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향수를 뿌려요

산책 이야기

by 둥이


사람이 피어나다. 어떻게 피어날 사람인지, 얼마나 아름다울지.(.... )

"물 같은 사유를 바람 같은 음악을 햇빛 같은 마음을 틈틈이 주면서 나를 키워가며 지켜볼 것이다. 나라는 씨앗을 심는 일 조그만 씨앗 속에는 셀 수 없이 무수한 나무가 울창하고 아름다운 숲이 들어 있다는 걸 나는 안다"

고수리 작가 [마음 쓰는 밤] 중에서 P116


향수를 뿌려요


하루 해가 저물어 가는 늦은 오후

그렇게 우리의 하루가 사라 지는 게 아쉬웠어요. 도서관 문 닫을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남아 움직이기에는 고민되는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무작정 아이들과 밖으로 나왔답니다. 별 고민 없이 늘 하던 데로 그대로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했지요. 아이들은 쏜갈같이 일층 어린이 도서실 DVD실로 뛰어가더군요. 하지만 이미 예약이 꽉 차있었어요. 아이들은 DVD실 앞에 서서 염치없이 곁눈질로 영상물을 보았지요.

저도 읽고 싶었던 책들을 대여했어요. 도서관은 작은 공원 같아요. 삼층 열람실에 들어섰을 때는 삼층 열람실 냄새가 나요. 그걸 어떻게 아냐고요!

삼층에 꽂혀 있는 책들과 그 책들을 찾아가는 독자들의 성향이 비슷해서 일까요! 어느 날은 엷은 향수 내음이, 어느 날은 진한 향수 내음이 사라지지 않은 채 머물러 있어요.


도서관을 나와 아이들과 초막골 생태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생태공원은 수리산 낮은 구릉이 공원을 감싸고 있어요. 포대기로 안은 듯 포근해 보입니다. 생태공원은 수리산 태을봉 자락의 기세가 옅혀 지는 지점에 자리 잡고 있어요.

인가와 야산이 잇닿아 있는 경계선이라 많은 주민들이 아이들과 놀러 나오는 공원이기도 하지요. 계곡과 계곡이 맞닿아 산새의 풍취를 더해주고요. 언제 가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계곡 사이를 빠져나가지 못한 채 메아리칩니다. 이곳을 걷다 보면 우선 산내음이 더 진하게 다가옵니다. 나무는 낙엽을 떨구기 시작했어요. 곧 겨울이 올 거라 아는 거겠지요.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낙엽은 이슬과 바람에 풍화되어 분해되어 갑니다. 땅에 의지해 살아가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낙엽과 다르지 않을 거예요. 모두 흙으로 돌아가겠지요. 나뭇잎을 줍습니다. 손바닥 보다 작은 나뭇잎 안에 촘촘하게 뻗어있는 잎맥들이 보이네요. 작은 것들을 살아가게 해주는 마법이 그 안에 들어 있어요. 생태공원안은 산이 만들어 내는 온갖 냄새들이 바람에 업혀 훋날립니다. 몇 걸음 더 걷다 보니 코스모스가 군락 지어 피어 있어요. 한들한들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다가도 우리 발소리를 들은 듯 얌전해지네요. 다소곳이 무리 지어 피어있는 코스모스에 향기가 피어납니다. 우주가 그 안에 있어요. 흔들리며 향기를 피어네요. 저는 향수를 좋아해서 아침 출근길에 거울 앞에 서서 향수를 뿌립니다. 다른 사람 곁에 다가설 때나, 다른 사람이 내 곁을 스쳐 지나칠 때 짧은 순간에 그 사람이 가진 향기가 느껴집니다.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빈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누군가가 지나간 자리에 남아있는 향기가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머물다 갔는지를 보이지 않는 향기로 더듬어 생각합니다. 화려한 스카프를 두른 삼십 대 카레우먼 일수도 있고 땀으로 젖어 들어간 옷을 입고 노동으로 일상을 살아가는 배달라이너 일수도 있어요. 한 공간을 가득 채운 냄새는 머릿속으로 들어와 형체를 불러냅니다. 머물다가 간 사람들의 표정과 대화를 상상해 봅니다. 냄새는 기억을 소환하는 능력이 있다고 해요. 나무와 바람과 풀들이 흙과 빚어내는 냄새는 향기로와요. 고운 향수 같아요.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울긋불긋 다홍빛으로 물들어 이보다 더 예쁠 수 있을까 다가서게 하고 머물게 하네요 그뿐인가요! 풍화되어 분해되어 가는 분해물의 체취는 우리와는 너무 달라요.

기름진 땅으로 만들서 주지요. 모든 것들이 살아가게 해 주어요. 고맙고 감사하네요.



오늘 하루를 순간을 움켜잡아보세요.

나무와 낙엽과 꽃들의 향수를 뿌려 보세요.


"당신이 가신 길 그 길가에 꽃들이 피어

하늘을 바라고 저 하늘은 햇살 가득

따스한 품을 열어 주네 저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새들과 그 노랫소리가 나의 맘을 밝혀주네

먼 길에 지친 나의 맘을 외롭고 힘든 그 길에서

나를 찾고 당신을 찾아 한 송이 꽃이 되어

따스한 햇살 품으로 바람이 불어 꽃씨 날리면

이 세상 온 마음 가득히 향기 가득하네


가톨릭 성가 [꽃 ] 가사


keyword
이전 08화헐렁한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