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다녀온 후 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흐르고 있었다. 어떤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또 어떤 시간은 빠르게 사라져 갔다. 어떤 시간은 움켜 잡고 싶었고 또 어떤 시간은 빨리 떠나보내고 싶었다. 어떤 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고 또 어떤 시간은 기억에 남지 않았다. 어떤 시간은 소중 했고 또 어떤 시간은 의미가 없었다.
어떤 시간은 머물렀고 어떤 시간은 흘러갔다.
더 이상 장인어른과 술잔을 기울일 수도 없었고 더 이상 장인어른과 여행을 갈 수도 없었다. 윗배가 아파서 병원 검진을 갔던 11월 11일 오후 2시는 그렇게 우리 인생을 둘로 쪼개어 놓았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으리라 생각했다. 마치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어디론가 없어져 버리는 시간이 장인어른의 눈동자에서 어른 거리는 듯했다.
시간의 상대성은 무서울 정도로, 초침은 냉정하게 똑딱 거리며 흘러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때론 무슨 일이 바로 벌어질 것처럼, 우리는 핸드폰 액정을 수시로 확인하고, 문자를 확인하고 카톡을 확인했다. 항암을 위한 조직검사를 결정하고 난 후 시간은 파도처럼 급하게 흘러갔다. 그리고 파도거품처럼 급하게 꺼져갔다. 마치 가을 태풍이 쓸고 간 벌판 어디쯤엔가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곳 어디쯤에 장인어른이 서있을 것 같았다.
중앙대 병원 카톡 알림이 계속해서 딩동 거리며 올라왔다. 입원수속 일정과 준비물과 마스크지참에 관한 내용이었다. 앞으로 장인어른과 우리 가족들이 견뎌야 할 시간이 우르르 몰려드는 것 같았다. 아내는 장인어른 간호로 이틀을 병원에서 보내야 돼서 여러 가지 준비해야 될 것들이 많았다.
슬퍼지면 안 된다는 마음은 슬퍼지려 하는 마음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억지로 눈물을 참을수록 두 눈은 빨갛게 물들어 갔다. 아내의 굵은 눈물방울이 속 눈썹에 이슬처럼 맺혔다가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은 아내의 기력을 빼앗가 갔다. 두려움과 분노가 쌓여 갈수록 표정과 말투는 통제권 밖으로 뻗어 나갔다.
슬픔은 모든 걸 빼앗으려 달려들었다.
"아빠 아빠 의지가 제일 중요해요"
"저희곁에 좀 더 계셔 주세요"
"그런 생각이 항암제예요 "
아내는 차 안에서 아빠의 손을 잡고 또 울음을 터트렸다. 괜찮다는 장인어른의 목소리도 조금은 흔들렸다.
"하느님 제발 도와주세요."
처남댁과 아내는 암카페에 가입해서 몸에 좋다는 음식들을 검색해 주문하기 시작했다. 닭뼈와 곰탕이 간내단도암 환자에 좋다는 댓글을 읽어가며 꺼져가던 희망과 용기가 생기는 듯했다. 간내담도암 보호자들이 올려놓은 글들은 슬픔을 덜어주기도 했고 슬픔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었다. 여기저기 인터넷 검색해 보고 여명시간이 당초 예상보다 길어진 예후 댓글들을 읽으며 우리는 슬픔을 털어내려 노력했다. 우리는 하루종일 물속에서 힘겹게 걷는듯한 느낌에 밎써 싸워야만 했다.
"그래 우리 항암 받아서 이년 삼 년 정도 만이라도 아버님이 우리 곁에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장모님의 눈가는 퉁퉁 부어 있었다.
장인어른은 병원을 나서면서 장모님한테는 당분간 이야기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당신의 병세 보다 더 많이 걱정 됐던 게 장모님이었다. 당신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아내가 혼자 남게 될 생각을 하니 더 마음이 아팠을지도 모른다.
"자네 나한테 속이고 있는 거 알아"
" 현정아빠 어디 가 많이 안 좋은 건가 말해주게 "
장모님은 울먹이며 전화를 하셨다. 전화 너머에 장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모든 걸 알아버린 어머님의 입에서, 알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장모님은 무섭고 두려웠다. 남편이 없는 세상과 남편의 암세포가 치미도록 두려웠다.
평생을 함께 한 남편, 아무리 미워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편, 전기요금 내는 법, 공과금 내는 법, 은행계좌 송금하는 법, 버스 타고 가는 법, 삶의 모든 것을 남편에게 의지해 살아온 아내에게 남편의 말기암 소식은 세상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 오십 년 넘게 함께 살아온 인생의 반려자가 이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암 이래"
"거짓말 그냥 혹이잖아요."
"간내담도암 이래 치료받으면 괜찮데"
패트검사를 받은 월요일 오후, 장인어른은 아내의 곁에 앉아 자신이 암에 걸렸다고 덤덤히 이야기해 나갔다. 당신이 직접 이야기해 줘야 충격을 덜 받을 거라고 했다.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남편이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암에 걸렸다고, 그게 무슨 환절기에 걸리는 독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야기 하는 걸 지켜보며 어떤 표정으로 남편을 봐야 되는지 힘들어했다.
직접 듣고 나니 이제 일말의 기대도 사라져 버렸다. 장모님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떨어지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 두 손은 갈피를 못 잡고 허공을 휘저었고 그나마 듣지 못한 다른 말은 없었는지 나를 쳐다보며 물어보았다.
당신의 인생에서 서로를 빼면 그들에겐 아무것도 남는 게 없기에, 남편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장인어른은 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자식들을 불러 세웠다. 손주들이 수능 보느라 고생했다며 학자금에 보태라며 몇백이나 되는 돈을 봉투에 담아 내놓으셨다. 돈 나올 때도 없으면서 어떻게 목돈을 만들어 때가 되면 선물이라고 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자신의 병보다도 더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식들과 손주들이 살아갈 평온한 일상이었다. 너무 슬퍼하지도, 서글프게 울지도 말라며 부모는 자식 앞서 가는 게 맞다며,..
난 이런 두 분을 늘 존경하면서 또 좋아했다. 하늘아래 이렇게 한 없는 사랑을 주는 부모가 또 있을까! 받은 사랑을 그대로 자식들에게 줄 수 있을까!
새벽녘 산책길을 걷다 보면 밤새 내린 이슬은 풀숲마다 흥건하다. 툭 치면 새벽이슬은 물방울 져 흘러내린다. 장모님의 속눈썹은 이미 풀숲 이슬처럼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눈물은 툭 치면 쏟아질 것 같았다.
간 조직검사가 삼일 앞으로 다가왔다. 장인어른의 항암 치료는 많은 걸 바꿔 놓을지 모른다. 새삼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게, 행복이란 걸 조금씩 알아갔다. 아마도 장인어른은 남아있는 당신의 시간이 기꺼이 누려야 하는 시간이 아닌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란 걸 알고 있으리라. 찬란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장인어른은 그래서 항암을 원치 않았는 지도 모른다.
다 같이 점심식사를 하러 장인어른의 스타렉스 차에 올라탔다.
" 아프기 전에 가족들과 다 같이 방어회 먹으러 가려고 했어. 지금이 방어회철이라 고소하고 맛있거든"
장인어른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 시선이 멈춰 선 곳 어디엔가 뿌연 신기루 라도 있기라도 한 듯 한참을 조용히 말이 없었다.
장인어른은 감정을 숨기는 연습이 잘 안 되는 분이어서 속에 있는 감정이 그대로 얼굴로 비추곤 했는데, 병원을 다녀온 후 표정이 감정을 담아내지 못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 고통이 어떨지 장인어른의 눈빛은 감정을 숨기려 애쓰는지 도 몰랐다.
허공을 담아내는 눈빛 속엔 숨겨지지 않는 감정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떤 감정은 쏟아 냈지만 또 어떤 감정은 숨겨졌다. 장인어른과 함께했던 수많은 순간이 선물처럼 빛나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성격은 아내처럼 매우 꼼꼼했는데, 아내는 장인어른의 성격을 그대로 닮아 있었다. 아내는 지금까지도 장인어른처럼 생각했고, 장인어른처럼 말했으며, 장인어른처럼 행동했다.
그런 성격은 보험약관 내용을 시험 공부 하듯 빠뜨리지 않고 읽어 나가는데서, 김치맛이 이상하다며 김치냉장고의 사용 설명서를 정독하는데서, 아내와 처남 두 명이 인생 진로를 선택할 때 장인어른이 보여준 혜안에서, 삶이 지나간 자리 곳곳에서 민감하고 세심하게 모든 일들을 풀어 나가는데서 보이곤 했다.
장인어른은 인생이 지치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순간에, 한마디 말이나 한 번의 손짓으로 우리를 더 단단하게 붙잡아 주었다.
장인어른이 우리 옆에 있다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비가 오고 눈이 오고 태양이 지는 것처럼, 매일 아침 베란다로 흘러드는 따뜻한 햇볕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난 장인어른으로 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헌신적인 사랑에 깊은 존경심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