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 의사의 시선이 장인어른과 아내와 나를 천천히 훑어 보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뿔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어떤 말을 해야 되는지 말을 고르는 듯했다. 웃음기 없는 차분한 표정이었지만 말투와 표정은 신뢰감이 들었다.
"환자분 한테 직접 이야기해도 될까요"
외과의사의 그 첫마디로 우리는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그건 어쩌면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보다 더 솔직한 의사의 화법 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의사가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특히 여러과중에 암환자를 다루는 외과의사였다면, 그리고 그 외과의사가 말기 암환자의 초음파사진을 보고 환자에게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경우라면, 거기다 그 환자가 팔십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였다면, 그렇게 비교적 직접적인 언어로 설명을 하기보다는 다르게 말했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장인어른은 의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우리가 끼어들 어떤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서둘러 대답을 했다. 어쩌면 아내와 나의 다음 행동을 막으려고 했는지 도 모른다.
"저한테 이야기해도 됩니다."
"간내담도암 4기"입니다."
외과의사는 강의하듯이 부드럽고 단아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병이 어떤 병인지, 예우가 극히 좋지 않은 암이란 것과
그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한참을 뜸을 들여 가며 설명을 해주었다. 외과 의사의 목소리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안정감을 주기에 충분했었고, 거칠던 우리의 호흡도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장인어른의 시간이 짧게는 ♧ 이란 말을 들었을 때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복박치는 설움이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감정을 억누를수록 거대한 슬픔이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의사의 차분한 표정과 저음의 목소리에서 장인어른의 간내단도암 4기라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나왔을 때, 세상은 둘로 갈라졌다. 의식은 오 분 전, 십 분 전, 한 시간 전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잘못 들었겠지, 아닐 거야 분명히 아닐 거야
아내의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장인어른의 초음파 사진이 우리 앞으로 펼쳐졌다. 국어책을 읽듯, 차분한 목소리는 간내단도암 4기가 어떤 병 인지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마치 사소한 감기 증상을 설명 듣는 듯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의사의 설명을 들을수록 아내와 나의 목소리는 흔들렸고 심장 박동은 커져갔다.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간암 그것도 예우가 극히 나쁜 간내단도암 이라니, 하느님, 소리치고 싶었다.
병원으로 오면서 보았던 파란 가을 하늘과 머리 위로 쏟아지던 눈부신 햇살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캄캄한 침묵과 번쩍거리는 소음이 번갈아 달려들었다. 마치 긴 터널을 통과할 때 들려오던 환청과 암흑과 햇빛이 번갈아 달려들듯이, 의식은 몸에서 떨어져 나가 허공을 헤매었다.
장인어른의 항암투병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아무리 의연한 사람이라도 암말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멘털이 먼저 무너지기 마련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암이라는 불치병 앞에서 허무하게 꺾여 버린다. 돌연 분노가 치밀기도 하고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외로움과 우울증에 심한 고통이 따라온다. 하지만 아버님은 평온해 보였다. 표정과 말투의 변화도 없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해도 죽음은 누구도 경험해 볼 수 없는 영역이기에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처음이기에 두렵기 마련이다. 그런 죽음 앞에서 아버님은 일상의 리듬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건 오랜 수련으로 죽음 너머의 세상을 깨달은 수도사들한테서 나 볼 수 있을 평온함 이였다.
그 주 목요일이 대입수능이었다. 장인어른은 수능이 끝날 때까지 처남들한테는 알리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다. 당신의 병환이 손주들 시험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장모님과 처남들 가족들한테는 PET CT검사가 나오는 월요일까지 알리지 않기로 했다. 장인어른은 간도담도암 4기라는 병환보다 더 지키고 싶은 게 있었다. 다른 장기로 전이가 되지 않았을까 만약 조금이라도 전이가 되었다면 항암마저도 힘들어질 수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패트검사 결과가 나오는 월요일이 무서웠다.
그렇게 길고 힘든 일주일이 지나갔다. 아내는 며칠을 울었다. 퉁퉁 부은 얼굴로 아침에 일어나 겨우 밥을 먹었다. 패트검사가 나오는 월요일,
다행히 다른 장기로 전이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임파선까지 퍼져 있는 패트사진을 보며 의사는 서둘러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된다고 했다.
" 난 항암 안 받는다."
장인어른의 평온함에는 이유가 있었다. 장인어른은 한평생 다 살았는데 이제와 수술이니 항암이니 어수선을 떠는 게 싫었다. 치료가 늦었다는 걸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
우리는 차 안에서 장인어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장인어른은 살려고 하는 의지보다는 자식들을 슬프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그래서인지 자식들이 원한다면 그 뜻에 따른다고 했다.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지만 눈동자는 이미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장인어른이 쳐다보는 그 허공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비록 그 마음이 어떨지는 짐작할 수 없다지만, 한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는 나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광명중앙대 병원을 찾아간 것은 11월 21일 목요일이었다. 암병동으로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그 넓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이렇게 암환자들이 많구나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이 뻘겋게 충혈되어 울고 있는 젊은 여자를 늙수그레한 할머니가 다독이고 있었다. 순간 누가 암환자 인지가 궁금했다. 대부분 의외로 위로해 주는 쪽이 암환자라는 게 이상한 일이지만, 암병동 안에는 보기에도 안쓰러운 암환자들이 간절함으로, 두려움으로, 때론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 없는 표정으로, 울고 있는 환자들이 많았다. 남일 같지 않았다. 그들의 감정이 너무 손쉽게 내게로 번져왔다. 미치 빨간 물감 한 방울이 소리 없이 퍼져 나가듯이 거대한 슬픔이 입을 벌린 채 나에게 달려들었다.
근래에 새로 신축해서 문을 연 대학병원이라 그런지 암병동의 규모도 컸고 찾아오는 암환자도 많았다. 9시 42분 우리는 간내단도암 전문의를 만났다. 장인어른은 의자에 앉았다. 많은 암환자를 진료한 의사라서 그런지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와 환자의 표정과 말투만으로 이미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의사의 화법으로 장인어른을 대하였다.
환자의 아주 작은 것 하나를 놓치지 않는 눈썰미는 왜 그가 알아주는 간내단도암 명의인지를 알게 해 주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림은 의사 앞으로 바짝 다가와 눈동자에 잔뜩 힘을 주고 앉는 법이라고 의사는 이야기해 주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는 암환자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항암제였다. 장인어른의 눈동자와 앉은 자세를 눈여겨본 의사는 건강해야 항암을 할 수 있다고 동기부여를 해주었다.
장인어른은 의사 앞으로 바짝 다가서지 않았고 많은 질문도 하지 않았고 의사의 격려 섞인 당부에 답변만 하였다. 간내 단도암 패트사진에 나와있는 암이 퍼져있는 크기를 보면서 임파선과 간에 저렇게 많이 퍼졌었나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어쩌면 안 본 것만 못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