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야구장 간 날 이야기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 다 가도록,
이번 5월은 춥고 덥고 비오기를 반복했다. 쾌적하고 상쾌한 그러면서 통쾌하기까지 한 그런 5월을 꿈꿔온 것도 아니었지만, 그런 5월이 막바지로 접어든 마지막 주말 일요일, 모처럼 날씨는 화창했다. 지난 일주일을 보상이라도 해줄 것처럼,
일요일 아침, 어제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날씨가 흐렸는데, 야구장 가는 날, 하늘은 푸르게 화창했다.
우리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잠실야구장 두산과 NC 경기가 있는 날이다. 지인분이 예약해 준 모바일 티켓을 다시 확인을 했다. 그리고 지인분이 정리해 준 야구장 쉽게 찾아가는 방법, 준비물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이렇게 까지 자세하게 적어줄 정도라니 지인분은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일 잘하는 분일 거라 생각했다. 작은 일에서부터 사람의 능력이 배어 나온다. 가진 능력은 좀처럼 숨겨지지 않은 법이다. 일상으로 녹아든 습관이 그런 것이다.
그렇게 지인분의 도움 덕분으로 어렵지 않게 잠실야구장에 도착을 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지하철 이호선은 야구장으로 가는 사람들로 붐볐다. 종합운동장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틈사이로 5번 출구 종합운동장 방향으로 밀려 나갔다. 젊은 여인들과 중고등학생들 가끔 가족들도 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고 구름처럼 몰려다니고 있었다. 모두 같은 제복을 입고 있는 무리 중에 우리만 덩그러니 눈에 띄는 사복을 입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두산 야구 유니품을 입고 있는 사람들은 벌떼처럼 운집하고 있었다. 선명하게 D자가 새겨진 야구모자와 일상복처럼 입고 다닐듯한 흰색 야구 유니폼을 걸친 젊은 학생들이 더없이 빛나 보였다.
12살 남자아이들 세명을 데리고 다니는 중년의 아빠는 나밖에 보이지 않았다. 1루석 207 구역 19열 232번 오렌지석, 우리는 태양빛이 그대로 내려앉는 낮 2시에 그렇게 잠실야구장 안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시작시간이 대략 40 정도 남아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하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둘러 쌓여 가고 있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떼창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들은 공격 때마다 일어나 주변을 살피며 어색하게 소리 지르며 응원 율동을 따라 했다. 그곳엔 한없이 빛나는 젊음이 있었다.
나같이 힘 빠진 중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이렇게 다를 줄이야 난 서서 응원을 하면서 무섭게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들었다. 땅이 갈라질 듯한 함성이 잠실운동장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4회가 넘어가자 1루 쪽 뒤로 해가 넘어가면서 그늘이 졌다. 3루 쪽으로는 여전히 강렬한 5월의 햇볕이 비추고 있었다. 한 시간 남짓 5월 햇볕을 고스란히 받은 우리들은 벌겋게 익어갔다. 미리 선크림을 바르고 모자를 쓰고, 응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지 못한 결과는 쓰라림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아이들은 좋아라 했다. 좌석마다 붙어있는 바코드를 인식해서 배달음식과 음료수를 시켜 먹었다. 순간 난 무라카미하루키가 생각났다. 야구장에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무라카미하루키, 농약들통처럼 생긴 들통을 메고 맥주를 따라주는 아르바이트생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다.
1루 오렌지석 바로 앞은 응원석과 붙어 있어서 현장의 응원열기를 그대로 받을 수 있다. 야구장을 제대로 즐기려면 그들과 함께 해야만 했다. 느긋하게 앉아서 TV 보듯이 야구관람을 할 수 없다. 공격 때는 일제히 일어서서 내내 소리를 질러야 하고 율동에 맞춰 응원을 해야 한다. 하다 보면 익수해 진다. 산정상에서 지르는 함성을 쏟아 낸다. 모두 다 같이 그 정도의 에너지를 일제히 쏟아붓는다. 왜 사람들이 야구장과 축구장을 가는지,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알게 된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수많은 에너지가 돌고 돌아 하나의 기운이 되어 내게로 다시 들어온다. 엔트로피의 놀라운 법칙이 여기에 있다. 역시 에너지의 흐름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만약 흰색 유니폼과 야구모자와 응원수건까지 준비했더라면, 엔트로피가 차고 넘쳐 폭발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별로 지쳐 보이지 않았다.
역시 모든 스포츠의 시작은 장비빨이 먼저 나는걸 다시 한번 느낀 하루였다. 이미 검지 손가락은 네이버 검색 쇼핑을 휘젖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