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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렁 거리는 사람

덜렁 거리는 사람 이야기

by 둥이


내가 이제 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덜렁거리는 사람


글쎄! 가장 덜렁 거리는 사람이라는 문장 안에 '가장'이라는 최상급이 붙어 있다 보니 선뜻 생각이 잡혀 가지는 않았다. 그것도 "내가 이제 까지 만난"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보니 가뜩이나 낯을 가리는 성격에다 자주 보는 사람들도 극히 편한 사람 외에는 많지가 않다 보니 글감에 대해 적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의 더듬이는 내 주변 사람들과 학창 시절 친구들 직장생활 동기들 선배들 까지 한 명 한 명 기억하며 바쁘고 덜렁대는 사람을 찾기 시작했다.


순간이었다.

주덕상이란 이름 석자가 ᆢ

고등학교 이후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낯설고도 친숙한 친구가 "덜렁거리는 사람" 이란 그물에 걸려들었다.


나는 작은 축에 속했던 지라, 내가 기억하는 덕상이의 키는 나보다는 조금 컸던 것 같다. 거무잡잡한 얼굴에 착달라 붙은 곱슬머리 빨갛게 쏟아있는 여드름ᆢ덕상이의 첫인상은 범상치 않았다. 어깨힘이 빠지지 않는지 뭔지 모르지만 항상 어깨에 힘을 주고 의식적으로 팔자거름을 걸었다. 말이 빨라 모라고 지키는지 자세히 들어야 알 수 있었다. 말이 빨라 침도 많이 튀었다. 입술 양끝으로 허연 침이 고였다. 가까이 다가서기엔 용기가 필요한 친구였다.


"야 너네 이런 거 보기나 했냐"


어디서 가져온 건지 돈 주고 산 건지도 모르겠지만 교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더니


" 야 나 대부에 나오는 말론브란도 닮지 않았냐 "


진남색 교복에 하얀 남방을 받쳐 입어서일까 담배를 물고 있는 덕상이의 아우라가 잠깐은 말론브란도를 연상케 했다.

약간 튀어나온 하관과 곱슬머리까지 ᆢ말만 더듬지 않았다면 거의 말론브란도였다.


덕상이는 세상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세상이치를 꿰뚫고 있었고 항상 시끄럽게 떠들고 허세를 부렸지만 그만한 실속은 없었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덕상이를 알아 갈수록 이름대신 "주접"이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허우대가 멀쩡한 덕상이는 싸움을 잘하고 싶어 하는, 불량해 보이고 싶어 하는 또 그렬려고 무던히 노력하던 아이였다. 타고난 선한 천성이 그 아이를 밀어내지 못하고 잡고 있던 턱에 큰 사고 안 치고 졸업할 수 있었다. 난 덕상이의 그 허세가 싫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아이가 내 곁에 담배 냄새 풍기며 다가와 어깨에 힘을 주고 쏘아 붙여도 이상할 정도로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내가 덕상이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걸 그 아이는 제일 먼저 느꼈을 것이다.


"야 기송아 " 밥 같이 먹자 "


주먹으로는 일진축에도 들지 못했던 덕상이는 입으로는 일진에 일진이었다. 늘 학교에 와서는 지난밤 지나가던 중학생을 좋게 타일러 보냈다는 이야기며 ᆢ참지 못해 이대일로 싸웠다는 이야기며 주저리주저리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덕상이 주변으로 모여든 아이들 몇 명은 머리채를 꺾거나 발로 툭툭 걷어차는 시늉으로 뻥치지 말라 대거리를 했지만 ᆢ덕상이의 눈매와 입술은 멈추지 않았다.


한 번


책가방을 버스에 두고 내린 적이 있었다. 덕상이는 걱정을 하던 친구들을 오히려 위로하며


"비싼 가방 아니니까! 상관없어 가방 안에 아무것도 없어"


"그래도 버스 종점에 전화를 해서 가방이 있으면 맡아달라고 전화를 해 두자"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어렵게 45번 버스종점 역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두고 내린 가방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괜찮다며 우리를 위로하던 덕상 이는 막상 버스 회사와 통화할 때는 그거 비싼 가방이니까 꼭 찾아달라며 애걸했다. 그렇게 우리는 가방을 잃고 시내를 돌아다니며 볼일을 보았다. 다음날 학교에 갔을 때 담임선생님은 이 가방 누구 거냐며 교탁 앞에 올려두었다.


"선생님 그거 제 건데요 그게 왜 교탁에 있어요 그거 버스에 두고 내린 건데"


"야 이 녀석아! 어제 보니 농구 코트에서 누가 이걸 가지고 왔더라 그럼 너는 가방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버스를 탔구나 너는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니 없는 거니 공부는 안 해도 책가방은 잘 챙겨야지 이 녀석아 "


그랬었다. 덕상이가 버스에 두고 내렸다던 책가방은 애초부터 농구장 한편에 흙먼지 뒤집어쓰고 있었던 거였다. 두고 온 지도 몰랐던 거였다.


안 본 지 30년이나 지난 친구임에도 덕상 이는 낯설면서도 친숙하고 멀리 있으면서도 가깝게 느껴지는 마치 어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말론 브라도 표정을 흉내 내며 빈틈이 없지 않냐며 웃던 덕상이는 빈틈 투성이었다. 어쩌면 그 빈틈으로 아이들이 모여든 지도 모른다. 말론 브란도를 흉내 내던 덕상이는 늘 자기 것을 잘 챙기지 못하고 흘리고 다녔다. 늘 시끄러웠고, 거짓말 투성이었지만 밉지가 않았다. 말도, 행동도, 걸음걸이도 모하나 신통한 게 없었지만 그 빈틈이 부족함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늘 이반 저반으로 체육복을 빌리러 다녔다. 교과서 참고서 볼펜 샤프 돈 덕상이는 빌리는데 익숙해진 듯 쑥스러움도 없었다. 어느 날은 내 것까지 빌려다 주었다.


침 튀겨 가며 입술에 허연 거품이 몰릴 때까지 혼자 이야기하던 덕상이는 말도 많고 웃음도 많았다.


자기 것 잘 챙겨가며 빈틈없었던 아이들 틈 속에서 자기만의 아우라를 가지고 살아갔던 덕상이..

맨홀 뚜껑보다 더 커 보였던 그의 빈틈은 살아가며 많이 좁아졌으리라!


침착하지 못하고 한없이 가볍기만 했던 허점투성이 빈틈 대왕 덕상이가 어느 하늘 아래 어느 땅 밟아 가며 그가 가진 천상의 가벼움을 주의와 나누고 살고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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