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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주 Oct 31. 2023

지구 여행 가이드 해랑

3

  “잠깐! 개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어두운 골목길 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나는 깜짝 놀라 앞으로 나서며 T를 위험으로부터 지키려고 했다. 나의 가이드는 이제 시작되었다. 내일까지 T를 안전하게 보호하다가 우주로 돌려보내야 했다.

  “방금 큰 소리 난 것도 저 개를 때린 거지? 지금까지 이 주변에서 개를 학대해 온 범인이 바로 너야? 솔직하게 대답해.”

  외치는 소리가 점점 가깝게 다가왔다. 집 앞에 서 있던 주황빛 가로등에 한 남자애가 나타났다. 근처에 있는 중학교 교복이었다.

  작년에 지구의 학교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고객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떠올랐다. 때마침 중고물품 사이트에서 저 중학교 교복을 발견한 건 천운이었다. 전학 첫날이라 서류를 못 받았다는 핑계를 대며 그날 하루만 그냥 수업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너무 어리게 보인다는 말에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미성년인 내가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며 울먹였다. 손으로 입을 막으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이 코를 훌쩍거리며 나를 응원했다. 그때는 어떻게든 넘어갔지만 깊은 한숨이 나왔다. 저 나이대의 청소년과 엮여서 좋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개는 그냥 두고 가. 안 그러면 경찰 부를 테니까.”

  옆에서 T가 멍멍거렸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아까 들은 말이 있어서 짖는 소리를 낸 모양이었다. 그나마 눈치가 있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래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걸 보면 이 상황이 끝나고 질문의 홍수 속에 빠질 것 같았다.

  “이건 내 개야. 상관하지 말고 꺼져. 개한테 물리고 싶어?”

남자애를 노려보며 낮은 소리로 위협했다. 내 계획이 더 엉망이 되기 전에 상황을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가 쉬고 싶었다.

  “개를 나한테 넘기면 더 이상 뭐라고 안 할게. 괜히 스트레스받는 거 개한테 풀 생각하지 마. 주변에 있는 개들 때리고 다니는 거 다 알아. 개들이 무슨 죄야? 그 개는 차라리 내가 만 원 주고 살게. 이걸로 뭐라도 사 먹는 게 더 낫잖아. 주인이면 옆에 있는 개 인생도 생각해 봐. 좋은 주인 만나서 사랑받으며 살 수 있어. 내가 꼭 그런 주인 찾아줄게. 약속해.”

  남자애가 손을 내밀며 가까이 다가오다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이 나왔다.

  “착각은 자유지만 이렇게 헛소리를 하면 안 되지. 난 학대한 적 없어. 증거 있어? 괜히 시비 걸지 마”

  “아줌마, 내가 봤거든. 이 동네 돌아다니면서 떠돌이 개들 팼잖아.”

  “허, 아줌마? 너랑 나이 차도 별로 안 나거든?”

  생전 들어본 적도 없는 아줌마라는 말에 발끈하고 말았다. 오랫동안 살아오기는 했지만 지구 나이로 환산하면 겉으로는 남자애보다 몇 살 많은 정도로 보였다.

  “거짓말하지 말고 개 포기해. 진짜 경찰 부르기 전에. 뒷모습밖에 못 봤지만 당신이란 걸 딱 알겠어. 그 우산이 빼박 증거라고.”

  이놈의 우산……. 처음으로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워졌다. 언제 어느 때든 갑자기 내리는 비를 고객이 맞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다른 가이드와는 차별점을 갖는 거라고. 기다란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게 귀찮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산을 펴면 안테나 역할도 해서 두고 다닐 수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써온 물건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생사람 잡지 마. 나는 오늘 여기에 세 번 왔다고.”

  “자기 죄를 안 밝힌다고? 앞으로 벌어질 일은 모두 당신 탓이야.”

  남자애가 갑자기 뛰어와 내 손에 있던 목줄을 순식간에 낚아챘다.

  “어, 어, 어……. 이봐!”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남자애가 T를 데리고 골목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젠장. 욕을 내뱉으며 그 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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