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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6

항암을 시작하다. 일차 항암일기

by 둥이

장인어른의 암 투병기 6


통증은 소리 없이 오고 있었다.

평온해 보였지만 암세포는 커져갔다. 혈액종양내과 피검사 수치로는 측정이 안된다고 했다.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통증이 오기 시작한 건 주말 저녁이었다. 그 통증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않던 설명이 잘 안 되는 통증이라 했다. 의사는 그 통증에 대해서 벼락 치는 통증이 오기 전에 왠지 기분 나쁜 복통이 올 거라 했다. 전체적으로 욱신거리는 근육통과 비슷하다고 했다. 통증은 약하지만 그 통증은 암세포가 다른 장기로 퍼져가는 증세라고 했다. 통증이 커지기 전에 처방받은 진통제를 먹었다. 일반 진통제로는 효과가 없을 거라고 했다. 통증이 시작되면 좀 더 강한 진통제를 먹어야 된다며 처방해 준 약이었다. 진통은 사라졌지만 속이 울렁거렸다.


장인어른은 저녁거리를 사러 근처 시장에 나갔다 통증이 느껴져 급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은 화요일이었다. 아직 이틀이나 남았는데, 아내의 마음은 조급해져 갔다.


암환자와 보호자가 겪는 서로 다른 통증과 고통을 소재로 한 김훈작가의 소설이 생각났다. 암환자가 신체적으로 겪는 통증을 보호자는 겪어 보지 않았기에 그 고통의 깊이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보호자는 그 통증을 바라보는 고통만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그 말은 사실이기에, 통증의 고통은 오롯이 환자의 몫이란 걸 알기에, 아빠가 불쌍하고 가여워서 아내는 울었다. 그런 아내의 눈물을 보고 남편도 울었다. 슬픔은 너무 쉽게 옮아 버린다. 코로나 보다 더 빠르고 무섭게 파고든다.


아침저녁으로 핸드폰이 울리면 섬뜩 놀라게 된다. 아무 일 없이 날이 밝아오는 게 다행 이라며 하루를 시작했다. 여기저기 가입해 놓은 암카페를 검색해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가족 단톡방에 올려놓는 처남댁과 아내는 하나씩 준비를 해나갔다.


아내는 항암시작 전에 가족사진을 찍어야 된다며 하얀색 옷을 몇 벌 주문했다. 장인어른은 가족사진 찍는 전날 진통제 때문인지 속이 울렁거린다고 했다. 일요일 오후 두 시, 다행히 울렁거리는 게 괜찮아졌다. 장인어른은 언제나 사진을 잘 받았다.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장모님과 포즈를 취했다. 이날 영정사진도 같이 찍었다. 사진 속 장인어른은 건강해 보였다. 인어른의 진단이 있기 전에도 매년 가족사진을 찍어었기에 아이들은 그게 외할아버지와 찍는 마지막 사진이란걸 몰랐다. 장인어른은 가족 사진을 같이 찍자는 아내의 말에 덤덤히 웃으며 그때 영정사진도 같이 찍자고 했다. 장인어른은 사진찍기로 한날이 가까워지자 이발소에 가셔서 깔끔히 머리를 깍으셨다. 언제나 단정하신 장인어른은 옷차림새가 단정하셨다. 하얗게 쎈 머리카락이 대학교수처럼 근사해보였다. 매년 가족사진의 컨셉이 바뀌었는데 이번에는 하얀와이셔츠에 청바지로 젊은아빠가 컨셉이였다. 그날 장인어른은 영정사진을 찍었다. 평생에 남을 마지막 사진을 웃으며 찍었다. 난 그날 영정사진을 찍을때 느낌이 한없이 궁금했다.


영정사진 속 장인어른이 웃고 있었다. 그렇게 장인어른은 하나씩 준비를 해나갔다.


조직검사 결과가 간내단도암으로 나왔다. 혈얙종양내과 담당의사는 환자와 보호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다.


항암을 시작하면 환자가 받게 되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 설명을 해나갔다. 장인어른의 조직검사 결과와 피검사 수치는 절망적 이였다. 그렇게까지 빠른 속도로 암이 퍼져가고 있었다. 한 달 전 피검사 수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무서운 기세라고 했다. 의사는 항암의 목적이 환자의 치유에 있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했다. 암세포가 퍼져나가는 속도를 완화시켜 환자가 느끼는 고통을 줄이는 데 있다 했다. 대강의 설명을 듣고 장인어른이 나가신 후 의사는 좀 더 솔직한 의견을 이야기해 주었다. 첫 암진단을 받았던 11월 11일 보다 더 마음이 아파왔다. 무엇을 기대한 것인지,


장인어른의 몸속, 저 안에 장기들이 암세포가 퍼져가고 있다는 게, 저렇게 멀쩡해 보이는데, 암병동에 앉아있는 장인어른을 쳐다보았다. 장인어른은 평온해 보였다. 그리곤 나는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두 손은 마치 암을 찾아 나선 듯 내 몸 여기저기를 눌러본다. 마치 몸속 어디선가 세포분열을 하고 있을지 모를 암세포를 찾기라도 할 것처럼,


입원 전에 잠깐 집에 들른 장인어른은 안방으로 들어가 작은 파우치을 들고 나왔다.


"이리 모여 봐라. 너희들이 알아야 될 게 있다."


파우치 안에는 여러 장의 통장이 들어있었다. 장인어른은 통장에 남은 잔금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장인어른은 마치 유언하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공동명의로 되어 있는 집과 계좌잔금과 농협 출자금까지 사후 처리방향에 대해서 세세하게 설명하였다. 당장 내일이라도 못 돌아올 사람처럼, 참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이었다. 항암 들어가기 한 시간 전 이렇게 장인어른은 주변을 정리하고 있었다. 무언가를 느낀 걸까,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걸까,

눈언저리가 아파왔다. 서둘러 화장실로 갔다. 수돗물을 세게 틀어놓고 오래도록 손을 닦았다. 그렇게 슬픔을 씻어내고 있었다.


오후 4시에 입원을 하였다. 곧바로 항암을 받기 위해 여러 링거액들이 장인어른의 팔등위에 꽂혔다. 항암의 부작용을 잡아주는 약들이었다. 그 많은 링거액들이 혈관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스티븐잡스의 회고록이 생각났다. 췌장암 말기 죽어가던 스티븐잡스는 링거액들이 주렁주렁 걸려있던 컴컴한 병실, 빨간불빛과 녹색불빛이 깜박이며 자기가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죽음은 어디까지가 슬픈가 라는 화두가 또 한 번 생각이 났다. 알 수가 없다. 죽음 앞에 의연할 수가 없다.


연명치료에 대해서 미리 결정해달라는 주치의 말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말기 암환자들은 괜찮아졌다고 생각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쓰러져서 심정지나 뇌사상태가 된다고 했다. 지금 환자 상태로는 준비해야 된다고 했다. 그냥 보수적인 의사의 언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의사가 설명해준 항암제는 젬시타빈과 시프플라틴 이였다.

젬시타빈 항암제와 시프플라틴 항암제를 정량의 50프로 수준으로 줄여서 투입되었다. 항암의 목적이 명료했기에 최대한 환자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그에 맞는 약을 바로 투입하였다. 다음날 약간의 울렁거림이 있었고 바로 주사액이 들어갔다. 장인어른은 오분도 안돼서 편안해졌다. 만약 항암이 치료하는데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나이가 더 젊은 환자였다면, 항암의 방향은 달라졌다. 더 독하고 더 울렁거리고 머리가 빠질 수도 있는, 암세포를 이겨내는 대가는 분명 가혹했다.


아내는 인피지 면역항암제에 대해서 질문을 했다. 아내는 항암치료에 대해서 궁금한 것들을 뽑아왔다. 혈액종양내과 담당의사는 아내의 질문을 듣고 마치 학원 강사나 과외선생님처럼 대답하였다.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

"정말 중요한 질문입니다."

"질문한 환자들 한테만 설명드립니다."


의사는 항암에 대해서 메뉴 얼 데로 순차적으로 설명하는 듯했다.


현재로선 젬시타빈 함암제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아내는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인핀지는 어떻냐고 물어보았다. 인핀지는 아직 보험공단 승인이 나지 않은 약이었다. 한번 투입하는데 천만 원이라고 했다. 실비보험 대상자라면 추천을 권하지만 젬시타빈과 비교시 월등하게 좋치는 않았다. 한번 결정하면 중간에 항암제를 바꿀 수 없었다. 장인어른은 의사가 추천해 주는 젬시타빈으로 하자고 했다.


그렇게 항암 일차가 끝나가고 있었다.

장인어른의 항암 일차는 일주일에 한번씩 이주일 항암제를 투입했다. 그리고 한주 쉬고 피검사를 통해 면역수치와 컨디션을 확인후 다시 한주 항암제를 투입했다. 이렇게 한 사이클이 진행되었다. 항암일차는 마치 해열제 맞듯 힘들지 않게 진행되었다. 그냥 모든게 순조로워 보였다. 마치 태풍 한가운데 자리한 태풍의 눈처럼, 암은 소리없이 조용이 번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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