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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주 Oct 31. 2023

지구 여행 가이드 해랑

2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마당이 있는 단독 주택으로 한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풀들이 아무렇게나 자라 있었다. 집주인이 있지만 관리를 안 한 건지, 아니면 아무도 없는 건지 알려고 며칠 동안 지켜봤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현관문 쪽에 있는 개집이 바로 T가 올 장소였다. 할아버지는 굳이 재개발 지역 같은 곳을 찾아다녔지만, 도심에도 이런 곳이 꽤 있었다.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며 발을 동동거렸다. 벌써 세 시간이 지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안 맞을 수는 있지만 이건 좀 불안할 정도로 늦어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우주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많이 생겼다. 예전에도 지구로 오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매거나 지구의 다른 장소로 가버리거나 아니면 마음이 바뀐 경우도 있었다. 단순히 마음이 변한 건 기분이 나쁜 걸로 끝날 일이었다. 문제는 지구의 다른 곳에 떨어졌을 경우였다. 뭣도 모르고 돌아다니다 우주관리국에 걸리면 내 존재가 들통날 수 있었다. 가이드 예약을 받을 때 입단속을 시키기는 했지만, 고객들이 내게 의리를 지킬 필요는 없었다. 우주관리국에 잡히면 나는 지구에서 추방당하게 될 것이다. 정식 통로로 들어온 게 아니니까.

  휴대용 라디오인 워크맨을 꺼냈다. 안테나 역할을 하는 우산을 펼치고 전원을 켰다. 휴대용은 아무래도 신호를 잡아내기가 힘들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하면 우주관리국의 칩을 뺀 통신기를 구할 수 있었다. 이번에 수고비를 받으면 큰맘 먹고 사려고 했다. 시세가 어떤지, 물건은 괜찮은지 정보를 찾아봤던 게 모두 헛수고가 될 판이었다. 세상에 쉽게 되는 일이 없었다.     


  ―……도 ……착. ……부딪…….     


  겨우 잡힌 신호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다 듣지 않고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렇게 지구 대기권으로 들어올 때 조심하라고 얘기를 했는데도 비행기 아님 새 떼와 만난 모양이었다. 비행기와 만났을 경우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올려다본 하늘은 검기만 할 뿐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며 실시간 뉴스를 확인했다.

  그때 밝은 빛과 함께 뭐가 쾅! 부딪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공기가 폭발하는 듯한 위력에 몸이 뒤로 몇 발자국 밀렸다. 바람이 잠잠해질 때까지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이렇게 요란하게 올 줄은 몰랐다. 지구에 도착할 때 생기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방어막을 설치한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위력이라면 방어막을 만드는 기계가 못 견디고 파괴됐을 것 같았다. 젠장. 그거 하나가 얼만데. 수고비에서 함께 받아내야겠다고 다짐했다.

  먼지가 어느 정도 가라앉아 눈을 떠보니 개 한 마리가 마당 한가운데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개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개가 맞겠지? 레트리버와 웰시코기와 진돗개와 보더콜리, 포메라니안과 몰티즈와 푸들의 특징이 조금씩 뒤섞인 대형견의 모습이었다. 한눈에 그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전체적으로 회색과 검은색 털에 가슴과 다리 쪽에 흰 털이 조금씩 있는 상태라 어둠 속에서도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참고하라고 보내준 개의 모습이 모두 혼합된 상태였다. 그중에 하나만 선택해서 변신하라는 내 말이 잘못 전해진 것이다. 아니면 저 상태를 의도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뭘 잘못했나요?”

  개는 멍멍 짖는 대신 인간의 말을 정확한 발음으로 전했다.

  “어떻게 인간의 말을 그렇게 잘하죠?”

  “혼자 우주를 여행하려면 어떤 말도 번역해 주는 인공지능 트랜스기는 필수죠. 이름은 오토예요. 우주의 모든 언어의 패턴을 모으는 게 꿈이죠.”

  가끔 고객과 말이 안 통할 때 저런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군침이 나올 정도로 갖고 싶었다.

  “좋네요. 하지만 인간들 앞에서는 말하면 안 돼요. 개는 멍멍 짖기만 하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토는 개가 짖는 패턴도 분석했으니까요.”

  “근데 지구에서 숨 쉬는 건 어때요? 처음에는 답답해서 힘들어하는데. 괜찮아 보이네요.”

  지구에 처음 온 고객 중에는 환경에 적응을 못 해 한동안 기침을 하거나 어지러워하거나, 심할 때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일도 있었다.

  “우리 행성은 여행을 많이 해서 호흡기 마스크란 게 있어요. 여긴 없나요?”

  T가 앞발로 자신의 코를 툭툭 건드렸다. 코에 있던 투명한 젤리 같은 게 무지개색으로 빛났다. 할아버지가 봤다면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내게 손재주가 있었다면 할아버지는 마지막에 아무 걱정 없이 눈을 감았을 것이다. 

  “그런 게 있다면 좋겠네요. 일단 수고비 절반은 선불이에요.”

  T에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고객들이 가이드를 받다가 그냥 도망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수고비는 우주에서만 구할 수 있는 광물이나 물건 등이었다. 우주에서는 정작 아무 가치가 없어도 지구에서는 희소성이 있었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올리면 비싼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하나를 팔면 몇 개월은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공식적인 거래소를 통한 게 아니라서 가끔은 가짜를 진짜라고 속일 때도 있었다. 매번 의심할 수 없어서 그 정도는 감수하고 지내야 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일 착수 전과 끝난 후에 수고비를 절반씩 주고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참, 그랬죠. 여깄어요.”

  T가 준 돌멩이 같은 걸 가로등 불빛에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아직 전문가 수준은 아니라 사기를 당할 때도 있었지만. 대충 괜찮은 물건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넣었다. 이런 곳에서 하나하나 따지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일단 가죠.”

  서둘러 T에게 목줄을 채우고 집에 가려고 할 때였다.

  “잠깐! 개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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