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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간이 있는 가로등 불빛에만 의지해 쫓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남자애와 T의 흔적을 놓치고 말았다. 대로변에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다녔지만 다들 고개를 휙휙 돌리며 외면할 뿐이었다. 계속 걷다가 지쳐서 편의점 바깥에 놓인 의자에 잠시 앉아 숨을 돌렸다. 그제야 거친 숨이 안정되며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T가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으면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남자애한테 벗어나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거 아닐까?
“맞다! 그게 있었지.”
잊어버리고 있었던 게 떠올랐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T에게 목줄을 채운 게 다행이었다. 그 목줄에 위치추적기를 달았었다. 휴대폰에서 위치추적기 앱을 열어 확인했다. 다행히 T의 위치는 근처라고 떴다. 마음이 놓이며 이대로 조금 더 있고 싶었다. 앱을 보는데 T의 위치가 조금씩 움직여 지도를 살폈다.
“대체 어디로 가는 거야?”
T가 움직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직진으로 쭉 가다가 왼쪽 길로 꺾었다. 또 직진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그 패턴이 반복되었다. 대체 남자애가 T를 데리고 뭘 하는 건지 궁금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될 때를 계산해 그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근처 공원에 있었다.
그들이 눈에 보였을 때 나는 기가 막혀서 팔짱을 끼고 지켜봤다. 남자애는 목줄을 놓친 채 T의 뒤를 쫓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T는 공원의 산책로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간간이 멈춰서 남자애가 쫓아오는지 확인했다. 반려견과 보호자가 장난을 치며 재밌게 노는 걸로 보였다.
나를 발견한 T가 멈춰서 꼬리를 흔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다른 보호자를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제 놀이를 끝내야 한다는 걸 아는 것 같았다. T는 잠깐 멈칫하고 남자애에게 달려갔다. 남자애는 T의 모습에 깜짝 놀라 당황하며 뒷걸음질 쳤다. T는 남자애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뛰어 그 품에 안겼다. 남자애는 무릎을 꿇었지만 T의 무게에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T는 꼬리를 흔들며 남자애의 얼굴을 열심히 핥았다. 그제야 T가 지구에서 개로 변해 보호자와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 있었던 게 떠올랐다. 비행선을 타고 혼자 여행하다 보니 무척이나 심심해서 신나게 놀고 싶다고 했다. 남자애가 아니었으면 내가 저러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갑자기 남자애가 무척이나 고마워졌다. 그래도 이제는 둘의 사이를 좀 말려야 할 것 같았다. 남자애가 T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걸 보면.
“어, 어? 왜 그래?”
가까이 다가갔을 때 뭔가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애가 땅바닥에 얼굴을 묻고 몸을 떨고 있었다. 남자애의 몸을 돌리자 얼굴이 시뻘게진 채 숨쉬기가 힘들 정도로 기침을 내뱉었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이유를 찾다가 남자애가 T를 밀어내는 손길을 발견했다. T의 목줄을 잡아 남자애와 멀리 떨어뜨려 놨다. T도 뭔가를 느꼈는지 가만히 지켜봤다.
“괜찮아?”
자신을 유남우라고 소개한 남자애에게 물병을 건넸다. 남우는 공원 벤치에 앉아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아까와는 달리 호흡이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감사해요. 제가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랬어요. 이젠 괜찮아요. 그리고 오해한 거 죄송해요. 진짜 뒷모습이 닮아서.”
“그 학대범 찾았으면 좋겠다.”
“네. 꼭 찾을 때까지 순찰 다닐 거예요.”
“털 알레르기가 심한 거 같은데. 그래도 개들을 찾아다니는 거야?”
“못 만져도 동물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바지를 툭툭 털었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었다. 남우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T가 엉덩이를 땅에 꼭 붙이고 앉아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왜 그러느냐고 눈빛으로 물었다. 그새 정이 들었나? T는 남우와 더 놀고 싶다는 눈빛을 보냈다.
“안 돼요. 남우는 털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아까처럼 아플 거예요.”
T의 목줄을 툭 당겼다. 그래도 T는 움직이지 않으려고 버텼다.
“티가 저랑 놀고 싶대요? 내일 산책 도와줄게요. 줄 길게 잡으면 될 것 같아요. 마스크 쓰고 알레르기 약 먹으면 괜찮을 거예요.”
남우까지 T와 함께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갑자기 저 둘의 모습이 진정한 보호자와 반려견의 관계로 보였다. 둘 사이에서 오히려 내가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나야 도와주면 좋지.”
그제야 T는 일어나 나를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