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나다니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잇닿아 들어서 있는 빨간 벽돌의 연립주택들과 오래돼 페인트칠이 벗겨진 맨션들 그 옆으로 하얀색 신축 건물이 간혹 눈에 들어온다. 건물과 건물 사이를 까만 전선줄들이 어지럽게 연결되어 있고 정해진 시간에 지하철 사호선이 지붕만 살며시 보여주고 지나가고 건물과 건물 그 사이사이를 비집고 하얀 햇살이 땅 위로 떨어져 내리는 풍경을 보게 된다. 그 햇살은 반짝반짝 빛을 튕겨내며 골목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 마치 가로등을 켜둔 것처럼ᆢ
벽과 벽 사이에 벌어진 틈으로 직선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가을햇살은 자기 존재를 잊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건물 옹벽으로 햇볕이 차단된 골목길을 걷다가 햇볕이 쏟아지는 몇 발자국 안 되는 그 짧은 거리를 걷게 될 때 ᆢ 바로 그 순간 ᆢ
순식간에 온몸으로 쬐어오는 햇볕의 존재감
아 따뜻하다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펴고 가을볕을 쬔다.
마치 처음부터 뿌리박은 식물처럼
한들거리며 햇볕을 쬔다.
조금 아주 조금 이였을 뿐이다.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속 잔뿌리들은 땅속을 향했다.
행복이 만들어지는 그 찰나의 영속성을 찾아 나를 잡아당기는 중력을 찾아 지긋히 눈을 감는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으면 어두움과 밝음의 경계가 차츰 엷어져 간다.
그때쯤이면 항상 곁에 있지만 잘 들리지 않던 목소리와 늘 보고 지나던 사물들을 다시금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마법 같은 시간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