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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주 Oct 31. 2023

아이의 숲

1

  수림은 굳게 닫힌 방문을 열었다. 눈앞에 펼쳐진 장관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방 안은 담쟁이덩굴 같은 녹색 식물이 벽면을 타고 올라 장관을 이루었다. 빠진 곳 없이 사각의 네 벽면, 천장과 바닥, 방문 안쪽까지도 담쟁이덩굴에 감싸여 있었다. 수림은 오랫동안 식물을 키워왔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숲으로 이루어진 방은 본 적이 없었다. 녹색 식물의 파릇파릇하고 신선한 향이 퍼져 나왔다. 갑자기 서늘한 기운이 느껴져서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어때? 너도 좀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지? 사람들이 이 방엔 좀처럼 들어가려고 하질 않아.”

  수림은 옆에서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에게 황당한 얼굴로 말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런 건 난생처음 봐요.”

  “그러니까 우리가 널 부른 거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거든. 빨리 어떻게 좀 안 될까?”

  “저도 할 수 있는 게 없는데요.”

  수림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야 넌 식물을 다루는 초능력을 가진 기적의 아이잖아.”

  남자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빙긋 미소 지었다.

  수림은 ‘기적의 아이’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아니라고 해도 다들 그냥 자기 맘대로 믿어버렸다. 기적의 아이라고 불리는 데 귀에 딱지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것은 순전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아파트에서 떨어진 아이가 때마침 돌풍이 불어 휘어진 나무에 걸려 살아난 우연에 사람들은 기적이라며 난리였다. 그 후로 수림은 기적의 아이로 식물을 조종하는 초능력자라고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 그런 엉터리같이 과장된 기사를 믿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얘기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식물 초능력자라고 받아들여졌다. 수림은 자기 의사는 없이 식물을 키우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화분 선물을 주는 바람에.

  “전 그런 능력 없다니까요.”

  “에이. 그러지 말고. 넌 이 방에 있던 아이가 걱정되지도 않아? 아이를 빨리 찾아야 하잖아.”

  수림이 아니라고 해도 남자는 믿지 않고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수림은 어제 만났을 때부터 친한 척 구는 남자가 맘에 들지 않았다.

  남자가 수림을 찾아온 건 어제 오후였다. 남자는 형사라고 소개했지만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 차림새였다. 위아래가 검은색으로 된 운동복을 입고 나타난 그는 옷을 다 빨았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하지만 오늘 옷차림도 어제와 별반 달라진 게 없이 위에 점퍼 하나를 더 걸쳤을 뿐이었다. 담쟁이덩굴이 아이의 방으로 밀고 들어와 하루 만에 방 전체를 휘감아버렸다는 믿을 수 없는 말은 형사라는 사람을 더욱 의심스럽게 만들었다. 반은 거짓일 거라고 생각하며 형사를 따라서 왔는데 이런 광경을 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가 사는 집은 작은 산의 중턱에 지어진 단층 건물이었다. 다행히 그곳까지는 도로포장이 되어 있어서 집까지 바로 올라갈 수 있었다. 집은 판자로 되어 있고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려 땅에 닿은 부분의 나무가 모두 썩어 있는 상태였다. 이런 곳에 사람이 살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색이 다 빠져서 연한 녹색으로 보이는 점퍼를 입고 흙이 묻어 더러워진 통이 넓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군화 같은 신발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서 그가 마당을 돌아다닐 때마다 흙이 뭉텅이로 조금씩 떨어졌다. 그는 신발을 벗고 집안에 들어와 힘이 빠진 듯 방바닥에 털썩 앉았다. 머리를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무척이나 거칠었다.

  “뭔가 더 알아낸 게 있수?”

  그의 말에 형사는 고개를 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씨발, 대체 수사는 하고 있는 거요? 뭐가 진척되는 게 하나도 없잖아?”

  그의 험악한 말에 형사가 수림의 소매를 끌고 밖으로 나가자는 고갯짓을 보였다.

  “우리도 열심히 수사하고 있습니다. 뭔가 있으면 바로 얘기할게요. 뭐, 어디서 연락 온 건 없죠?”

  “참나, 그런 게 있으면 이러고 있을 것 같아? 애가 없어졌다는데, 단순 가출로 무시한 게 문제잖아! 그러니 이렇게 수사가 늦어져서 단서조차 못 찾고 있고. 걔 못 찾으면 모두 다 당신들 탓이야!”

  그가 소리를 지르며 방바닥에서 일어날 기미가 보이자 형사가 수림의 등을 밀었다. 밖으로 나오면서도 형사는 그에게 고개를 숙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수림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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