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선생님

가을을 사랑한 미술 선생님

by 둥이

미술 선생님

한 계절이 가고 또 한 계절이 다가오는 풍경은 언제나 감성을 흔들어 놓는다. 그건 마치 카페에 앉아 통유리를 통해 전달되는 카페 바깥의 정경을 바라보다 순식간에 찾아드는 첫사랑의 아련함이나 어린 시절 풍경들이 생각나는 것과 같다. 11월 초순 아직 바람은 매섭지 않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을비는 바람에 견딘 낙엽들을 거두어 갔다. 은행나무 주변은 노란 개나리 꽃밭이 되어 버렸다. 마치 겹겹이 포개져 쌓여 있는 은행나뭇잎이 노란 겉창을 새로 앳댄 솜이불 같다. 밟고 가기 안쓰럽다. 산책로마다 낙엽들이 비를 머금어 낙엽향이 자욱하다. 산산한 바람, 오색빛 낙엽, 한들거리는 갈대 따가운 햇볕 옅어져 가는 그림자 익어가는 가을 ᆢ가을을 닮아 마냥 같이 있고 싶어지는 가을들

색색들이 아름답기만 한 낙엽들을 볼 때면 정귀자선생님이 떠오른다.

선생님은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이었다.


"낙엽들을 왜 쓰는지 몰라"

"그냥 그대로 놔두면 얼마나 좋아 운치 있고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가 얼마나 좋다고 "


귀뚜라미가 찌르르 찌르르 울어대기 시작할 쯤이면 울창한 나무들은 초록색을 버리고 자기 몸의 지닌 모든 색을 잎으로 발산하며 내보낸다. 영원히 초록만을 간직할 것 같은 나뭇잎들은 해가 짧아지는 시절이 다가오면 따가운 햇볕과 새벽이슬을 머금고 형영색색 빛이 지닌 일곱 빛깔을 내뿜으며 느린 듯 빠르게 변해간다.


나의 중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은 유난히 이런 가을을 좋아하셨다. 가을이면 더 말이 많아졌고 낙엽들을 멍하니 쳐다보며 어쩌면 중학생들은 이해할 수 없는 눈빛과 감성으로 우리들을 가르치며 바라보셨다. 소녀의 마음을 간직한 선생님은 미소 천사였다.


"얘들아 가을은 어쩜 이리 아름답니 제발 빗자루질하지 말고 계속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어 "

"낙엽도 눈도 그냥 내버려 두어야 돼 "

"밟아보면 또 소리는 얼마나 청하 하니 "


가을 햇볕만큼이나 따뜻하고 풍성했던 선생님의 풍채는 두세 명의 아이를 품어도 넉넉할 만큼 크고 좋으셨다. 머릿결도 파마머리를 풍성하게 말아 올려 수사자의 갈퀴처럼 보였다. 마치 조선시대 중전마마처럼 말도 느리고 행동도 빠르지 않았다.


천천히 느리게 말하는 선생님의 말씀을 우리는 가끔 흉내 내며 웃고는 하였다.


갈색톤의 정장을 주로 입으셨던 선생님은 우리 반 담임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중학교 일 학년인 우리들을 마치 자식처럼 귀여워해 주셨다.


정귀자선생님...


지금도 가을 낙엽을 보면 선생님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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