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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풍경

세상 사는 이야기 사람이 있는 곳

by 둥이

엘리베이터 풍경


엘리베이터가 사 층에 멈췄다.

"사 층 할머니가 타시겠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도 전에 생각을 했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신 사 층 할머니는 자기보다 더 늙은 개 한 마리를 껴안고 우리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개 산책 시키려고요"


하루에 두 번 오전 오후 정해진 시간에 늙은 개와 할머니는 산책을 한다. 백내장 수술을 했다는 늙은 개는 눈에 하얀 막이 끼여 있었고 컥컥 대며 기침을 뱉어 냈다. 주인보다 건강이 더 안 좋아 보였지만 할머니는 정성을 다해 늙은 개를 보살폈다.

가끔씩 할머니는 보행기에 두 손을 얻고 단지 안을 걷고 있었는데 보행기안에는 늙은 개가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사람에게 말을 붙이듯 늙은 개에게 말을 걸었고 늙은 개는 고개를 들어 할머니 눈을 바라보았다.


"거기로 가면 안 돼 이리로 와 조용히 해야지"


늙은 개는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은 듯 컹컹 짖어댔다. 늙은 개와 할머니는 뒤뚱뒤뚱 걸음걸이가 닮아 있었다.


팔 층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엘리베이터서 만났다. 쌍둥이 아들이 많이 컸냐며 만날 때마다 물어보신다. 어느 날은 텃밭농사로 지은 상추잎을 봉투에 담아 아이들 편으로 보내주었다. 달고 맛있었다. 제철에 가장 연한 식감을 간진한 상추잎이었다. 며칠 후 아내는 아버지가 보내주신 옥수수를 챙겨 보내주었다. 말수가 없으신 할아버지와 조용하신 할머니는 걸음걸이가 닮아 있었다.


칠 층에는 같은 성당에 다니는 서준이네가 살고 있다.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층층이 살고 있는 덕에 아이들은 심심해할 틈이 없다.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시는 13층 아버님은 종종 앞산에서 아이들과 사슴벌레를 잡다 만난 적이 있다. 13층도 두 명의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사방팔방 뛰어놀다 보니 층간소음이 크게 들리지만 조금만 참고 있으면 아이들이 지쳐 잠이 들 시간이면 조용해진다.

동병상련의 정이 든 것일까

윗집 아버님은 힘들게 잡은 사슴벌레 두 마리를 선뜻 내어준 적이 있다. 그런 인연으로 우린 에레베이터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아이들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


엘리베이터 안은 재래시장처럼 다양한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하루 고된 노동으로 밥벌이를 하는 택배기사와 라이더들에게 엘리베이터는 고마운 존재이다. 작년 장마 때 엘리베이터가 이 주일간 고장 난 적이 있다. 주민들도 힘들어했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내리는 택배기사와 라이더들은 34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아내는 힘들게 올라온 택배기사에게 음료수를 건네주었다.


오후 일곱 시 저녁이 지나가는 시간, 엘리베이터는 퇴근해 집으로 돌아오는 검은 가방을 걸친 아저씨와 쓰레기를 버리고 막 일층에서 타신 아주머니 두 분과 학원 수업을 마치고 들어오는 학생들과 유모차를 밀고 단지 안을 거닐었던 부부와 잘 다려진 와이셔츠를 배달하는 세탁소집 사장님과 지팡이를 짚고 단지 안을 산책하다 들어오는 할아버지와 세대확인을 위해 돌아다니는 반장 아줌마와 민원 전화를 받고 올라가는 경비아저씨 그리고 또 다른 일상을 가지고 하루를 지나치는 사람들로 붐빈다. 엘리베이터 안은 하루 일상을 정직하게 실어 나른다. 무료하지 않은 하루가 저물어 간다. 어떤 하루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과 어깨가 부딪치기고 하고 어떤 하루는 텅 빈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한다. 그날그날의 사람들의 표정을 슬쩍슬쩍 쳐다보고 옷깃을 살피고 나누는 대화를 귀를 열어 경청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와 사연으로 하루를 살고 밥 먹고 일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일 것이다. 엘리베이터 안은 사람들과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곳에 반갑게 인사를 하는 이웃도 있고 그냥 눈인사만 하는 이웃도 있다. 아는 얼굴이지만 인사를 나누기에는 어색한 이웃도 있다. 그도 저도 모르는 생판 낯선 이웃도 있다.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가는 아파트 주거문화는 오직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연스러운 인사를 나눌 수가 있다.


생뚱맞지만 친절한 버스기사님처럼 용기 내서 먼저 인사를 건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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