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에게 알려주면서
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2
그날 큰처남한테 전화를 걸었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이었다. 장인어른과 병원 다녀오고 5일이 지난 시간, 금요일 오전이었다.
조카들 수능이 궁금해서 전화했으려니, 전화기 너머 평사시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저런 안부인사를 나누고 나니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아주 잠깐의 침묵이었지만 그 시간이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다. 큰처남도 어쩌면 평상시와 다르게 편한 저녁시간대가 아닌 이른 오전에 전화를 받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는지 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무리 마음을 가다듬어도 장인어른의 병환을 말해 준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월요일 병원에 다녀왔어"
또다시 짧은 침묵이 흘렀다. 때론 침묵은 더 진실된 언어로 가슴속을 파헤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때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언어는 틈과 틈에서 뜸을 들이고 있었다.
그 틈사이 그 짧은 침묵은 우리의 가슴속 어딘가를 부여잡고 제발 그 말이 아니기를, 다른 말이 나오기를 빌었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 외과의사의 틈사이 침묵처럼, 어둡고 깊은 묵직한 슬픔이 컥컥 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간내담도암 4기야 "
순간 처남과 나는 또 아무 말도 못 한 체 짧은 침묵을 이어갔다. 심하게 떨리는 목소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한 남자, 중년남자인 처남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눈물만 글썽이는 울음이 아니었다. 말을 잇지 못하는 꺽꺽 거리는 울음소리가 목울대를 타고 올라왔다.
며칠 전 장인어른 앞에서 쏟아내던 내 눈물도 저러했으리라 보는 사람의 눈물도 왈칵 쏟아지게 하는,
옆에서 듣고 있던 처남댁이 핸드폰을 넘겨받았다.
"아니죠 고모부 아니죠 이이 왜 우는 거예요 "
감당하기 힘든 부정하고 싶은 큰 슬픔을 겪게 되면 우리의 의식은 과거로 회귀하려 한다. 어쩌면 좋았던 것만을 생각하려 하는 뇌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통화를 하기 전 오 분 전, 십 분 전 그 평온한 시간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었을 것이다. 왜 한 달 전 일 년 전에 더 신경을 못 썼을까 일 년 전에만 병원에 모시고 가서 간초음파를 찍어 봤더라면,
지금에 와 후회해 본들, 너무 늦어버린 시간, 그 모든 현실 앞에서 장인어른은 의연했고 자식들은 많이 흔들렸다. 죽음 앞에 초연한 노인은 이미 되돌아갈 수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큰처남과 통화한 후 작은처남과 통화를 했다. 똑같은 침묵과 똑같은 공허함과 똑같은 슬픔이 덮쳐왔다.
자식을 앞세우지 않는 한 부모의 죽음은 어쩌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이기에 언젠가는 겪을 수밖에 없다.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부모님들의 한탄은 자식들에게 당연스럽게 스며들지는 못한다.
장인어른은 진단을 받기 한달전에 오른쪽 가슴 밑부분에 통증을 느꼈다고 했다. 의례 가끔 느끼는 통증이려니, 며칠 참으면 될것 같았지만, 통증이 며칠동안 지속되었다고 했다. 그런 통증으로 큰병원에 가는것도 번거롭고 해서 동네 내과의원에서 진료를 보았다고 했다. 아무리 작은 동네 내과의원 이라지만 장인어른의 상태는 그정도 병원에서도 쉽게 진단이 되었던지, 보호자와 함께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장인어른은 내심 걱정도 되었지만 확실치 않은걸로 자식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걱정이 되었던지, 처음에는 혼자 안양샘병원에서 초음파를 찍고 피검사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CT를 찍고 외과가서 결과를 들으라는 말을 듣고서야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가 10월 말이였다. CT결과는 11월11일에 나온다는 이야기와 오른쪽 가슴에 통증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야 아내에게 이야기 했다. 아내는 아무렇치도 않게 별것 아닐거야 하며 전화를 받았지만, 밀려오는 불안감을 숨길 수는 없었다. 아내는 나에게 그날 휴가를 내서 같이 병원을 가자고 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던건, 아버지의 병환이 심상치 않다는걸 증세로 알 수가 있었다.
난 장인어른의 병환을 알게 되고
어느 죽음까지가 슬픈가 라는 어느 책에서 읽은 화두가 생각났다. 요즘은 개와 고양이를 키우며 사람과 똑같은 사랑과 감정소통을 나누다 보니 사람보다 수명이 짧은 개와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 서럽게 우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그 이상으로 채식주의자들을 들 수가 있는데 고기 일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건강을 생각하기 이전에 생명 자체의 소중함을 중요하게 생각함을 알 수가 있다. 주완이와 지완이는 계란부화기로 부화시킨 병아리 두 마리가 죽었을 때 이틀을 울었었다. 사람마다 죽음이 가져다주는 슬픔의 범위는 다르다. 죽음 어느 죽음까지가 당신을 슬프게 하는가의 화두는 장인어른의 병환 앞에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다.
어제는 주완이와 지완이에게 할아버지가 아프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늦은 나이에 쌍둥이를 출산한 맏딸의 외손주들은 장인어른과 장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아가며 커 나갔다. 특히나 장인어른은 토마토농사를 짓던 때에도 저녁 무렵이면 매일 들려 아이들을 봐주시곤 했다. 농사일로 피곤했을 텐데도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엄마와 아이들의 틈을 만들어 주었다. 주완이와 지완이에게는 외할아버지의 병환이 우리만큼의 슬픔으로 다가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음에도, 그만큼 사랑을 받고 자랐었기에 너희들은 더 슬퍼해야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슬픔은 떠 안겨서 느낄 수 없는 법 이기에 각자의 슬픔은 이만큼 다르다.
아마도 이젠 손주들도 모두 알았을 것이다. 장인어른은 11월 25일 월요일 오전에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 입원하신다. 이제 항암이 시작이다.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지만 항암제가 장인어른에게 잘 맞아서 여명시간이 좀 더 길어지기를 기도한다. 이년 욕심내자면 삼 년 그 시간을 장인어른에게 허락해주시기를 하느님께 기도드린다.
"내 앞에서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울지도 말아라."
"너희들이 내 앞에서 울면 내가 더 슬퍼진다."
"나는 괜찮으니 너희들이 마음 단단히 먹고 굳건하게 버텨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