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

by 둥이

가난한 아주머니 이야기

아마 누구에게나 주변에 이런 아주머니가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 대상이 아주머니가 아닌 아저씨 일수도 있고 할아버지 이거나 할머니 일수도 있다. 중요한건 그 대상들은 기억속에 여러 감각을 동반해 자주 나타나곤 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감각으로 남아 있는 기억 중심엔 가난한 궁핍함이 있다. 그 기억은 어느날 냄새나 소리나 촉각으로 다가 온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ᆢ

나의 유년기 시절엔 동네 대부분이 가난 했었다. 풍족 하지 못했던 시절 이여서 늘 먹고 싶은게 많았었다. 우리집 역시 그리 잘살지는 못했지만 부지런한 아버지 덕분이었던지 나는 우리집이 그럭저럭 중산층은 된다고 생각했었다. 어쨌든 어렸던 나에게 그런 믿음을 갇게 해주는 근거있는 일들이 몇가지 정도는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동네에 가난한 아주머니 집이였다. 마을 어귀 큰길가 옆으로 돼지를 키우는 축사에 붙어있던 작은 스렛트집이 있었다. 집이 축사에 붙어있던건지 축사가 집에 붙어 있던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찌보면 건물 전체가 축사처럼 보였을 정도의 그런 허름한 집이였다. 동네에 한군데 밖에 없었던 가게에는 막걸리와 두부 과자 하드등이 있었는데 우리들은 그 가게를 자주 드나들었다. 그 가게를 가기 위해서는 쓰레트 집앞을 지나가야만 했다. 그래서 늘 돼지 우리 냄새가 났었고 부엌에서 흘러나온 밥알들과 시궁창물이 길가로 지저분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쓰레트 집은 작은 방이 두개 있었고 방 사이로 씨꺼먼 부엌이 있었다. 시꺼먼 부엌 한가운데는 작은 아궁이가 있었고 그위로 작은 무쇠솥이 걸쳐 있었다. 큰길가 옆이여서도 그랬고 또 부엌문을 항상 열어두어서 집안살림이 훵하니 한눈에 볼수 있었다. 노란 전구다마가 부엌 한가운데 천장으로 메달려 있었고 대낮에도 햇볕이 들지 않아 부엌은 껌껌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 부엌안은 식기며 찬이라고 할것들이 거의 없었고 늘 어둡고 비좁았다. 그 좁은 부엌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했고, 물을 데워 세수를 하고 그 물을 큰길가로 끼엊어 버렸다. 운수 나쁜날에는 부엌에서 날아온 구정물에 바지단이 젖는날도 있었다. 더 운수가 나쁜날은 아주머니가 밥먹고 가라며 우리를 잡아 세울때였다. 시커먼 부엌 한켠에 숱가락 몇개가 뚜껑도 덮지 않은채 꽂혀 있었고 아주머니는 씻지도 않은 그러니까 먼지가 뽀얗게 내려 앉은 숱가락을 밥상머리에 내려 놓았다. 도망가야 될지, 밥상 둘레로 불려가야 될지 판단해야 되었다. 어떤날은 잡혀서 억지로 몇숱가락 떠먹을때도 있었는데 바로 집으로 달려가 토악질을 했다. 지금도 이상한건 어떤 이유인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가난은 그 아주머니의 가난으로 옅어지고 지워졌다는 것이다. 빈부만큼 상대성을 지닌게 또 있을까 그집에는 형과 누나 그리고 나와 같은나이의 여자아이와 남동생 두명까지 다섯명의 자식이 있었다. 그집 아저씨는 오랫동안 병치레를 하느라 언제나 누워 있었고 가끔씩 집앞을 지나칠때마다 들려오는건 마른 기침소리와 술에 취해 소리 지르는 아저씨의 거친 목소리뿐이였다. 그리고 기억에 남는건 아저씨의 상여 나가는 소리였다.


아주머니는 당시 동네 아주머니들 보다 키가 커었고 다부지고 억척스럽기 까지 했다. 그래야만 했었다. 가난한 아주머니는 그런 집안을 억척스럽게 먹여 살려야 했다. 그렇케 하지 않으면 살수가 없었다. 다섯명의 자식들중 큰아들은 우리와 나이차가 있어서 같이 어울리지 못했지만 그 밑으로 누나와 두남동생 그리고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아이는 우리와 자주 어울려 놀았었고 자주 우리집에서 끼니를 때우곤 했다. 우리는 학교 등교길을 같이 걸어다녔고 가끔은 노느라 학교를 안간적도 있었다. 가난한 아주머니는 골프장 근처에 있는 뼈해장국 이나 곰탕집에서 주방일을 도와주었다.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버려지는 뼈들을 가져와서 아이들을 먹였다. 가끔은 살점이 붙어있는 것들로 우리집에도 가져다 주었는데 엄마는 그것을 우리에게 해주지는 않았다. 저녁늦게 아이들을 데리고 우리집으로 마실을 온날이면 우리는 마당에서 한없이 뛰어놀다가 밥먹으라는 소리에 쪼르르 달려 갔었다. 그때 아주머니는 뭐라도 도와주고 싶었던지 참외나 사과를 덥썩 집어들더니 껍질을 깍았었다. 그때 난 아주머니가 깍은 참외를 안먹으려 인상을 찌푸리고 티 안나게 밖으로 나갔었다. 나는 아주머니의 손이 너무 더렵다고 느꼈었다. 왜 그랬을까 어려서 그랬을까 사과 껍질이 벗겨지며 하얀 사과가 아주머니의 손가락 마디에 닿았고 나는 그것을 또렷히 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아이들 손에 사과를 하나씩 쥐어 주었고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어떻게 하면 안먹을수 있을지 생각을 했다.

아주머니는 자주 우리집을 찾아 왔었고 마루에 걸터 앉아 때론 수돗가에 둘러앉자 당신의 고달픈 일상을 풀어 놓았다. 아주머니에게 엄마는 그런 일상을 들어주며 가난을 메워주는 고마운 사람 이였을 것이다.


"읍씨 사는 사람 맘은 읍씨 사는 사람이 알지"


두분이 무엇 하나라도 손에 쥐어 주면서 늘쌍 하는말이다. 엄마는 밭에서 제철에 거둬 들이는 푸성귀들을 퍼다 날랐고 아주머니는 식당에서 주워 모은 뼈다귀들을 실어 날랐다. 둘다 풍족함을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지만 마음만은 풍성했을 것이다.

지금은 신도시가 밀고 들어와 동네 전체가 없어지고 몇몇집만 남아 있지만 가끔씩 엄마는 가난한 아주머니와 통화를 한다. 엄마의 칠순 잔치때 가난한 아주머니는 다 자란 자식들의 부축을 받아가며 참석하였다. 다섯남매중 큰형은 공부를 잘해서 아주머니의 자랑이 되었고 들어보니 고등학교 교사가 돼있었다. 지금도 큰아들은 아주머니의 자랑거리중 하나였다. 그때 나를 따라 다니던 코흘리개 두 남동생은 결혼해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돼있었다. 아주머니는 불편한 몸인데도 꼭 와야 된다며 자식들을 닥달했다고 한다. 엄마와 아주머니는 꼭 껴안고 서로의 눈을 쳐다보며 눈물을 흘렸다. 서로의 살아온 시간이 보여서 일까 두분의 가난은 서로의 가난을 보다듬어 주었고 위로해 주었다. 그 가난한 아주머니가 없었다면 내가 느끼던 이상한 풍족함은 아마도 없어지거나 앏아 졌을것이다. 굴뚝마다 푸른 연기가 올라 올때쯤이면 밥짖는 냄새는 우리를 불러 모았었고 그렇게 8명의 아이들은 밥상 머리에 둘러앉아 까만 머리통을 맞닿은체 밥을 먹었었다. 엄마는 아주머니의 아이들을 불러 밥상머리에 앉혔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서도 엄마가 챙겨주는 밥한끼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지금도 가끔 난 가난한 아주머니가 깍아주던 참외가 생각이 난다. 그때 그 정을 알았더라면 더 맛있게 먹었을 거라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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