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편안함에 대해서

삶과 앎

by 둥이

고통과 편안함에 대해서


"몸의 온기를 진정으로 느끼려면 반드시 신체의 일부가 추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특성은 비교를 통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야 비로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오랫동안 편안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전혀 편함 한 게 아니다. "

모비 딕 - 허먼멜빌 저 P95


통화가 길어져 저녁식사를 늦게 한 적이 있다.

순식간에 허기가 덮쳐왔다. 식사 시간에 맞추어 밥을 먹을 때는 여유를 가지고 되도록 느리게 먹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배가 고파 오면 나의 뇌는 판단 능력을 상실해 버린다. 이미 이성은 뒤편으로 밀려나 있고 뭐든 곱빼기로 주문을 하고 배가 부를 때까지 먹는다. 배고픔의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것일까 허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올챙이 배처럼 빵빵해진 배 위에 손을 얻으며 가려본다. 잘 먹었다는 만족감은 약간은 부족한 듯 먹었을 때 찾아온다. 모든 감정의 상대성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추위도 마찬가지이다.

지독한 추위는 발가락 끝의 감각마저 가져가 버린다. 정작 요즘은 이런 추위를 겪기도 전에 우리는 두꺼운 외투와 보온이 완벽한 집안에서 보호를 받는다. 추위를 적당히 느껴야 몸의 신진대사도 추위에 맞추어 활발히 움직인다. 밤새 내린 눈을 밟으며 학교에 다다를 즈음 손가락과 발가락은 내 몸에 붙어있는지 조차 느낄 수가 없게 된다. 교실문을 열고 들어가면 교실 한가운데 커다란 난로 하나가 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덩치 큰 무쇠 난로 안에선 조개탄이 뻘건 불꽃을 쇅쇅 뿜어내고 있었다. 무쇠 난로 위에는 노란색 양은 주전자에 수증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교실 안은 은은하고 자욱한 보리차 향기가 얼어붙은 코등위로 내려앉았다.

그 정도로 충분했다.

꽁꽁 얼어붙은 우리의 손가락과 발가락은 따뜻한 보리차 향기에 사르르 스며들었다. 두꺼운 외투도 입지 않았다. 창문으론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비집고 들어 왔지만 교실 안은 그 작은 난로만으로 따뜻한 온기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지금처럼 그 시절에 추위를 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두꺼운 외투를 걸쳐 입었다면 따뜻함의 정수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삶에 모든 감정들에는 이런 상대성의 역설이 담겨 있다.


고통이 무엇인지 겪어 보지 않으면 편안함이 어떤 감정인지, 그 중심에 이르지를 못한다.


스무 살 입영 훈련소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PT체조와 행군이었다. PT체조는 단순한 동작을 무한반복 하는 훈련으로 일어섰다 앉았다라든지 쪼그려 앉아 좌로 돌기라든지 쪼그려 앉아 뒤로 돌아라든지 이런 단순한 운동들은 무릎관절과 온몸 근육에 고통을 가중시킨다. 이때 가장 행복했던 것은 아주 단순했다. 기본적인 의식주의 해결이었다. 아주 잠깐의 오분 간 휴식과 한 모금의 물마시 기는 지상에서 느낄 수 있는 천국의 맛을 맛보게 해 주었다. 경직된 근육들이 이완되면서 행복이 이렇게도 단순하다는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밤을 새워 걷는 천리마 행군은 이 단순한 걷기마저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걸 체험하게 해 준다.


"담배 일발 장전"


푸른 담배 연기가 온몸의 모세혈관을 돌고 돌아 허공으로 후욱 뱉어질 때 그 순간 모든 게 만족스러워진다. 고통은 사라지고 생각은 지워진다.


담배 한 까치의 여유, 그건 훈련병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충전제였다.


낭랑 18세라고 했던가!

자기를 알아갈수록 자기 정체성과 싸우는 나이, 그 나이 때에는 그 나이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건 신의 선물 일수도 있고 아담의 원죄 일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몫은 있다. 경중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 역시 상대적인 것이어서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다.


가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한 사람일수록, 져야 할 짐이 많은 법이다. 그 꿈이 명확할수록,

본인의 그릇의 크기를 알아갈수록,

자기 정체성과 싸우게 된다.

자기를 알아갈수록 자기와 싸워 이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가게 된다. 그건 아주 사소한 습관을 바꾸는데서 시작해서 비교적 힘들다고 생각되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까지, 경쟁자를 이기는 것 그 몇 배의 힘듦과 고통이 뒤따른다.

하지만 자기를 아는 사람은 알아가게 된다. 그 앎이 만들어주는 행복의 진수를, 그 깊이를...


곁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것, 그것이 적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간절한 마음뿐이다.


굶주려 보지 않으면 배부름의 만족을 알 수가 없다. 추위를 겪어 보지 않으면 따뜻함의 온기를 이해할 수가 없다. 어떤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보지 않으면 그 길을 완주한 자들의 환호성을 느낄 수 없다. 손톱에 가시가 박히는 아주 작은 고통일지라도 고통을 알지 못하면 편안함이 무엇인지 모른다.

모든 상대적인 것들은 이렇게 서로를 알게 해주는 존재들이다.


빛과 어두움

선과 악

고통과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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