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칭찬

아내의 칭찬 이야기

by 둥이

아내의 칭찬을 좋아하는 남편


밀대 청소기에 부직포를 끼우고 있었다. 습관까지는 아니지만 발바닥 내딛는 감촉이 안 좋을 때면 난 밀대 청소기를 꺼낸다. 어찌 보면 그 감촉은 일종의 청소주기를 알려주는 신호역할을 해준다. 밀대 끝에 부직포를 갈아 끼고 손으로 밀고 닦는 밀대청소기는 가볍고 다루기가 편하다. 왜 효과 좋은 진공청소기를 사용 안 하고 밀대 청소기를 사용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왠지 난 청소라고 하면 이런 밀대 청소기가 더 좋다.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감성도 나고 더 신뢰가 간다. 거기에 청소효과는 진공청소기 보다 좋아서 부직포에 묻어나는 까만 먼지들을 볼 때면 왠지 기분이 좋아진다. 마른 부직포로 한 번 그리고 젖은 부직포로 한 번 바닥을 청소하고 나면 발바닥으로 내딛는 감촉이 좋아진다. 세 제을 잘 닦아낸 접시에서 뽀드득 소리가 나듯이 거실을 내딛는 발바닥에서 사브작 소리가 들려온다.

별것 아니지만 행복은 이런 것들 속에 스며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말이다.


비교하자면 대중목욕탕에서 빨간 이태리 타올로 등을 밀었을 때 국수자락처럼 밀리는 때를 벗겨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럴 때면 뽀얗게 묻어나는 부직포위에 먼지를 보며 아내는 이야기했다. 누가 봐도 딱 좋은 타이밍이다. 너무 건조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생색내거나 티나지도 않게 무심한 척 툭 내뱉는다.


"오빠 잘했어 그렇잖아도 내가 하려던 참이었어 고마워 침대 밑에까지 구석구석 해주라 "


아내의 칭찬은 가성비가 좋다. 나름 그 분야의 권위 있는 상이 있다면 수상자 명단에 들어갔을 것이다. 칭찬을 잘하는 상 그런 게 있을 리 없겠지만 말이다. 아내의 칭찬은 타이밍상으로만 보면 월척을 낚는 강태공의 포인트 못지않다. 한두 마디 말로 남편을 더 의욕적으로 일하게 한다. 좀 더 잘하라는 빈정상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가끔 본인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땐 칭찬을 안 해주면 그만이다. 칭찬이 없는 날엔 뭔가 한참 부족하다는 의미여서, 난 청소를 한다거나 세탁기를 돌린 후에도, 바둑기사가 복기를 하듯, 한수 한수 되짚어 본다. 마치 마약 수사견이 수색을 하듯, 놓친 무언가를 찾아 나선다. 이럴 땐 가끔 내가 기특해 보여서 또 다른 내가 있다면 등이라도 두드려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 난 아내의 칭찬을 좋아한다. 이런 것도 은근히 중독이 되어서 칭찬이 없거나 늦기라도 하는 날이면, 나는 칭찬을 받으러 자랑을 한다. 남자들은 다 비슷할지 모르지만, 아내의 칭찬은 남편을 길들인다.


난 언제부터 인지 모르지만,

아내의 칭찬을 좋아했다. 아마 아내가 좋아지기 시작했던 삼십 년 전부터였을 테지만, 가끔 나에게 맥락 없이 말해주던 그 말이 좋았다. 생각해 보면 그 길목에 묻혀있던 칭찬들은 지뢰처럼 계산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아내가 청소를 싫어한다거나 전혀 안 하는 것도 아니다. 아내는 남편의 청소 상태가 마음에 안 들던 어느 날 조용히 일어나 침대보를 뜯는다. 침대보를 벗긴 아내는 진공청소기를 들고 와 매트리스에 묻은 진득이 먼지부터 제거한다. 여기서부터 아내의 청소는 시간과 노동을 들여 남편이 감히 해볼 생각도 내지 않았던 곳까지 구석구석 청소를 한다. 그건 마치. 사단장 방문을 앞둔 군부대에서 청소를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청소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이게 청소야 하며 보여주는 듯 단 느낌을 준다. 그렇다. 아내의 청소는 내가 아는 청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꼼꼼하고 세심하고 청결하다. 매일 자주 하는 나의 청소하는 그 기본기부터 다르지만 분명 일장 일단이 있을 거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생각이다.


아내의 능력은 내가 가진 능력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 꼼꼼함과 세심함은 따를 사람이 없다. 나의 모든 빈틈을 막아주는 것은 아내의 그런 능력 덕분이다.


그렇게 아내의 칭찬은 아내로부터 가사일을 조금씩 줄여 나가며 남편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기 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건 일부러 시켜서 하는 일과 전혀 다른 성격이어서 마치 내가 원해서 한 것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든다. 조직 생활로 치자면 대단한 동기 부여가 아닐 수 없다. 이만큼 자기 일로 여기게 만들 만큼 동기 부여를 해주는 리더는 조직에서 꼭 필요하다. 아내의 칭찬은 나에게 크고 작은 동기 부여를 만들어준다. 신비하다면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이것만큼 이상한 일이 없다.


어제가 아이들 생일이었다. 아내는 성당 자매님들과 서울 명동 성당을 다녀왔다. 늦은 오후에 집에 돌아온 아내는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7시 전까지 미역국을 끓이고 냉동고에 잠겨 있는 갈비찜을 꺼내 조리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아내에게 연락해. 아이들 생일 케이크는 내가 사가겠다고 연락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전문점에 들려 조각케이크 (필히 유기농이어야 되며, 당근케이크이나 과일이 들어간 조각케이크로) 8조각을 골라 동그란 케이크를 준비했다. 아내는 내가 사 온 케이크를 보고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사 온 것을 보고 아무 말도 없다는 것은 아내가 내게 해주는 큰 칭찬이었다. 그래, 잘 샀어라는 말과도 같다.


아내는 내가 사는 모든 것에 한 두 마디 말을 한다. 그 말은 시시콜콜한 것이어서 그것을 왜 샀냐 하는 것과 색상과 디자인과 크기와 가격과 용도 그리고 그것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일일이 꼼꼼히 물어본다. 이때 버벅거리거나 적당한 대답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기분이 상해서 기분이 나빠진다.


아내는 꺼내 놓은 놋그릇에. 반찬들을 정갈하게 올려놓았다. 7시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과 고깔 모자를 쓰고 반짝이는 선글라스를 끼고 사진을 찍었다. 아내는 몇 달 전 놋그릇이 필요하다며 백화점 그릇가게에서 놋그릇 세트를 구매했다. 생각보다 무거운 놋그릇은 아이들 앞에 가지런히 세팅되어 있었다. 아이들 생일에 이 정도는 해야 된다며 꺼내놓지 않았던 보물 그릇을 꺼내 놓았다.


문제는 아내가 성당회의가 있다며 집을 떠난 후였다. 아내는 현관문을 닫으며 이야기했다.


"오빠 놋그릇은 따로 깨끗이 닦아서 치키타홀로 물기를 닦아 낸 후 겹쳐 놓지 말고 하나씩 펼쳐놔 줘"


아내의 이 말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듣던 대사였다. 명절날 이거나 가족 행사가 있는 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이런 말들을 한다.

한 번도 닦아보지 못했던 놋그릇을 조심히 들고 혹시라도 흠집이 날까 봐 주의를 하며 치킨다울로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주방 식탁 위에 가지런히 넓게 펼쳐놓았다. 마치 도공이 갓 구워낸 그릇을 꺼내 놓은 것처럼,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분명한 건 아내의 칭찬은 남편을 춤추게 한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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