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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Sep 06. 2024

아내와 산책하기

비 오는 날의 산책길에서

노란색 우비를 입은 아이들의 산책



가을비가 내리는 금요일 아침이었다.

아내와 나는 우산을 들고 수리산을 찾았다. 그날은 비를 맞으며 걷기에 좋은 날씨였다. 어쩌면 비냄새가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덥지도 않았고 비가 온다고 춥지도 않았다. 그냥 빗방울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데 한 여름에 예고 없이 퍼붓는  소나기에서 느껴졌던 따뜻한 온기가 생각났다. 어찌 보면 따뜻한 비였다. 그래서일까 숲은 더 많은 안개로 덮여 있었다. 숲향기 안에는 여러 가지 냄새가 섞여 있다. 낙엽이 분해되는 냄새라고 해야 되나 정확하게 숲 속 냄새를 담아내는 언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낙엽이 분해되어 가면서 공기 중에 분출하는 기체 덩어리 일 것이다. 층층이 쌓여 있는 낙엽더미 에는 아파트 일층처럼 흙과 가까운 곳에 있는 낙엽부터 순서대로 분해되어 흙이 되어간다. 모든 것은 다 그렇게 분해가 되어 흙이 된다. 낙엽처럼,  다만 순서가 다를 뿐이다.




안 산책길로 들어 갈수록 하얀 안개가 낙엽 사이로 올라오고 있었다. 숲은 안개로 덮여  자욱 해져 갔고 금방이라도 펑하고 누구라도 나올 것만 같았다. 기세 좋게 뻗어 있는 상수리나무와 솔향기를 품어내는 소나무들 사이로 빗방울이 투투둑 떨어진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우산 위로 빗방울이 도르르 흘러내린다. 후드득 부서지는 빗방울 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본다. 숲 안은 진한 향기가 피어난다. 젖어가는 흙길 위에 물줄기가 흐르고 숲으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은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조용히 들어 보면 큰 낙엽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조금 둔탁하게 울린다. 그보다 작은 낙엽에 떨 서지는 빗방울은 좀 더 청명하게 울린다.

솔가지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울림의 소리는 없지만 다른 조용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흙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은 작은 웅덩이를 만들어 낸다.



그렇게 산책로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리들 앞으로 노란색 우비를 입은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세 살 네 살 정도로 보이는 앙증맞은, 천사 같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같은 색 우비를 입고 있었다. 노란 우비 뒤쪽에 하늘유치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비를 맞고 있었다.

고개를 하늘로 들어 빗방울이 얼굴로 떨어지도록,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천천히 돌고 있었다. 마치 떨어지는 모든 빗방울을 쓸어 담기라도 할 듯이,


아이들은 나무처럼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웃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고 까르르 웃으며 마치 비를 오랫동안 맞아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마치 들풀과 나무처럼, 떨어지는 비를 향해 얼굴을 마주 했다. 마치 풍경의 일부가 된 것처럼 아이들은 빗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두 팔 벌려 비를 맞는 그곳에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다른 소리는 굴절되었고 오직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들려왔다. 수영장 바닥에서 느껴지는 중력의 끌림이 온몸을 잡아당겼다.



그건 묘한 감정이었다.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그리고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찾은 것 같은,


아이들의 산책은 더없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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