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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Apr 08. 2024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받은 날

건강검진 이야기


"일주일에 몇 회나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하고 있나요"  건강 검진 문진표에 나와있는 질문들을 읽어 내려간다. 인생을 결정짓는 입시 시험이라도 보는 듯 신중하게 두어 번을 읽는다. 그건 마치 문진표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적어야만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세인 듯했다.  그러곤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평소 걷는 정도면 여기에 표시를 해도 될 거야" "아니지 땀이 안나잖아 두 시간을 걸어도 땀이 안 나면 어디에 체크를 해야 되나? "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쓸모없는 생각들을 해가며 문진표를 작성하여 간호사한테 주었다.

매년 받는 건강검진인데도 혹시나 뭐라도 덜컥 나오진 않을까 걱정이 드는 건 아직 죽음에 익숙지가 않아서 인듯하다. 뭐 그건 수도사가 아닌 바에야 길들여 질래야  질 수 없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이 옷으로 갈아입으시고 나오세요.

위에 아무것도 입지 마세요 "


간호사가 건네준 윗옷은 요리사들이 입는 옷처럼 팔을 넣고 옆구리에서 끈으로 묶어주면 되는 옷이었다. 옷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지만 입고 보니 제법 잘 어울렸다. 그래도 명품인 헤이지즈 체크무늬 난방인데 병원 옷이 좋아 보이다니 좋고 나쁘다는 기준에 혼동이 오기 시작했다. 병원은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그리곤 키와 몸무게 청력 시력 측정을 한 후 초음파실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가 지금껏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재미나다면 재미있고  좀 어이없다면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다. 약간은 어이없는 일에 가깝지만 그것도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럴 수 있을 거야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나란 사람은 한번 가던 곳을 계속 가고 새로운 곳은 잘 가지 않는 사람이라 매년 같은 내과의원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다. 익숙한 냄새와 길들여진 공간 배치가 좋아서 인지도 모른다. 초음파실로 들어가 매번 누웠던 침대에 누워 간호사가 말하기  전에 웃옷을 벗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 초음파 기계 앞으로 마스크를 낀 여성분이 나타났다.   


망설임 없이 초음파 기계는 나의 경동맥부터 흘낏 시작했다. 경동맥을 하나하나 훌코가던 손놀림은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왠지 조작법이 익숙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내 몸에서 초음파기계는 방황을 하는 듯했다. 그 순간 또 한 명의 여자분이 컴컴한 초음파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이  설비 작동법이 너무 어렵네요 이건 무슨 기능인가요 "


그 말을 듣고 난 벌떡 일어서고 싶었다. 상황을 듣고 있자니 초음파실 관리자가 인수인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이건 완전히 마루타가 된 듯 30분이면 될 초음파 측정이 한 시간 정도로 길어졌다. 경동맥에서 시작한 초음파는 심장과 간 복부로 이어져 내려갔다.


"아니요 더 세게 룰루셔야 돼요"

"네 취장 이에요 여기를 눌러야 동영상이 촬영돼요 네 이 설비 익숙해지려면 며칠 걸려요"


왜 이런 이야기를 환자 면전에서 소곤소곤 이야기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위안이 되었던 건 두 분의 여자가 한 팀이 되어 나의 전신을 초음파 기계로 훌터가며 해부학 강의하듯 열정을 쏟아부어주었다. 어찌 보면 대단한 호사였다. 지금껏 받아보지 못한 의료 서비스였다.


두 분의 열정적인 초음파 때문이몄던지 점점 잠이 오기시작 했다. 초음파를 받다가 잠이 오긴 처음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한분이 물정 모르고 잠이 든 나를 깨웠다.


초음파실에서 왠지 있을만한 병도 치유가 된 듯 기분이 좋아져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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