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분 (3)

by 허아른

검은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백옥처럼 하얀 얼굴의 여자다. 나는 발목을 질질 끌며 그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알아챘는지, 그녀는 뒤로 돌아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따라오라는 걸까? 발밑에 물이 고이기 시작한다. 철벅철벅하고. 이대로 철벅철벅 따라가다가 강물 깊은 곳까지 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금세 마른 땅에 도착했다. 여자가 발을 멈춘 것은, 집…이랄까, 커다란 움막 앞이었다. 그녀는 들어오라는 듯한 고갯짓을 하고는 먼저 그 움막 안으로 들어갔다.


움막 안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도 훨씬 넓었다. 게다가 허름하긴 해도 세간이 다 갖추어진 것이, 분명히 생활감이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여기저기 널려 있는 기다란 널빤지들이었다. 사람 키 정도 되는 균일한 크기의 그 널빤지들은 모두 초승달마냥 반원을 그리며 휘어 있었다. 통이라도 짜려는 것인가. 하지만 저렇게 커다란 통을 대체 어디에…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 산에 올라온 이후로 자꾸만 이런다. 중간에 멍해지거나, 기억이 끊기기도 한다. 피곤한 탓일까. 여자가 나를 바라보며 손짓을 한다.


“앉으시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아름답지만 어딘가 땅속 깊이에서 새어 나오는 어둠 같은 기운이. 나는 자세를 고치고 바로 앉았다. 그제야 그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얼굴이다. 하얗고 선이 고운 얼굴, 활처럼 곧게 구부러진 눈썹과 물기 어린 검은 눈. 또렷한 콧날 좌우로 아주 얇게 번진 홍조. 그리고 그 아래로 얇지만 도톰한 입술이 벌어지며 하얀 이빨이 보일 듯 말 듯하다. 묘하다. 얼굴로 보아서는 스물이 갓 넘었을까. 하지만 풍기는 기운은 그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나이에 비해 원숙한 사람이거나, 혹은 나이에 비해 훨씬 어려 보이는 사람이리라. 하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이 왜 이런 곳에 사는 걸까.


순간 눈이 마주쳤다. 너무 빤히 바라보았나? 나는 멋쩍어서 눈을 위로 슬쩍 올렸다. 벽에 걸린 빨간 날의 창이 눈에 들어온다. 묘하게 어정쩡한 길이다. 포졸들이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작지만, 단창이라기엔 길다. 장식용이라기엔 기묘하게 생겼고 호신용이라기엔 투박하다.


“이 산엔 어쩐 일로 오르셨나요?”


생각하는 와중, 갑작스럽게 끼어든 그녀의 말에 흠칫 놀랐다. 잠시 마음을 읽히기라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걸 금방 알았다. 그렇구나. 그녀는 나에게 묻는 것이다. 왜 이 산에 들어왔냐고. 나는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우물쭈물 말했다.


“그…인면분이라는 걸 찾으러….”


그녀가 짧게 탄식을 흘렸다. 눈치를 보니 놀란 것 같기도 하고 슬퍼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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