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보호자 되세요!
아버지와 치과를 다녀왔다. 아버지가 이가 아파 식사를 못한다고 누나가 단톡방에 올린 게 한주 전이었다. 몇 해 전에 치료한 윗니가 말썽이었다. 브리지로 연결한 앞니 전체가 떨어져 나가 입술 주위가 푹 꺼져 보였다. 틀니 빠진 할머니처럼 입술이 말려 들어갔고 얼굴 주름이 더 깊게 파여 보였다. 앞니가 없다 보니 말소리가 안으로 감겨 들었다.
아버지 집에서 가까운 치과를 찾았다.
" 보호자 되세요"
"여기 접수해 주시면 됩니다"
보호자란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넣어 등록했다. 동네 병원인데도 모든 것이 스마트 기기로 등록되게끔 되어 있었다. 어디가 불 펀한지, 어떻게 왔는지, 언제부터 아팠는지, 앓고 있는 병이 있는지 ᆢ 진료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입력하는데만 십여분이 지나갔다. 간단히 말로 설명하면 될 것을 왜 누르고 있는지 ᆢ누르면서도 선뜻 이해는 되지 않았다.
"보호자님 아버님 모시고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보호자님 아버님 연세가 있으셔서 임플란트 한 데가 뼈가 다 녹았네요 브리지로 연결한다 해도 오래 버티진 못할 것 같아요"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서 내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 의사의 얼굴을 보진 않았다. 의사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을 테지만 아들의 눈동자와 표정 변화에 집중하였다. 감정 없는 편안한 얼굴이었다. 아버지 손을 찾아 잡았다. 의사의 이야기를 다시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아버지는 활짝 웃으셨다. 치과의 긴장감이 말끔히 사라진 듯했다. 헐렁한 앞니 사이로 미소가 번졌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며 검은 부분이 뼈가 녹은 거라고 치과의사는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보호자님 치료받으실 건지 결정해 주세요"
"보호자 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온몸의 감각세포는 긴장을 한다. 부모의 부모가 되어 병원을 찾는 일이 많아져 간다. 그렇게 라도 해서 건강 해진다면야 이쭘 수고스러움이야 일도 아니련만 ᆢ 병원을 찾을 때면 늘 애틋함이 저려온다. 보호자라는 말이 가지는 보이지 않은 힘이 큰 것 같다. 기댈 수 있는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마을 어귀에 있는 당산나무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듯이 여위신 늙은 부모가 내 어깨에 기대 쉴 수 있도록 믿음직함을 보여드려야 한다. 이 정도의 긴장감과 생각들이 "보호자 되세요" 그 말속에 숨어있다.
아이들이 아플 때 병원을 간다.
그때도 늘 같은 말을 듣는다. 결은 다르지 않다. 비슷한 긴장감이 몰려온다.
"보호자님 되세요
물 많이 먹이고 차가운 것 주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 곁에서 편안함을 찾는다. 부모 있는 곳이 집이고 천국이다. 아프다 한들 부모만 옆에 있어준다면 어느새 나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아이의 보호자인 것에 보호자는 더 행복해한다. 병원 의자에 앉아 의사보다는 엄마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엄마를 놓칠라 손에 힘을 꽉 준다. 엄마 곁이, 엄마 얼굴이, 아이들에겐 처방전이다.
이른 새벽 ᆢ
화장실을 다녀온 현정이가 급하게 나를 깨운다. 십 년 만에 시험관시술로 어렵게 가진 아이들이었다. 산달이 다가왔던 터라 산기를 느껴던 지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 보호자님 되세요"
" 산모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
"송현정 님 보호자님"
산모 쌍둥이 아이 모두 건강합니다 "
그날 저녁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는 쌍둥이를 보았다. 오물 거리며 하품하는 표정이 아름다웠다. 인큐베이터 상단에 보호자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었다. 산모의 표정은 언어로 담아낼 수 없었다. 눈은 울고 있었고 입은 웃고 있었다.
"알콩아 달콩아 엄마 아빠 왔어"
"내가 너희 아빠야 "
"사랑한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우리 인간은 혼자의 힘으로는 한순간도 살아가지 못하는 종으로 서로에 기대며 존재한다.
태어나 부모라는 보호자 그늘 아래서 성장한다. 아이를 낳고, 우리는 부모가 되어 아이의 보호자로 아이를 키워 성장시킨다. 칼날이 다가오는 늙어 여윈 부모를 우린 보호자로 돌보며 부모 곁을 지킨다.
우리 역시 부모처럼 늙어 여워질날이 곧 다가올 것이며 아이들은 우리들의 보호자가 되어 곁을 지킬 것이다. 부모의 부모가 되어 진정한 사랑을 배워 나간다.
"보호자 되세요"
어쩌면 그 말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듣게 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말일 것이다.
당분간 아버지 치과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보호자 되세요" 그 말을 자주 듣게 될듯하다.
언제까지라도 그 말을 계속 듣고 싶다.
"네 제가 보호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