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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둥이 Nov 26. 2024

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4

가족여행을 다녀오다.

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4


인생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상 조차 할 수 없다. 장인어른은 가벼운 감기 증상만 있어도 병원을 찾을 정도로 자기 관리를 잘하였다. 매년 빠지지 않고 건강검진도 받았고 암판정을 받기 전주에는 지인분들과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임플란트와 치과치료도 날짜를 거르지 않았다. 모든 것을 민감하고 세심하게 들여다보았다.


아무런 징후도, 어떠한 전조증상도 보이지 않았다. 건강검진 때 오른쪽 간에 혹이 있다고 들었을 때도 물혹 정도려니 생각을 했다. 그렇게 건강했던 장인어른이 어느 날 간내단도암 4기를  진단받았다. 신체적으로는 서서히 그리고 천천히 암세포가 퍼졌으리라만, 암진단은 그렇게 교통사고처럼, 그리고 쓰나미처럼, 덮쳐왔고 모든 걸 쓸어가 버렸다.


조직검사 하루 전,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그날, 우리는 가까운 제부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11월 24일 일요일, 화창한 가을 날씨였다. 다행히 큰 전조증상 없이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장인어른의 컨디션은 좋아 보였다. 좋아 보인다는 것과 괜찮은 것은 다른 영역이어서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금방이라도 아버님을 쓰러트리진 않을까 두려웠다.


우리는 제부도로 들어가는 케이블카 앞에서 물이 빠진 서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가을 햇살이 바다 위에서 반짝였다. 뻘 위에 바닷물이 빠져나간 물길이 깊이 패형 그려져 있었다. 마치 바다는 우리를 잡고 있는 암세포를 지워 줄듯이 근사한 풍경을 펼쳐 주는 듯했다. 가을햇살과 서해바다가 그렇게 우리 가족에게 면역력을 키워 주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시선은 먼바다를 향해 있었다. 그리고 잠깐 이였지만 서로가 풍경이 되어 주었다.

이번 여행에 모두 열네 명의 대가족이 모였다. 아이들이 커 나가다 보니 이렇게 모든 가족들이 모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능이 끝난 이유도 있었지만 항암 시작하기 전에 아버님과 맛있는 한 끼 식사를 같이 먹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물이 빠진 서해 바다에서 바다향기가 묻혀왔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안에 진흙냄새와  소금냄새가 섞여 있었다. 형태 없는 그런 것들이 우리를 위로해 주었다. 사람은 늘 이런 것들에 치유를 받는다. 바다를 배경 삼아 사진을 찍고 장인어른이 좋아하는 해물탕집을 찾아 들어갔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가을 회맛이 좋았다. 하루 일정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며칠을 돌아다닌 여행 못지않았다. 아마도 평범한 일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고 있다는 게 너무 좋아서였는지 모른다.


제부도 둘렛 길을 도는 작은 셔틀버스,   

귀에 익은 올드 팝송, 잔잔히 퍼져가는 평온한 리듬, 아이들의 함성소리,  윤슬로 반짝이는 서해바다, 따뜻한 가을햇살과 여러 군데서 풍겨 나는 냄새들, 느리게 흐르는 시간, 이 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지워지지 않을 문신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성경구절이 생각났다.



모든 것은 흘러가고 지나간다. 변치 않을 것 같은 굳은 신념과 사랑도 조금씩 무뎌진 칼날처럼 그 예민함을 잃어간다. 그건 시간이 만들어 주는 고마운 선물이다. 이주차가 접어들자 울컥하며 솟구치던 슬픔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내의 목소리에서, 장모님의 눈동자에서, 처남들의 표정에서, 이제 주저함과 두려움보다는 가족이라는 고리를 더 단단하게 묶어야겠다는 감정이 커져갔다.


11월 25일 오후 1시 30분 장인어른은 조직검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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