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탐의 힘
나를 키운 건 식탐이다.
식탐의 힘은 늘 나의 의지를 이겨낸다. 조금만 먹어야지 하는 굳은 다짐은 입안에서 다져지는 달콤한 식감의 유혹을 버리지 못한다. 첫술에 무너지기 일쑤다. 여간해서는 이겨 낼 수가 없다. 혀가 길들여진 건지, 뇌가 그 묘한 맛을 잊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위의 포만감을 사랑한 것인지, 내속의 모든 장기는 식탐 앞에 무장 해제를 한다. 의지라고는 일도 없어 보인다.
욕심은 좋아하는 것, 가보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삶을 지탱하는 이런 의식주는 소비의 형태로 굳어져 현재를 살아가게 해 준다. 나에겐 유독 다른 욕심이 있다. 그건 채워도 채울 수 없는 탐욕과는 차이가 있다.
어렸을 적부터 난 식탐이 강했다.
떡볶이와 라면 야끼만두 쫄면은 언제 먹어도 물리지가 않았다. 즉석떡볶이에 삶은 계란과 어묵사리를 넣어 먹는 건 행복을 부르는 조합이다.
나를 지금껏 버티게 해 준 힘의 삼 할은 식탐이다. 식탐이 강하다 보니 끼니때가 되면 늘 먹을거리 생각을 했다. 먹을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졌다.
어렸을 적 교회 목사님이 집에 오는 날이면 엄마는 평소에 내 놓지 않던 귀한 음식과 반찬들을 만들어 내놓으셨다. 명절 때면 폈던 직사각형 교자상을 꺼내놓고 그 큰 상위에 진귀한 음식들을 차려 놓으셨다. 지금이야 언제든 먹을 수 있었던 반찬들이었지만 그 시절 교회 목사님이 일 년에 한두 번 오실 때래야 만 먹을 수 있었던 맛난 음식들 이였다. 참기름을 발라 연탄불에 구워낸 조리김과 석쇠판에 노릿노릿 익혀낸 참조기, 명절날에만 구경하던 소고기와 잡채 도라지 무침 그리고 소고기 뭇국까지ᆢ나는 목사님이 남기고 간 음식들을 먹어 치웠다. 밥 두 공기를 배가 터지도록 먹고도 내일이면 먹지 못할 것 같아서 있는 힘을 다해 또 먹었다. 형과도 누나와도 동생 하고도 자주 싸웠다. 먹을 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손아귀에 움켜쥔 알사탕을 지켜 내기 위해 울고 싸웠다. 지금도 난 가끔 입을 벌려 깜깜한 입속을 본다. 저 안에 뭐가 있을까 시꺼먼 동굴 속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그 껌껌한 곳으로 씹어 삼켜지는 음식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었다
아버지는 이끈 덕 거리는 미역국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좋아하지 않는 미역국을 난 꽤나 좋아한다. 모를 일이다. 입맛은 유전되지 않나 보다. 그래서인지 자주 미역국이 당기는 날이 있다. 또 어느 날은 아욱 된장국이 먹고 싶은 날이 있다. 끼니때가 되면 정직하게 식욕은 불타 오른다. 배를 주리어 본 사람은 안다. 밥보다 위대한 것이 없다는 것을.. 한 끼만 굶어도 우리의 위장은 텅 비어 버린다. 텅 빈 공간은 계속해서 수축 운동을 한다.
난 자주 미역국을 끓인다. 그것도 가장 큰 냄비에 가득 미역국을 끓인다. 한 끼 식사나 하루식사 정도에 알맞게 끓이는 법이 없다. 끓이고 나면 일주일치 국거리가 된다. 아내에게 혼날일 들을 자주 사서 한다. 이상하게 식탐은 길들여지지 않는다. 야성을 잃어야 하는 시기가 지났음에도 식탐만큼은 가진 본성대로 야성을 꿋꿋이 지니고 있다.
집 앞 재래시장으로 장을 보러 나간다. 필요한 양만큼 조금 부족하게 사는 아내와는 달리 양파건 감자건 뭐든 살 때 두둑이 사고야 만다. 근본적인 식탐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배달웹으로 음식을 주문할 때도 부족하게 보다는 넉넉하게 주문한다. 식욕은 먹다 보면 빠른 속도로 꺼져 들어간다. 돌이라도 삼킬듯한 허기는 숟가락질 몇 번에 불씨 꺼지듯 사그라든다. 식욕만큼은 사람을 공평하게 대한다.
아내는 왜 그렇게 많이 시켰느냐 핀잔을 준다. 먹으면 되지 다 먹을 수 있어 주린 배를 두두리며 젓가락질을 한다.
평소 가리는 음식이 많았고 입이 짧은 편 이었는데도 좋아하는 음식은 쟁여놓고 먹었다. 다들 비슷할 거라 생각하다가도 아내는 식탐이 없는 걸 보면 내가 유별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엄마는 지금도 배가 찰 때까지 식사를 한다. 작은 체구에 배가 한아름 이어서 과체중임에도 먹고 싶은 식탐은 없어지지 않는다. 엄마를 닳아 나 역시 식습관이 비슷하다. 소식을 하는 아버지를 닮았어야 되거늘 그게 어디 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천성대로 살아가며 절제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식탐은 주체할 수 없는 둥근 뱃살을 만들어 놓았다. 둥근 뱃살을 만지며 거울 앞에 서서 다짐을 한다. 대식가가 아닌 미식가로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