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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주 Oct 31. 2023

지구 여행 가이드 해랑

1

  순식간이었다. 남자애가 내 손에 있던 믹스견 T의 목줄을 낚아채 도망가 버렸다. 그 모든 게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일어났다. 아니,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두뇌의 처리 속도가 따라가질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달려갔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머릿속이 마비된 느낌이었다. 어쨌든 남자애를 잡아야 했다. T를 잃고 난 뒤의 상황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가이드는 고객의 요구를 맞춰줄 수 있어야 한다고. 할아버지는 지구에서 30년 동안 가이드로 일해왔으니, 허투루 들을 말이 아니었다.

  ‘넌 아직 너무 미숙해.’

  ‘알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할아버지의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혼잣말을 내뱉었다.

  나는 먹고살기 위해서 할아버지의 일을 이어받았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하신 잔소리 같았던 말들을 매일 되새겼다. 이제야 할아버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할아버지의 신조를 지키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자주 내뱉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고객을 만날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쉬며 할아버지의 말씀을 기도문처럼 외워댔다.

  먼 우주에서 작은 비행선을 타고 혼자 여행 중이라는 T-29032023은 지구를 구경하고 싶다며 가이드를 요청해 왔다. T는 지구에서 색다른 경험을 해 보고 싶다며 특별 코스를 신청했다. 바로 댕댕이 코스였다. 내가 이 코스를 5년 전에 만들었을 때, 할아버지는 장난을 치면 안 된다며 혼을 냈다. 나는 요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만큼 관심을 보이는 고객이 있을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결국 댕댕이 코스를 여행 소개란에 넣었다. 신기하게도 이 코스를 선택하는 고객이 간간이 나타났다.

  나는 단독 주택의 옥탑방에서 무릎 높이 정도까지 오는 커다란 라디오를 켰다. 라디오는 할아버지가 지구에 정착해 살게 되면서 우주와의 통신을 위해 만든 장치였다. 우리가 있던 행성에서 빈손으로 떠나왔지만, 다행히 할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았다. 할아버지는 근처에 있던 고물상에서 통신 장비를 만들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통신 장비가 작동하자 할아버지는 우주 여행객들을 안내하던 가이드 일을 다시 시작했다.

  라디오에 설치된 안테나가 움직이며 우주에서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 지구인들에게는 의미 없는 잡음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신호를 해석할 수 있었다.

     

  ―오늘 지정된 장소에 도착 예정. T.     


  T는 기어이 오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할아버지의 가이드 일을 이어받고 댕댕이 코스는 처음이었다. 할아버지가 만든 코스에는 문제가 생겨서 재정비가 필요했다. 도착할 곳으로 지정된 장소에 아파트가 들어선 것이다. 도착할 곳을 새롭게 마련하기 위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찾아봐야 했다.

  나는 댕댕이 코스는 안전이 보장되지 않아 아직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T는 위험할수록 더 좋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혼자 우주를 여행하는 것도 모험을 즐기기 위해서라고. 당신이 아니라 내가 걱정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고객이 불안해할 말을 하면 안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다. 할아버지가 만든 코스 말고 내가 짜는 건 처음이니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동안 꼬박 돌아다닌 끝에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41.4033×, 2.1740×     


  나는 T에게 지구에 도착할 좌표를 찍어 보냈다. 지구 전 지역의 지도와 함께.

  댕댕이 코스는 1박 2일 동안 강아지 모습으로 변신 가능할 때만 선택 가능했다. 첫날은 강아지로 변해 휴식을 취하며 지구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날에는 공원을 산책하거나 애견 카페에서 시간을 보낸다. 가장 중요한 일정으로는 햇빛을 받으며 낮잠을 자는 시간이었다. 의외로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는 고객의 후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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