렇게 쫙쫙 벌리고 그런다오! 어서 해장국이랑 막걸리 한 사발 내봐보셔잉!"



오호라 이게 웬일인가요. 마실 나온 이 동네 저 동네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햇살을 밀어내가며 들어오고는 농부 터 치십니다. 하품하시느라 벌려 놓은 입을 금세 다문 주인 할머니는 그 농지에 화답을 하며 배시시 웃고 맙니다.



" 뭐, 밸 일 있겄써이. 여즉 헝게 아라 지라. 어서들 오셔잉!"



이제부터 분주해진 주인 할머니의 손놀림이 해장국집을 휘젓기 시작합니다. 쟁여놓은 김치랑 깍두기 밑반찬에 두어 가지나물도 올려놓고 남도 땅 그 맛 좋다는 쌀 막걸리 몇 사발이 박상 위로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끓기만 하던 솥단지 속 육수 국물은 모락모락 김을 피워 올리는데 보기만 해도 입맛이 쩍쩍 돌기만 합니다.



"자! 한 바라 씩 들 쭉 허장께!"



어느새 시골장터의 낡은 해장국집 안이 시끌벅적 웃음소리로 가득 찹니다. "



글. 사진 / 김종찬 스테파노 (사진 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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