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행복 - 오늘 행복해지기
수학문제 가르치기와 행복의 함수관계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둘레의 합이 24인 정사각형의 면적을 구하라는 수학문제가 발단이 되었다. 개념을 이해시키려는 아내의 설명이 길어지고 있었다. 답만 덩그러니 적어놓은 수학 문제지를 펴놓고 식을 적어보라고 다그치고 있었다. 암산으로도 풀리는 간단한 문제를 왜 공식을 적어야 되냐며 연필만 굴리고 있는 주완이의 태도는 아내의 꼭지를 건드리고야 말았다. 서재방을 걸어 잠근 아내의 목소리는 차분함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 참아야 돼 수학만 가르치자던 처음의 생각은 아이들의 버릇과 습관 예의범절로 넘어가고 있었다. 삽시간에 들불이 번지듯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고 있었다. 그 시간이 이른 아침이라는 것과 아직 아침밥을 먹기 전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법도 했지만, 한번 치달은 화는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런 건 성당을 열심히 다닌다거나, 책을 좋아한다거나,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 너무 개인적인 거라는 걸, 다스려지지 않은 화를 보며 알게 된다.
그 순간엔 어찌 된 일인지 수학문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화만 덩그러니 남는다. 어디로 갔는지 본질은 사라지고 거칠어진 호흡과 빨라진 맥박수만 존재한다.
삼십여분, 아내는 화를 참아가며 안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때부터 캄캄한 정적과 침묵만 존재한다. 아내의 시간은 어느 순간 이런 반복으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나 역시 수학문제를 가르치다 보면 둘레의 합은 사라지고 혈압만 올라간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게 된다. 수학을 못하는 게 당장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할 말 못할 말 필터링 돼지지 않은 언어들이 쏟아져 나온다.
여기서부터가 교육의 함정이 숨어있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겠다는 부모의 마음이, 시시 때때로 과녁을 벗어난다. 아니 어찌 보면 과녁을 맞힐 수 없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날 무거운 마음으로 성당 미사를 드렸다. 성모대축일 주간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양옆에 앉히고 내가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오래 살았지 애들이 다 커서 또 애들을 낳고 그 애들이 이제 결혼할 때가 됐으니"
두 분의 할머니가 뒷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이상하게 그런 이야기는 더 잘 들리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오래 사셨길래 그런 소리를 하시는지 궁금해졌다. 내 생각을 알기라도 한 듯
"해방되기 십 년 전에 태어났으니 작년에 구십이 넘었지 더 살면 모하나 이제 갈 때가 됐어"
할머니의 목소리는 그 나이보다 젊게 들렸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흐트러짐이 없었고, 우아함이 배어있었다. 시간은 할머니에게서 앗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었다. 두 분의 할머니는 내 옆으로 앉은 아이들을 보며 잘생겼다고 했다.
아이들은 미사 내내 장난을 쳤다.
시몬 신부님의 강론은 좋았다.
아이들에 꽂혀 있는 불편한 심기가 어느새 가라앉았다. 마치 흙탕물이 투명하게 가라앉듯이,
"오늘이 행복한 신앙을 해야 된다. 그런 하루들이 모여 행복이 쌓여간다.
죽어서 구원을 얻는 것은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구원을 받기 위해 오늘이 불행한 신앙을 하면 본인도 불행 해진다. 죽은 이후는 사람의 몫이 아니다. 신의 영역이다. 살아 있을 때 바로 오늘을 행복하게 살자."
시몬 신부님께 인사드리며 좋은 강론 감사드립니다 인사드렸다. 시몬 신부님은 긴 머리가 제법 잘 어울린다.
남자가 저 정도의 헤어스타일을 소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머리가 헝클어지지 않고 단정하게 웨이브져 있다.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면서
차 안에서 수학문제와 엄마 이야기를 나누었다.
" 강론 잘 들었지, 신부님이 오늘이 행복한 신앙을 하라고 하셨잖아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언론 들어가서 수학숙제 하고 엄마가 하라고 한 것들 다 해놓는 거다 알았지"
이상한 건 다시 원점이었다는 것 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은 되돌림표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