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전되지 않는 삶, 충전되는 삶
봄비가 내리는 날
- 방전되지 않는 삶
- 충전되는 삶
봄볕이 좋아 길을 나섰다.
어제는 하루 종일 굵은 봄비가 내렸다. 집 앞 얕은 동산으로 이어진 산책길로 들어섰다. 집 앞동산은 산이라고 하기엔 너무 얕은 산이지만, 그렇다고 산이 아닌 것도 아니어서, 산책길 초입까지 내려앉은 흙냄새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산책길은 마치 가래질을 끝낸 논두렁처럼, 흙속에서 올라오는 진한 흙냄새가 자욱하게 퍼져 나갔다. 젖은 낙엽들이 나무둥치 주의를 덮고 있었다. 어제 내린 비 때문 일까, 고밀도의 농도로 실려, 공중으로 퍼져 나가는 봄향기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촉촉한 흙길을 걸으면서였다.
젖은 흙들을 밟아 나갈수록, 발자국 소리는 공중으로 퍼져 나가지 않았다. 마치 푹신한 융탕자라도 깔아 놓은 듯, 소리는 흙속으로 묻혀 버린다. 자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둔탁한 리듬으로 보폭을 맞춰 나간다. 가다 서기를 몇 번이나 했을까 행여 놓치리가 도 했을 보물이라도 있는 걸까 얕은 동산으로 퍼져 있는 봄볕들을 바라본다. 봄볕이 비치는 산기슭으로 꽃들이 피어있다. 어디서 보았을까 나는 나무등걸에 기대 귀 기울여 본다. 진한 솔향기를 품어내는 소나무 곁으로 바짝 다가선다. 소나무는 잔가지 끝으로 물을 나르고 있다. 움이트는 소리가 들려온다. 산책로 끝 나무의자에 가만히 앉아 시간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봄볕은 방전되어 가던 모든 자연을 충전시켜 준다. 태양에너지가 쏟아지듯, 두 팔을 벌려 기력을 충전한다. 봄볕을 받으며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새삼 알아간다. 하심,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건, 어쩌면 제철과일처럼, 때에 맞춰 익어가는 걸 거라는,
봄볕이 좋다. 이런 날은 걸어야 한다.
제철을 온전히 느끼려면, 그래서 방전되지 않은 않은 삶을 살아가려면,
찬란하게 빛나는 충전된 삶을 살아가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봄볕을 쬐어야 한다. 삶은 복잡하지 않다. 그냥 단순하다.
봄향기 물씬 풍겨 나는 소나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