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검사를 마치고 병실로 들어온 장인어른의 표정은 밝았다. 아내는 아빠의 표정을 보며 전화를 하였다.
"아플 것 같아서 마음에 준비를 하고 들었갔는데 아무렇지도 않다. 괜히 긴장했네."
조직검사를 받고 나온 장인어른은 침대 위에서 아내에게 아무렇지도 않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아내는 자기의 밝은 목소리가 아빠의 건강을 좋아지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었다. 아빠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자식들의 무너지지 않은 평온한 일상이란 걸, 맏딸은 알아가고 있는 것이다. 때론 주체할 수 없는 그 감정에 쓰나미처럼 파묻힐 때도 있었고, 때론 덩달아 웃을 수도 있었다. 자식의 눈물은 늙은 부모에겐 견디기 힘든 고통임을 알아 가는 것이다.
조직검사를 받기 위해서 장인어른은 4인 병실에 하룻밤 입원을 하였다. 웬만해선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은 쉽게 친해진다. 아마도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서 인지도 모른다. 병실에 입원해 있던 한분이 자기는 위암과 대장암 그리고 전립선암에 걸렸다며 위로하듯, 자랑하듯 큰 목소리로 말을 하였다. 그분은 암종합병원이었다. 혼잣말을 하는 건지 장인어른에게 들으라고 하는 건지 언뜻 들어서는 구분이 되지 않았다. 방금 조직검사를 받고 병실로 들어서는 장인어른과 아내를 보고 하는 말인 걸 보면, 말하는걸 꽤나 좋아하는 사람인 듯했다.
물어보지도 않은 자기 이야기를 선 굵은 목소리로 이야기해 나갔다. 들으면 위로가 될 거라는 확신이라도 있는 표정이었다. 그분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그분은 수영연맹 회장이라 했다. 평생을 운동을 했던 사람이었다. 암진단을 받고 수영연맹에 소속된 인맥들을 총동원해 한국에서 가장 저명한 명의를 소개받고 이곳 광명 중앙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전공의 파업으로 걱정했는데 일주일 만에 위암과 대장암 수술을 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가 이야기가 재밌어진다. 그분은 전립선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또 했다. 몸무게가 12kg 정도 빠졌다. 항암을 시작했는데 첫 일주일 오일 정도가 죽을 만큼 힘이 들었다. 제일 중요한 건 힘들어도 먹어야 된다는 거였다. 그래야 살 수가 있다. 항암을 받고 이겨내려면 우선은 잘 먹어야 된다는 거였다. 여기까지 괄괄한 목소리로 삼십 분을 떠들던 아저씨는 장인어른을 향해 더 큰 소리로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 힘드셔도 항암 받을만하니까 잘 드시고 이겨 내세요."
장인어른은 보청기를 끼고 있어서 그 말을 어디까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내가 옆에서 다시 설명을 해주었을 것이다.
항암 전인 것도 있지만 장인어른은 아직까지는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암이 걸리면 입맛도 떨어진다고 하는데 밥 한릇을 맛있게 드신다. 장모님은 닭발과 곰탕을 끓여 매끼 식탁에 올려놓는다. 장인어른은 미식가 까지는 아니지만 맵다 짜다 싱겁다 간에 대한 평가가 꽤나 많다는 걸 빼면 음식종류는 대부분 가리지 않는 편이다. 밥 먹을 땐 간이 맞니 적당하니 과하니 이런 말도 없어야 사랑을 받는 법이지만,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그건 사랑받는 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사랑받는 방법이 달라서 일 것이다. 아주 간단히 항암은 이런 일상이 사라진다는 것일 것이다. 밥심과 술심으로 사는 재미가 없는 세상,
암병동엔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치유되는 사람도 있었다. 희망을 붙잡는 사람과 절망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었다. 표정을 잃은 사람들과 울고 있는 사람들과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눈이 퉁퉁 부어오른 사람들과 서럽게 우는 사람들, 세명중 한 명이 걸린다는 불치병 암, 삶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병, 그리고 삶의 모든 환경을 바꾸어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는 병, 그런 암 앞에 우리 가족은 달려들려 한다. 이제부터 항암이 시작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