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둥이 Oct 14. 2023

남편의 능력 - 젖은 낙엽의 사는 이야기

사는 맛

우연히 아내의 뜨개질 모임 지인분들과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 모임은 어디까지나 아내가 참석하는 뜨개질 모임이어서 아빠가 참석한다는 게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란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젖은 낙엽처럼 아내 곁에 붙어 쇼핑을 하거나 근처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편하고 좋았다.

 


그래서일까 아내 친구분들과 같이 있어도 난 편하고 좋았다. 그분들은 조금 불편했을까 표정으로만 본다면 나와 같은 기분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엄마 네 분에 둘러싸여 단지안 치킨집에서 치맥을 하며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사소한 일상과 사는 이야기 별거 없는 오늘과 어제의 이야기들 아이들과 남편 뒷바라지에 대한 이야기들 이였다.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으면 삶의 찰기가 느껴진다. 삶의 온기가 따뜻하게 피어나 사는 맛이 더해진다. 한마디로 재미가 있다. 네 분의 엄마들은 아내를 언니라고 부른다. 제이미의 영어 발음은 가끔 박찬호를 연상케 한다. 제이미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지낸 덕에 영어를 잘하신다. 만날 때마다 난 그분의 영어이름을 그러니까 미국식으로 편하게 제이미라고 부른다. 마치 올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마치 내가 그분만큼 영어를 능숙하게 말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제이미가 들려주는 27층 핑크색 캣 맘은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에 나올듯한 캐릭터 같았다. 같은 동에 사시는 이웃집 할머니 이야기 라며 제이미는 맥주잔을 들며 이야기해 주었다.


"우리 동에 이런 분이 살아요"


제이미는 웃으면서 이런 분 보신 적 있냐며 핑크색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 27층에 할머니 한분이 있는데요. 이분이 엄청 특이하세요. 세상에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인상을 팍 쓰고 안 타세요 "


코로나 여서 사람들과 접촉을 피하시려고 하나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할머니는 사람들을 피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사람들을 극혐 하는 단계까지 가신 듯해요


"한 번은 엘리베이터에서 애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나 봐요. 애들한테 엘리베이터에서 떠들면 안 된다 야단을 치시는 거예요. "

"할머니 이야기라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끝냈는데 저희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


"엘리베이터에 비닐장갑을 끼고 타세요 버튼도 비닐장갑을 낀 채 누르고요 뭐 코로나 때는 이상할 게 없었는데 지금도 계속 비닐장갑을 끼고 다니세요 "


"27층 할머니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어요. 어딘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존재감이 있어 보이고 드세 보이기도 하고 입바른 소리를 자연스럽게 던지는, 음식 하듯이, 소금 간 맞추듯 잊지 않으시는,  그런 할머니의 인상을 뿜어내는 꼬장꼬장하신 할머니처럼 보였어요. 허옇게 센 머리카락에 곧은 허리 나이는 칠십은 훌쩍 넘어 보였고 까만 뿔테 안경과 할머니들이 즐겨 입는 진한 원색이 아닌 연한 핑크색으로 맞춰 입은

할머니의 포스는 어디서든 눈에 띄었어요.

근데 중요한 건 여기서부터예요.

이 할머니가 동네 들고양이들 밥을 챙겨 주더라고요. 물도 떠다 주고요. 볕 좋은 날엔 고양이들 옆에 앉아 햇볕 쬐기도 해요. 뒤에서 딸로 보이는 여자가 재촉을 해도 들은 체도 안 해요. "


"고양이들한테 쏟는 정성을 사람들한테 반만 이라도 쏟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


제이미는 애완견 키우는 것을 좋아하는 분이다. 이날 제이미는 머핀이라는 애완견을 데리고 나왔다. 머핀은 갈색털의 2kg 암컷이었는데 짖지도 않고 매우 순했다. 아이들은 머핀을 데리고 뛰어다녔다. 우리는 머핀을 보면서 애완견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은 애완견 카페와 애완견 샵등 이 많아져서 사람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


핑크캣 할머니가 들고양이를 챙기는 것도 어쩌면 사람 곁이 그리워서 그러지 않을까


똑같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우리 대부분은 저마다의 들고양이를 키우고 살아간다. 나에게는 책 읽기와 화초 키우기가 그럴 것이고 제이미에게는 머핀 애완견을 키우는 일이 그럴 것이다. 아내에게는 아이쇼핑과 성당모임 일들이 그럴 것이다. 누구에게나 몰입하는 것들이 있다. 그런 몰입들은 사람들을 웃게 해 주고 살게 해 준다.


대화를 나누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가진 힘을 잘 분배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주변 이웃들을 위해 쏟는다면 그게 진정한 웰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건 그 첫 번째가 사람이 먼저여야 된다는 것이다. 책 읽기가 아무리 좋다 해도, 애완견이 아무리 좋다 해도, 이웃과 함께하는 시간만큼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아마도" 그건 우리를 살리는 묘약이 아닐까


.

이전 14화 아내의 친구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