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스러움

조카 이야기

by 둥이

배구왕 지민이


지민이는 열여섯 살이 되었다.

엄마와 싸웠다며 아내에게 전화를 거는 지민이는 쌍둥이들이 좋아하는 사촌 누나다. 지민이 누나가 오는 날이면 쌍둥이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지민이도 싫지 않은지 아이들을 잘 챙기며 놀아준다. 서로에게 길들여진 건지 엄마들 등살에 의기 투합 된 건지 그들의 조합은 재미난 일들로만 가득 차 보였다. 농구공을 향해 달려드는 아이들은 서로볼을 가지려고 다투기도 하고 생애 첫 골을 넣고 뛸 듯이 좋아한다. 자전거를 타고 공원 한 바퀴를 도는데도 진심을 다해 페달을 밟는다. 지민이는 아이들 공부 가르치는 데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본인 공부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전문 과외 선생님처럼 아이들 과제물을 프린트하고 수학문제집을 사 와서 나눠주기까지 진심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친다. 시간당 만원이라는 수입은 별개인양 엄마 아빠한테 듣지 못한 따뜻한 교육방식에 쌍둥이들도 어렵다던 수학문제를 술술 풀어나간다. 식당에 들러 주문을 할 때면 큰딸에 남자아이 두 명 완벽한 조합을 보며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겠다며 부자라고 말해주는 식당 사장님들, 옷가게 들려서는 검은 블랙후드 티가 이쁘다며 열심히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해주는 지민이. 아이들은 이런 지민이를 누나 누나 누나 누나 자기를 봐달라며 쫓아다닌다. 성당에 갈 때면 지민이는 옷장을 열어 아이들 옷을 골라 입힌다. 최근 감성으로 자기 마음에 드는 스타일로 코디된 아이들은 제법 멋져 보인다. 내 옷도 좀 골라주면 좋으련만 고모부한테는 용돈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고모 생일 선물을 고르기 위해 검색을 하던 지민이는 고모와 엄마에게 그동안 모은 용돈을 투자했다. 속이 깊은 아이로 인해 두 갱년기 여성들은 행복해했다. 성당 자매님이나 형제님들은 지민이를 보며 환대해 준다. 다소곳이 앉아 성당 나오라는 어른들의 지루한 설교를 두 시간 동안 웃으며 표정관리 할 줄 아는 예의범절 덕분에 스타가 되었다.

성당 동생들의 이름도 어느새 외웠던지 쌍둥이들의 친구들 아는 체도 해준다.


"그래도 내가 조카인데 고모 얼굴 봐서 꾹 참고 듣고 있었어 " "학교 수업시간 이었으면 벌써 잤을 거야 "


"고모 이거 먹고 내가 지켜볼 거야 "

"화가 다스려지는지 애들한테 화를 덜 내는지 "


큰 눈망울 작은 얼굴 긴 팔다리 비율 깡패 지민이는 공주 같은 예쁜 얼굴에 털털한 성격까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을 지닌 아이다.


지민이의 요즘 패션은 자주색 그렇니까 정확히는 팥죽색 보다 연한 무르팍이 툭 튀어나온 통 넓은 운동복 바지를 일상복처럼 입고 다닌다. 나름 영혼의 깔맞춤인 듯 그 색상에 대한 애착도 대단해서 후드티도 같은 색상으로 구매해 입고 다닌다. 외모만 봐서는 여리디 여린 공주처럼 새침 할 것만 같은 지민이지만 막상 옷 입는 스타일이라든지 털털한 성격만 봐서는 이런 배반도 없을 듯하다.


비율은 타고난 덕에 어떤 옷을 걸쳐 입어도 잘 어울린다. 그 어떤 옷을 입어도 난감한 패션이 되고 마는 나하고는 태생 비율이 다르다. 신은 어쩌자고 저런 비율과 귀티 나는 얼굴을 지민이에게 주셨는지 그걸 알아야 될 터인데 함부로 사용하는 지민이가 부러울 때가 많다. 넉넉한 오버핏의 옷들을 좋아하는 지민이는 후드티를 즐겨 입는다. 입는 것만큼이나 먹는 것도 자기만의 영역이 확실한 지민이는 김치를 먹지 않는다. 오이지와 동치미를 먹고 있는 주완 지민이를 보면 외국인이 김치 먹는 한국사람 바라보는듯한 표정을 짓는다. 지민이의 주식은 스파게티 컵라면, 기름 떡볶이 감자튀김, 치킨 등과 같은 미용과 건강에 안 좋은 음식을 좋아한다. 뭐 누가 먹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조합이긴 하다.


지민이는 열여섯 살이다. 몸과 마음이 훌쩍 커가는 시기이다. 저 자신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마음은 사방을 들쑤시고 다닌다. 꽃처럼 예쁜 나이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이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다. 안타까운 건 자신만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새순이 떨어지고 꽃잎이 져야만 과일이 열리듯 사춘기 생각이 많아지는 그 시절을 지나쳐야만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가게 된다. 어디서 왔고 지금이 어디이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그 시절을 지나면서 알아가게 된다.


지민이는 지민이 답게 지민이 다운 모습으로 자기 색깔을 만들어 간다.

정체성 자존감 나 다움을 만들어 내는 게 아름답다의 뜻이라고 했던가,

아름다움이 만들어지고 있다. 타고난 운동신경 덕에 중학생이 되어서는 스케이트를 타겠다며 링크장을 다녀었다. 국대 선수처럼 멋지게 링크장을 달리는 지민이의 영상을 보며 난 왜 저 나이 때 저렇게 못했을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요즘은 배구부에 들어가 배구왕 통키를 꿈꾸며 체육관을 돌고 있다고 하니 팔방미인이 따로 없다.



며칠 전 손홍민을 키워낸 아버지 손웅정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대나무의 어린 죽순은 새싹으로 올라오기 전 땅속에서 오 년이라는 시간을 버틴다고 한다. 그 시간 동안 죽순은 자기가 뿌리를 내릴 공간과 자기가 생존해야 되는 땅의 성질과 수질의 방향 중력과 수향 등을 찾아낸다고 한다. 그렇게 생존을 위한 준비가 끝낸 죽순은 땅을 뚫고 올라와 자기만의 비상을 꿈꾸며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향해 커나간다. 하루 70 션티미터 마디마디 매듭을 만들어가며 자기 매듭을 밝고 성장해 간다."


지민이와 나눈 대화를 정리해 보면 이렇다.


"하루종일 유튜브 보고 영화 보고 인터넷 하고 각자방에서 안 나와 "

"하루 종일 하면 그것도 재미없거든

고모네 집에 오면 애들이 있어서 이야기도 하고 같이 놀고 재밌어 "


"난 언니처럼 공부만 하진 않을 거야 "

"난 하고 싶은 게 많거든 "


" 고모부 이 청바지 이쁘지 근데 돈이 좀 부족한데 " 십오만 원이야 보내줄 거지


"어떻게 고모부와 그렇게 지내 이상한데"



나도 가끔은 이상한 생각은 들지만

나 역시 지민이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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