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이야기

두부 중독 두부 반찬

by 둥이

두부 이야기


가난하고 투박한 음식이 두부다.


밍밍하고 별맛도 없어 젓가락으로 퍼 나르기도 힘든 음식이지만, 두부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난 요즘 두부를 먹는다.


아파트 앞 상가에 두부가게가 들어선 건 몇 해 전이다. 재래시장과 붙어있고 입주민이 많은 아파트 단지여서 목이 좋은 곳이다. 그곳은 오랫동안 빵 가게가 들어섰던 곳이었다. 인심 좋은 사장님은 덩치가 좋았는데 인상만 놓고 본다면 빵 가게 사장님처럼 보이지 않았다. 포니테일 머리 스타일 덥수룩한 수염 말 거기 어려운 첫인상과는 다르게 수더분한 사장님이 일본인 아내와 꽤나 오랫동안 빵 가게를 이어나갔다.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 빵 가게여서 단골들도 많았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빵과 음료를 먹으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코로나의 한파는 잘 나가던 빵 가게마저 문을 닫게 만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 잎 간판이 기찬 두부라는 두부가게로 바뀌었다.


두부가게 사장님은 서너 평 남짓한 공간 반 이상을 주방으로 만들었다. 주방 안에는 커다란 검은 솟아 두세 개 매달려 있었다. 남은 공간은 두 대의 냉장고와 선반들이 들어섰고 손님들이 들어와 앉아있을 자리는 처음부터 공간 배치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부가게에서 누가 커피숍이나 빵 가게처럼 이야기를 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두세 달에 걸쳐 인테리어 공사가 끝난 후 두부가게는 여름 무렵부터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했다. 재래시장이 바로 옆에 있어서 두부가게가 잘 될까 하는 우려는 큰 착각이었다.


스타벅스 같은 거대 프랜 체이스점들도 유동인구와 상권을 면밀히 분석해서 까다롭게 입주를 해도 그 주위로 쉴 새 없이 생기는 저가 커피전문점들로 인해 수익내기가 어렵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 시절이었다.


바로 옆 재래시장 안에는 오랜 내공으로 다져진 시장 상인들의 두부와 맛난 반찬가게들이 즐비한 곳이기도 해서 과연 이 집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까지 들기도 했다.


전문가의 판단과 분석은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것일까 기찬 두부가게의 영업 노하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두부가 가진 본질 그 향과 맛을 본 사람이라면 이 집에 단골이 될 수밖에 없다. 우선 이 집은 깨끗하다. 재래시장 안도 요즘은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지만, 아파트 주민들이 신호등 건너 재래시장으로 두부를 사러 가는 수고를 마다하게 만들진 못했다. 오전과 오후에 일정한 시간에 나오는 따뜻한 두부는 향기와 맛이 좋았다. 정확한 시간에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면, 멀리서 봉화가 올라오듯이, 두부는 가게 안 선반 위로 가지런히 세팅이 된다. 일려 횡렬로 각져서 쌓여있는 두 부모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두부 종류도 순두와 두부로 두 종류로 간단하게 구분되어 있다. 요즘 마트에 가면 두부 종류가 너무 많아 (국거리용 두부와 튀겨 먹는 두부 연두부와 순두부 등) 어느 걸 사 가야 될지 한참을 고민한 걸 생각해 보면 두부가게에서의 고민은 한결 간편해진다. 잘못 사 왔다고 타박받을 일이 아예 없다. 난 이 집 두부를 두 모씩 사 간다. 요즘 나의 주식이 되었다. 두부만으로 부족했는지 선반 옆으로 여러 건 반찬들이 놓여 갔다. 누룽지와 다시 다 튀김, 김튀김, 마른 김, 조리김, 냉장고 안에는 식혜와 고기만두 김치만두 국수와 칼국수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다. 두부만 사러 와서 조리김과 식혜까지 사들고 들어가는 날이면 아내의 목소리가 커진다.


요즘처럼 영하 20도가 넘는 날씨가 일주일 넘어가다 보면,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두부가게를 그냥 지나 친다는 게 쉽지 않다.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이, 딱히 살게 없어도 그냥 냄새에 이끌 여 들어가게 된다.


마치 두부에 중독이라도 된 사람처럼, 하얀 김에 이끌려 가게 문을 열게 된다.


어느 것을 사야 될지 핸드폰에 꼼꼼히 적어서 나온다 해도, 구매리스트에 들어가 있지 않았다 해도, 과소비를 부르는 값비싼 것도 아니어서, 그러니까 이걸 산다고 충동구매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듯해서, 우리는 쉽게 모 두부 한 모 사는 건데 하며 지나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기가 막힌 상술 아니던가 마침 그 자리에 하얀 김을 모락모락 피워가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우는 영업 노하우는 별다른 게 없는 건 확실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두부와 갓 구운 김을 최고의 음식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야말로 최고의 음식이어서 어디에 가 나 그 동네의 두부가게 먼저 찾아본다고 하니, 무라카미 하루키의 두부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있다.


나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심장 혈관이 안 좋다는 걸 알게 된 후 일부러라도 더 자주 먹게 되는 단백질 음식이 되었다.


두부 생각만 하면 엄마의 심부름이 자동 연산처럼 떠오른다. 마치 종소리만 들으면 침을 흘리는 훈련된 강아지처럼,


저녁때만 되면 엄마는 동네 앞마당에서 뛰어노는 나를 불러 두부 심부름을 시켰다. 두부는 나에게 음식이 아닌 그냥 심부름의 대상이었다. 그건 동네에 하나밖에 없던 가게에 가서 다른 식자재를 사 오라는 것과 같은 거였다. 그냥 가기 싫었고 두부 없이 그냥 먹으면 안 돼하며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그랬다. 두부 없이 그냥 먹으면 안 돼하고 엄마에게 투정 부렸던 나였는데, 지금은 두부 없이 한 끼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이 정도면 나에겐 여간 고마운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오랜 기억 속에 파편처럼 박혀있는 가난하고 투박한 음식 두부 사랑은 아마도 영영 끊을 수 없는 중독이 되었는지 모른다.


감사하고 고마운 가난한 음식 두부가 이제 나를 살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