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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7

항암 일차를 무사히 마치다.

by 둥이

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7


장인어른은 걱정했던 것보다 항암 부작용이 없었다. 기분 나쁜 통증이 약간씩 느껴졌지만 참을만하다고 했다. 항암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은, 항암을 시작하면서 옅어져 갔다. 오히려 아무런 증세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울렁거리는 증세도 보이지 않았고 열이 나지도 않았다. 항암을 시작하기 전과 똑같이 식사를 하실 수 있었다. 항암 전에 가장 많이 걱정하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속이 울렁거려 밥을 먹지 못한다는 거였는데 이렇게 밥 한 공기를 뚝딱 맛있게 드셨다.


어쩌면 독감 예방주사를 맞고 찾아오는 감기증세보다 약해 보였다. 마치 감기주사 한 대 맞고 온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오전 10시 회진을 돌던 의사는 장인어른의 상태를 보며 굉장히 좋은 증세라며 칭찬을 하셨다. 마치 그 칭찬은 암세포가 다 나았다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해 주었다. 환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첫 항암을 할 때 매우 힘들어한다고 했다. 그렇게 힘들다는 항암을 아무렇지도 않게 견뎌내고 있었다. 누구나 다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장인어른은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병사의 통증과 고통이 더 무섭고 두렵다고 했다.


항암은 어쩌면 이런 두려움과의 싸움인지도 모른다. 가장 힘들었던 건 항암을 하겠다는 결정이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더 살아보겠다 병원을 드나드는 게 덧없다 생각들 수도 있었다. 반대로 항암으로 남은 삶마저 온전히 살지 못할 것 같은 절망감이 그냥 이대로 죽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결정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정해져 있는 선택이었지만, 그 정해진 선택지를 받아들이는 건 오직 환자만의 몫이었기에, 그것마저도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장인어른은 이틀간 입원을 하였다.

아내는 장인어른 옆 작은 침대에서 이틀간 간병을 하였다. 조직검사받을 때는 아내가 옆에 있는 게 딸이었음에도 불편했던 장인어른은 항암을 앞두고는 딸이 옆에 있는 게 여지간이 힘이 되었던 모양이다. 딸이 옆에 있는데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았다고 두 번이나 말씀하시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만큼 두려웠을 거라 생각했다.


장인어른은 항암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병실 옆 침대에는 중증 치매환자가 누워 있었다. 치매환자는 어린애가 되었다가, 노인이 되었다가, 자기를 잃어버린 사람의 병증은 보기 안쓰러웠다. 간병을 하는 중년의 딸은 지쳐 보였다. 암은 비록 불치병이지만 주변을 정리할 시간을 준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안따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죽음의 종류를 선택할 수 없고 또한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내가 원한다고 심장마비나 교통사고로 죽음을 선택할 수 없다. 나는 가끔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다. 그건 어느 날 운전을 하고 있을 때나, 혹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그렇게 혼자 있을 때 심장마비가 와서 쓰러진다면, 그 짧은 순간 죽어 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들이다. 아마 난 그 전날 한꺼번에 넣고 돌린 빨래를 보면서 화를 내던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얘기도 못했는데, 그리고 냉장고 안 무너질 듯 쌓여있는 반찬통을 보면서 아내에게 짜증을 냈던 일도, 학교숙제도 안 해놓고 놀기만 하는 아이들을 혼내고 나왔는데, 아, 말했어야 됐는데 사랑한다고, 그런 모습이 마지막이 아니기를 늘 기도한다.


하지만 적어도 암은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착한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암이란 병은 친한 선배의 어머니나 지인분의 아버님이 걸렸던 나와는 무관했 던 병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쉽게 얻을 수 없는 행운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어느 날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복통이 있어서, 혹은 소화가 안돼서, 그것도 아니라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불편함을 느껴 동네병원을 찾게 된다. 그러곤 동네 내과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한다.


"아 조금 이상하네요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


장인어른의 암진단도 어느 날 복통으로 알았듯이, 병증을 느꼈을 땐 이미 암세포는 왕성하게 퍼져나가 있는 상태여서 손 쓸 방법이 많지가 않다.


암은 평온한 일상을 누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엔 우린 너무 삶을 사랑하였고, 잃을게 너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죽음이 두려워졌다. 이제 죽음은 장인어른 곁으로 아주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장인어른은 주말을 지나면서 통증이 찾아오는 주기가 빨라지고 있었다. 통증의 깊이도 달라지고 있었다. 참을만하다고 생각했던 통증이었는데, 두려움도 같이 오고 있었다.


항암 이차는 12월 10일 화요일 오전 7시로 예약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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