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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의 사랑법

장인어른 이야기

by 둥이

아버님은 풍채가 좋으셨다.


희끗희끗 하얀 정갈하게 빗어 넘기신 머릿결, 곧고 긴 팔다리, 꼿꼿하신 허리, 단단한 근골, 아버님의 건강은 연세에 비해서 좋으셨다. 늘 건강하셨고 말씀도 언행도 다부 지셨다. 스마트폰으로 손주가 입학한 고등학교 검색도 해보시고 며느리가 다니는 교육공무원 조직도도 알아보실 만큼 IT 기계를 스마트하게 사용하실 줄 아는 어른이시다. 아들 사위와 같이 있어도 아버님 풍채에 미치지 못했다. 사진을 찍는다는 가, 가족모임이 있다든가, 무리 속에 섞여 있어도 훤칠하고 훤해 보이셨다. 풍채만큼이나 성격도 좋으셨고 남들과의 대화를 늘 이끌어 나가셨다. 사위나 아들과 같이 있는 자리에서나 지인분들과의 대화에서도 항상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으시면서 정을 나누셨고 그런 걸 좋아하셨다. 아버님을 좋아하는 지인들은 언제나 아버님이 지혜롭고 겸손한 분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아버님은 그렇게 정이 많으신 분이셨다.


아버님은 경우와 도리에 밝으셨고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거침없는 언변으로 말씀도 나누셨다. 분위기가 좋다 싶으면 밤늦도록 주변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숙취도 없으셨던 터라 아버님 대작 상대로서는 늘 많이 부족했다. 아버님 집 현관문에는 베트남 참전 용사 문패가 걸려있다


결혼 전ᆢ그렇게 싫다던 아내를 몇 년간 쫓아다녔다 그만큼 그냥 좋았다 아내는 밝고 웃음 많고 배려심 많은 말이 잘 통하는 입사 동기였다 줄곧 붙어 있다 보니 좋아하는 감정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몇 년간의 걸친 사랑 고백이 결실을 맺게 되었다 아내는 아버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버님이 찾으시는 사위 조건에 부합되는 게 많지 않았다. 좋은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었고, 가진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아버님처럼 훤칠하게 키가 큰 편도 아니었기에 조금은 주눅이 들었다.


"아버님이 싫어하시면 어쩌지ᆢ 딱 봐도 왜소하고 부족한 게 보일 텐데 어떡하나 "


아버님 어머님께 첫인사드리러 가는 날은 머리가 하해 졌다 머릿속이 빙글빙글할 말을 미리 적어서 외우고 되새기고 했는데도 말이 겉돌았다. 긴장감에 목이 말라갔다.


아내와 백화점에 들러 점잔을 만한 옷으로 사 입었었는데 또롯히 옷에 색상과 행색이 기억난다 하늘색 반팔 니트에 베이지색 면바지 갈색 단화 구두를 신고 한 손에는 장미꽃과 소고기 세트를 준비했다.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아파트에 살아본 적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8층을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을 때,그 긴장된 풍경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박제된 체 남아 있다


아버님과 어머님은 반갑게 맞이해 주셨다


" 어서 오게ᆢ이야기 많이 들었네 우리 현정이를 많이 이뻐해 준다고 들었네 "


"아버님 어머님 안녕하세요 ♤♤♤이라고 합니다"


이름 석 자를 말씀드리고 난 후 어떤 대화를 했고 어떻게 대답했는지 제대로 된 말씀을 드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여쭤봐 주시는 데로 횡설수설한 것 같았다. 용인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다는 것과 형제들, 종교ᆢ등 우리 집 사는 형편에 대해서 말씀드렸었다.


" 아버님 어머님 제가 돈 잘 벌겠다 호강해 드리겠다 약속할 순 없지만 제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현정이를 사랑하고 평생 지켜주겠다 이것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던 게 기억난다.


훗날 아버님은 이날의 인상을 웃으시며 말씀해 주시곤 하셨다


"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네의 인상이 나쁘지 않았네ᆢ현정이를 많이 아껴준다고 들었던 터라 다른 게 보이지는 않았었나 보네 "


결혼 이후 지금까지 아버님이 보여 주셨던 한결같은 가족 사랑과 가족을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느끼고 배웠다


<"인생을 살다 보니 어렵고 힘든 일들과 부딪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돈과 엮여 있을 때도 있고 사람일 때도 있고 건강일 때도 있어요 그때 제일 중요한 건 마음의 평정심이야 급할수록 느긋하게 천천히 한번 더 반추하고 주변과 의논해서 풀어나가야 돼 너희 삼 형제가 그랬으면 한다 지금도 서로 의좋게 지내는 걸 보면 우리 부부가 여간 행복한 게 아니다 너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 흉 없이 막연하게 지내는 걸 보면 참 행복한 가족들이다 생각 들어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이 넘치는구나 ">


<"나이 칠십이 훌쩍 넘고 보니 지난 온 시간들이 회한이 들어 어 더구나! 가부장 적이기만 했던 지난날의 내가 보이더구나 살아보고자 했던 바도 컸고 시절이 그러하기도 했다만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후회스러운 게 많더구나 자식들이 출가하고 그 자식들이 손주 낳고 식솔들 간수하며 살아가는 것 보면서" >


<"따뜻한 가정을 일구는 것을 보면서 느낀 게 많았어ᆢ어찌 보면 자식들이 날 가르친 겪이지 칠십넘어 이렇게 변한 것은 자식들 영향이라 부정할 수 없었지 며느리들아!이 시아버지 때문에 지난날 마음 아프게 했던 게 있으면 용서하려무나 아픈 게 했다면 잊고 용서하려무나! 너희에게 알게 모르게 마음을 아프게 한게 있다면 미안하다. 용서하려무나">


촉촉해진 장인어른의 눈가가 빨갛게 물들어갔다. 장인어른은 두아들과 딸과 며느리들을 천천히 바라 보면서 술잔을 비우셨다.


얼굴이 발그레 해지신 아버님은 그동안에 당신이 했던 말들로 상처받았을 자식들에게 용서를 구하신다며 술 한잔을 털어 넣으셨고 자식들의 눈동자는 젖어들었다.

시절이 요구하던 아버지 역할이 같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어쩌면 많은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던 당시의 아버지들은 가부장적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억척스럽게 땅을 일구고 심고 거두어야 자식을 키울 수 있었고 부모를 봉양할 수 있었으리라 지금 만큼 선택의 폭이 넓지 못했던 척박하기만 한 그 시절의 아픔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버텨가며 한세대를 살아오신 부모님들은 자식을 가르치는 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그렇게 한 많은 감정을 가슴에 지닌 채 한평생을 살아오셨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없었다면 온전히 커나갈 수 없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켜켜이 쌓인 당신들의 서러움을 어루만져 드려야 됨은,


아버지가 되고서야 그 서러움의 무게를 알게 됨이리라. 세대의 사랑법은 같을 수가 없다는 걸, 그 시대의 시절과 시류가 다르기에,

우리에게 보여주신 아버님의 사랑은 아버님이 회한이 될 만큼 아픈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ᆢ 앞으로도 계속 말해 드려야 됨이리라.

부모의 사랑은 어느 시절이나 한결같다.

그 사랑의 본질은 쉬 변하지 않는다.


자식이 상처받았을까 진심을 다하셨던 분ᆢ 부모라면 누구나 할 수 있던 말들이 자식에게 모진 소리였음을 이제야 알아가겠다며 이 나이에도 자식을 통해서 배우고 하는구나!!


술기운이 올라 발그레 해지신 아버님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머금는다 이 또한 치유이며 사랑이리라! 갚지 못할 해드리지 못할 사랑이리라! 늙어 여의신 부모님의 주름진 얼굴이 안쓰러워 술잔을 기울인다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다 가족이 모여 만들어 내는 화음은 역시나 아름다웠다 격조했을 서로에 안부를 묻고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이야기 삼아 식사를 했다 새벽 늦게까지 술을 건네고 받으며 아버님은 많은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늘 좋은 덕담을 많이 해주셨던 터라 이번에도 다들 귀담아 들었고 술자리를 끝내고 집으로 오면서도 아버님의 덕담이 귓가에 소근 거리며 남아 있었다


-"급할수록 느긋하게! 마음을 평온하게!"


긴 인생 만나게 될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한 마음을 잃으면 안 된다는 잠언이었다 알면서도 잊고 사는 경우가 다반사 일 듯하다


내가 아는 아버님의 모습들이다


두 처남들과 딸의 앞날을 구체적으로 세심하게 꼼꼼히 챙겨 주시고 같이 준비하고 많은 부분을 뒷바라지해 주시던 모습 ᆢ힘들지 않다며 더 해줄 게 없어서 미안해하시던 모습.. 하우스 시설 농장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음에도 자식들 앞에서 큰 내색을 한 번도 하지 않으셨던 모습.. 농장에서 일을 도와 드릴 때 자식들이 힘든 일 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모습ᆢ 자식들과 술 한잔하시며 수더분하게 이러 저런 이야기 나누시던 모습ᆢ 사위 자식 기죽지 않게 세심하게 배려해 주시는 모습ᆢ 딸자식 늦은 출산으로 힘들어할 때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셨던 모습.. 한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처럼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아버님 어머님ᆢ 존재만으로 큰 버팀목이 되어주셨고 삶에 힘든 곱이곱이 두 분의 보살핌 아래서 한 가정이 가족을 이루고 사람같이 살아갈 때ᆢ그렇게 사람 몫을 감내할 때까지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측량할 수 없는 깊은 사랑을 보여주신 아버님 어머님 ᆢ 본받고 싶은 아버님 ᆢ


건강한 모습만 보여 주시던 아버님이 몇 해 전 우울증 약을 드셔야 될 정도로 살아온 세월에 대한,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으로 힘들어하셨다 우리는 자주 찾아뵙고 아버님 이야기를 들어 드리는 것으로 걱정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의 관심과 보살핌으로 힘든 고비는 넘길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자에게서 찾아오는 허무함, 상실감, 외상 스트레스 그런 저런 것들이 겹쳐 겹쳐 아버님을 힘들게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론 아버님 스스로 정신 건강을 위해서 노력을 기울이셨고 거의 완쾌되셨다. 재작년 토마토 농장 일을 접으시고 당신만의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계신다. 보여주신 그 모습 그대로,

그 그림자를 따라 자식들에게,

주신 정 그대로 베풀며 살아가겠노라고,


늘 건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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