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신 기억들

친구와 산책하던 일상의 기억

by 둥이

초록의 향연


어느 순간들은 스쳐가며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오랜 시간이 지나가도 내게 특별함으로 남게 되리라는 것을..

특별할 것 없을 어느 순간들이 시간이 흐른 뒤에도 평범함을 잊은 채 존재할 수 있는 이유에는 수만 개의 초록과 연녹색들로 반짝이는 오월 어느 날이 있었다. 그날 친구와 함께 걸었던 산책길 위에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일상의 하루가 있었다. 우리는 아이스케끼 그러니까 아이스크림이 아닌 하드라고 불리는 아이스께끼를 입에 물고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 수리산 산책길을 걷고 있었다. 별거 없는 일상에 어느 순간에는 이렇듯 평범한 시간 안에 뎅그러니 놓여 있는 따뜻한 햇볕과 사각이는 연녹의 새싹들과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걷는 친구의 발작국이 있었다. 그 순간이 울림으로 샤우팅 하고 있었다. 이런 순간들이 선물처럼 길가에 놓여 있었다. 단순할 정도로 행복은 간결했고 언어로 설명되어지지 않았다. 그냥 스쳐가는 순간들을 느끼며 움켜 잡으면 될 뿐이었다.


그날에 초록들은 화가의 손끝에서 한점 한점 수 놓인 수채화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온몸의 감각세포들은 예민한 촉수로 눈앞에 스쳐 가는 순간들을 주워 담았다. 오월이 만들어 주는 자연의 신비는 멀지 않은 곳,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하루를 살아가는 그곳에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때맞춰 불어오는 딱 알맞은 온도로 불어 주던 착한 바람 그 안에는 , 산책로 안 그늘이 선사하는 에어컨 바람이 있었다. 세상은 온통 하나의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하나의 초록 안에는 수만 가지 초록들이 빛나고 있었다. 친구와 함께 걷는 그 길은 모든 게 좋았다. 부푼 공기, 헐거워진 흙, 온정신을 뒤집어 놓고야 마는 산내음, 뽀얀 흙길 위로 떨어지는 햇빛 그림자, 초록은 초록을 덮어가고 연한 초록 위로 내려앉은 얅은 담요 같은 무채색 봄볕이 정겨웠다.


그 순간 시간은 고요하게 마음밭에 씨를 뿌렸다.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라고 ᆢ씨앗은 생명을 품어 언젠가는 저렇게 연녹의 새싹으로 피어나 초록의 향연을 만들어 줄 거니까


5월의 숲은 초록들의 향연들이 펼쳐져 갔다. 초록의 그러데이션을 뿌려 놓은 듯, 태양빛이 빚어주는 녹색의 점점들은 찬란한 녹색을 만들어 나간다. 만져도 상처 날 것 같은 연하디 연한 아이들의 피부빛깔처럼 연한 녹색잎들

그 옆으로 다툼을 하듯 진한 녹색으로 변해가는 색색들의 달리기 시합이 펼쳐진다. 햇볕을 받아 마신 나뭇잎들은 온통 자기 색을 찾아 치열하게 나뭇뿌리가 빨아올린 수액으로 치장을 해나간다. 마치 녹색 물감으로 수채화 그리듯 세상 모든 녹색들이 잎으로 펄럭이다.

없는 녹색이 없다. 나무 한그루에도 제각각 채도와 명도가 다른 잎맥들이 붙어 있다. 방금 툭하고 솟아오른 만지면 터질듯한 연녹을 지녀 수액이 묻어날 듯한 잎은 그 존재로 아이와 같다. 돌봄을 필요로 하는 걸까 봄바람 마저 피해 가는 듯 흔들리는 새싹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속 가득 녹색을 품어내느라 색색들은 하나의 색으로 자기들의 양식을 만들어 나간다. 아 그 고운 색들은 점점 더 진해져 어른이 되어간다. 숲은 하나의 초록을 향해 달리기를 해나간다. 하나의 초록에는 수도 없이 많은 여러 개의 초록들이 포개어져 초록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연한 초록 엷은 초록 얇은 초록 짙은 초록 어두운 초록 한그루의 나무는 그 색색들의 다양한 초록들을 한 가지 위에 길러낸다. 중력의 방향을 정확히 찾아내 자기 직근을 더 깊게 뿌리내리는 고목들의 물 길는 소리가 들려올 때면 그 한해 만들어 낼 초록들의 함성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날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은 채 초록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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