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면분 (2)

by 허아른

나는 좌우를 살폈다. 달빛도 어스름한 밤의 산, 달무리 곁까지 창대처럼 뻗은 나무 무리 사이로 흔들리는 그림자 여럿이 보인다. 거뭇거뭇한 그 그림자들은 얼핏 사람처럼 보이지만 잘 보면 다르다. 그것들이 나를 향해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다가온다. 어떻게 찾은 것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내가 있는 곳을 알고 찾아온 것이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돌뿌리가 발에 채인다. 발밑은커녕 무릎 언저리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숲이다. 자칫 넘어지거나 걸리기라도 했다간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재수 없으면 산짐승 덫에 걸리거나 절벽 따위에 떨어져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저것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먼저다. 저 꾸물텅거리는 긴 팔에 잡히면….


헐떡거리는 숨을 집어삼키며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그 냄새가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빽빽한 갈대밭이다. 머리 위까지 갈대가 올라와 있다. 갈대에 가려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냄새로 알 수 있다. 그것들로부터 충분히 멀어졌다는 것을. 어서 내려갈 길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가야 찾을 수 있는가. 나는 가야 할 곳도 모르면서 무작정 갈대밭을 헤치고 나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발이 축축한 땅에 닿았다. 눈앞의 갈대를 헤치자 바위로 가득한 땅이 나왔다. 이리저리 뻗은 바윗돌 사이로 희미하게 흔들리는 불빛이 깜빡이며 새어 나온다. 됐다. 찾았다. 나는 불빛을 놓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바위틈을 더듬어 나갔다. 불빛이 일렁인다. 불빛이 점점 커진다. 바위틈을 빠져나와 평야에 발을 디뎠다. 온전히 보인다. 서른 걸음쯤 앞에서, 호롱불을 한 손에 든 채 서 있는 검은…검은?


나는 혼비백산해서 뒤로 돌아 다시 도망치려 했지만, 방금 빠져나온 바위에 부딪혀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얼른 땅을 짚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것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다. 도망쳐야 해. 빨리 일어나야 해…. 하지만 허겁지겁 일어서려다가 발목에 강한 통증을 느끼고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발이…. 좀 전에 넘어지면서 발이 바위틈에 끼었던 모양이다. 나는 일어선 것도 아니고 넘어진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로 발을 끌며 다시 바위틈을 더듬었다. 점점 다가오는 그것을 흘끔흘끔 뒤돌아보며. 도망쳐야 한다. 냄새가 나지 않는 곳으로. 냄새가… 어라? 뭔가 다르다. 뭔가….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다르다. 그것과는 다르다. 한 손에 호롱불을 들고, 내게 손짓을 하고 있다. 그 냄새는 나지 않는다. 사람이다. 그것도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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