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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아버지의 광

by 둥이

광문을 열었다.

깜깜한 광안으로 햇볕이 밀고 들어왔다. 푸른 햇볕이 널따란 길을 내주었고 눈 오듯 뽀얀 먼지들이 햇볕 안으로 퍼져갔다.


광 한편엔 농장기 들이 널려 있었다. 몇 자루의 호미와 낫은 밥값을 하고 있는 듯 끝이 쇠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쇠의 예리함을 잃어버린 농기구들은 한낱 녹슨 쇠붙이에 불과했다. 시간에 기대어 뻘건 핏빛을 토해 내며 늙어가고 있었다.

쓸모없어진 그들이 쓸모를 기다리며 풍상에 파여간다.


텅 빈 광주리가 벽에 포개져 걸려 있었다. 한쪽 끝에 올이 터져 나왔다. 오랜 세월 젖은 푸성귀와 고추와 무를 말려 내느라 생긴 흉터인 듯했다.


자루가 길게 달려있는 갈퀴와 겡이와 쓰는 용도가 각각 다른 여러 종류의 삽들이 가지런히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그 옆을 도낏자루 몇 개가 지키고 있었다.

한때는 겨우내 마른 장작을 패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난 도끼는 어느 때부터인가 천덕꾸러기가 돼버렸다. 도낏자루에 검은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어올랐다. 고물장수 눈을 용케 피한 듯했다.


삽자루에 매달린 삽의 모양은 그 용도에 따라 풍모가 달라지는데,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는 삽들은 주로 퍼담는 용도로 사용된다. 모래를 퍼담든가! 소똥을 치우든가!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거는 식이고, 끝이 뾰족한 삽들은 땅을 파거나! 논 물길을 내줄 때 농부 어깨 위에 걸쳐 가며 진흙을 찌르고 퍼담아 논두렁을 다잡는 데 사용된다.

농번기 농부의 두 손에선 삽자루가 떠나지 않는다. 한쪽 어깨에 이고, 허리에 둘 루고, 농기구에 얻고 총자루 쥔양 손 가기 편한 장소에 신주딴지 모셔 놓듯 얹혀 놓는다. 삽자루가 기름칠해놓은 듯 반질반질 해진다. 농부의 땀을 받아 마시며 충실하게 그 곁을 지킨다. 농부가 쉬어야 그들도 쉴 수가 있었다.


광 밖 헛간 옆으로는 덩치가 나가는 농기구들이 쇠붙이에서 풍겨내는 쇠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아직은 거동이 괜찮아 보이는 오래 써 닳아버린 녹슨 트랙터가 농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힘 빠진 녹슨 트랙터는 농부의 순장조가 될 운명인 듯했다. 안장 위에 업혀 있는 목장갑 한쪽이 농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힘 빠진 트랙터 옆에는 동생 뻘되는 경운기 한대가 아직은 괜찮은 듯 자리를 지켰다. 폐인 듯 녹이 슨 자국은 지울 수 없었지만 농부의 논과 밭으로 젊은 날을 함께 누빈 적토마답게 의젓한 모습은 잃지 않았다.


적토마 같았던 농부의 첫 경운기가 동네 어귀로 들어오던 날.. 요란하고 씨끄러운 경운기 소리에 마을 사람들은 모여 들였다. 대부분 밭고랑과 논두렁을 소의 워낭소리를 들으며 쟁기질하던 시절이었던 터라 처음 보는 농장기 앞에서 사람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이웃동네 한두 집씩은 경운기를 들여오기 시작했었다. 농부는 그 큰 기계에 올라탔다. 코뚜레에 잡힌 소가 농부의 이끄는 데로 쓸려가듯 경운기는 좁은 논두렁길을 아슬아슬 굴러가듯 나아갔다. 농부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경운기가 토해내는 모타소리에 지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후 농부의 적토마는 온종일 동네 논과 밭을 쓸고 다녔다. 워낭소리만 바뀌었을 뿐, 농부는 쉼 없이 쟁기질을 해나갔다. 밭고랑과 논두렁의 과로한 쟁기질로 경운기는 제 명을 못살다 교체되었다. 이후 경운기는 트랙터로 체급을 바꾸었고 농부는 쉼 없이 쟁기질을 이어 나갔다.

농장기들은 일구고 기르고 거둬들임을 쉬지 않았다. 고단했을 그 일을 ᆢ


트렉타에 덩그러니 실려있는 낮 두 자루는 예리함을 버린 쇠붙이로 낮자루에 매달려 있었다. 농부들의 손을 쉬지 않게 해주는 낫은 그 쓰임새로 치자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었기에 아침저녁으로 숫돌에 낫 가는 소리가 끊기지 않았다. 낫 가는 소리만 들어도 낫이 가진 예리함이나 낫 가는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낫 가는 소리는 늘 경건했다. 낫의 쓰임새가 이만큼 소중한 데는 논농사의 대부분이 낫의 능력을 대체할만한 게 없어서 이도 일꺼니와 거둬들이는 모든 곡식들이 낫의 손맛을 봐야만 밑동을 땅에서 떼어 놓을 수가 있었다. 소를 거둬 먹이려면 늦도록 온 들녘 풀베기를 해야 했고 낫과 숫돌은 농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어부의 그물과도 같은. 목숨줄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벼 베기부터 들게와 콩 수수 보리 등

곡물류들은 낫으로 밑동을 쳐주어야만 거둬들일 수 있었다. 실로 인류 역사상 이보다 더 인간에게 직접적인 이로움을 준 농장기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일손을 놓지 못하는 주인들 때문에 편히 쉬어야 할 호미와 삽, 곡괭이들은 젊은 날의 고됨을 늙어서도 이어오고 있었다. 논과 밭으로 쉼 없이 씨를 뿌리고 거둬들이는지 주인들의 부지런함을 탓한다 한들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호미자루는 흙을 조심스럽게 파헤쳐 간다 땅속에 업혀 있는 감자와 고구마를 상하지 않게 조바심을 낸다. 흙의 깊이를 이해하여 칼끝의 섬세함을 버리지 못한 호미는 주인의 사랑을 잃지 않는다. 호미는 늙어서도 일복이 많다. 주인에 손에서 놓여지지 않는다. 그 수고스러움이 아름답다. 고랑마다 억척스럽게 올라온 풀뿌리를 케내랴, 가뭄 끝에 딱딱해진 밭두덕을 일궈주랴, 일구고 심어 놓은 감자와 고구마를 케내랴, 마늘과 양파를 케내랴! 하는 일이 덩치에 비해 많다 보니 귀한 대접을 받기 일쑤다. 용도에 따라 그 종류도 크기도 여러 가지다. 얇고 긴 호미에서부터,

목을 어느 정도로 휘게 했느냐에 따라 밭메기 용도가 달라졌다. 호미를 놀리는 농부들의 손목으로 뽀얀 먼지가 수북이 쌓여 갔다.

마늘밭은 때마다 정성 들여 김매기를 해주어야 마르고 푸석한 땅이 기름진 흙으로 젖어갈 수 있었다. 보리밭과 고추밭 갖가지 푸성귀들의 밭떼기는 호미질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는 작물들이었다. 늘 호미는 고되고 바빴다. 한해만 써도 자기 몸의 반이상이 닳아 없어진다. 닳아 헤어진 호미날을 보자면 농부의 주름골을 보는 듯 마음결이 아파온다. 그냥 짠하다. 닳아 없어질 만큼의 고된 밭일이 생각나서 일께다.


광 뒤쪽 황토흙 벽으로 기대선 쟁기와 쇠스랑과 멍에에 빼곡히 거미줄이 얹혀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마른 흙이 옹이처럼 박혀 있었다. 이제는 쓸모 없어진 농기구이지만.. 인근의 논과 밭을 쟁기질하던 늙은 농부의 워! 워! 이랴! 소를 부릴 때 지껴 주던 소리가 들려온다. 꼬뚜레를 잡힌 소의 워낭 소리와 밭고랑을 쟁기질하는 소리 논두렁을 쟁기질하는 소리는 잊혀지지 않는다. 듣기 좋은 절색의 화음이다.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개구리 소리, 소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 꼬끼오 수탉 울음소리만큼이나 농부 곁에서, 농부를 지켜 주는 소리였다.


녹슬어 가는 농기구들이 불러오는 푸른 기억이 자욱이 몰려온다. 한 여름 소낙비처럼 ᆢᆢ

기별 없이 찾아온 워낭 소리가 잘크렁 거린다.


광문을 닫았다.

햇볕 좋은 날 다시 열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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