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살의 아가씨

여행길 행복한 만남

by 둥이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다.

스물여섯살 이라고 했다.

곤돌라 문을 열고 들어온 아가씨는 한 손으로 핸드폰을 귀에 대고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었다. 오후 네시 줄을 서고 곤돌라를 타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탓인지 여덟 명씩 꽉꽉 채워 올려 보낼 때완 달리 내려가는 곤돌라 안은 두 명 탄 사람도 내려 보내고 있었다. 앞서 내려간 곤돌라 몇 대는 한 명만 타고 내려가기도 한터여서 우리 가족만 타고 내려가는 줄 알았다. 뒤에 서있던 아가씨는 줄 서 있는 동안에도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혼자 타고 갈 것만 같았던 아가씨는 우리가 탄 곤돌라에 문을 닫으며 들어와 살며시 앉았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 곤돌라가 아니면 약속시간에 늦는다는 듯이,


하얀 솜털 모자와 순백색 스키복을 입은 예쁘장한 아가씨가 문을 닫고 앉으려는 그 순간 난 중학교 때 보았던 소피마르소 주연의 영화 유콜잇러브 첫 장면이 생각이 났다. 하얀 눈발이 쌓인 프랑스 어느 스키장, 두 명이 간신히 탈것만 같은 작은 곤돌라에 소피마르소가 스키헬맷과 고글을 쓴 채 타고 있었다. 떠나려는 순간 남자 주인공이 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다. 남자 주인공은 앞에 앉은 사람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분홍색 립밤을 두툼한 입술에 잔뜩 바르며 쵸쿄렷을 먹고 있었다. 계속해서 남자 주인공은 립밤을 입술주의 지저분하게 묻힌 체 쵸코렛을 먹으며 앞에 앉은 사람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남자 주인공은 쵸코렛을 먹겠느냐며 내밀었다. 그때였다. 영화 주제곡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며 여자 주인공이 클로즈업 되었다. 소피마르소는 고글과 헬멧을 벗으며 긴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전 세계 남자 팬들이 열광하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영화 속 남자 주인공만큼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그중에 중학생이었던 나도, 소피마르소의 곤돌라 등장신을 열광하게 되었다. 소피마르소가 전설이 되는 순간이었다.


곤돌라에 앉아서도 한동한은 통화를 이어가던 아가씨는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응 칠십 살도 넘으신 할아버지가 손주와 같이 스키 타러 왔어 너무 멋있더라고 "


대충 그런 이야기를 친구와 나누는 듯했다. 하얀 털모자를 쓰고 흰 스키복을 입은 아가씨는 작은 얼굴에 눈코입 얼핏 봐도 상당한 미인이었다. 혼자 곤돌라를 타고 내려갈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왠지 도도하고 쌀쌀맞을 무언가 물어봐도 쌩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나의 느낌이 깨진 건 그때 즘이었다.


" 강풍이 불어서 스키를 타지도 못하고 무서워서 곤돌라 탔어요 "

" 폴대를 받쳐는데도 바람에 밀리더라고요 무서워서 엉덩이로 밀고 내려왔어요"


주완이가 스키를 싣고 타는 아가씨에게 "왜 스키를 싣고 곤돌라를 타느냐며" 불쑥 말을 건넸다. 주완이는 혼잣말 처럼 했는데도 그 말을 듣고 아가 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었다.

어른들과 이야기 나누는 법을 아는 주완이는 혼잣말처럼 이야기했지만 같이 탄 아가씨가 들릴만큼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마도 그렇게라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말지 모 그 정도의 기분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저는 중학교 때부터 스키를 탔는데 아직도 제대로 못 탄다며 아이들은 잘 타나요" 며 아내에게 물어봐 주었다. 아가씨 앞에 앉은 지완이는 쑥쑥러웠던지 엄마가 누나라고 부르라고 한말을 듣더니 누나라고 하기엔 너무 어른인 것 같다고 했다. 아가씨는 그 말에도 반응해 주었다. 아이들한테 말을 할 때도 말을 놓지 않았다. 다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대화를 이어가는 자연스러움, 마치 오래도록 알아온 이웃처럼, 스물여섯살의 아가씨는 눈과 입으로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모라고 불러도 돼요 이모"


주완 지완이가 쌍둥이인 것에도 격한 반응으로 리액션해 주었다. 얼굴만 이쁜 게 아니었다. 마음씨도 목소리도 상대방을 배려하며 말 한마디 놓치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대화를 이어나갈 줄 아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아이들 몇 살이예요"

11살 초등학교 사 학년이에요

"이모가 15살 많으니까 이모라고 불러도 돼요


내가 아는 오빠들이 이란성쌍둥이인데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고 보기가 좋아요 닮았어요 이란성인데도요


제가 스무 살이 넘어서 보니까 부모님이 해주시는 게 그때까진 너무 당연히 받기만 했거든요 근데 그게 정말 감사한 거더라고요


쌍둥이 스키강습 이틀간 받았다는 말을 듣더니 부모님한테 감사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가씨의 센스는 탁월했다.

아이들의 말에도 , 아내의 말에도

그리고 중년 남자인 나에 말에도

놓치지 않고 웃으며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아가씨가 아름다워 보였다. 대화를 맛있게 이어가는 아가씨의 매력이 곤돌라 안을 채워가고 있었다. 아름답다는 건 단지 외모뿐만이 아니었다.


곤돌라 정상에서 내려오는 25분의 시간 ᆢ 지금까지 수도 없이 타봤었던 곤돌라였거만 이런 아름다운 만남은 없었다. 스물여섯 살의 예쁜 아가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이런 분을 만날 수 있는 게 여행이 만들어주는 보너스일 거라 생각했다. 걸그룹 윤보미의 목소리를 닮은 아가씨는 곤돌라가 도착할 때쯤 오늘은 숙소 들어가 푹 쉴 거라 했다. 즐거운 여행 보내세요 인사를 나누었다. 곤돌라 뒤로 멀어지는 이모의 뒷모습을 보느라 쌍둥이들은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한참의 여운이 남았다.


아내도 인상이 좋았던지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운 사람이었다고 칭찬을 한다.


모나 용평 스키장에서 보낸 이틀간의 스키강습 그리고 마지막날 곤돌라 안에서 행복을 만들어 주었던 우연한 만남...


행복이 뭉굴 뭉굴 만들어지는 시간..

준비물은 따로 없다.

그냥 주우면 된다. 주어 담으면 된다.

행복 줍기 였다. 마치 유콜잇러브의 첫장면 처럼 마음도 얼굴도 소피마르소 보다 더 아름다운 스물여섯살의 아가씨를 영화 처럼 만난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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