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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현주 Oct 31. 2023

아이의 숲

2

  수림을 어딘가로 데려갔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실종 신고를 했는데, 바로 수사하지 않았나요?”

  “뭐, 그렇게 됐어. 보면 알겠지만, 그동안 악성 민원인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거든. 주변에 다른 인가도 없고 산 밑으로 내려가려면 아이 걸음으로 반나절은 걸리니까. 그냥 산에서 길을 잃었다고 생각한 거지. 몇 번 그런 일도 있었고 말이야. 어쨌든 벌써 일주일이나 지나버렸으니 어려운 게 사실이야. 언론에 알렸지만 목격자 제보도 없으니까. 지금 우리한테 있는 건 아이 방에 있는 식물밖에 없어.”

  “아이가 실종되면서 방이 하루 만에 저렇게 됐다고요?”

  수림은 믿을 수 없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본인이 신고한 기록이 남아있거든. 그때 신고받은 사람이 미친 사람이 헛소리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아, 다 왔군. 이것도 봐봐.”

  형사가 몸을 피하며 보여준 광경도 아이의 방과 마찬가지로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건지 수림은 자기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다.

  “대체 이건 뭐죠?”

  “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야. 여긴 이틀 전에 수사하면서 찾았어. 사흘 전부터 형사들이 와서 살펴보기 시작했는데. 아이 방 말고도 여기까지 이렇게 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 그래서 급하게 여러 전문가를 불러 봤는데. 잘 모르겠다고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어. 근처에 네가 있다고 하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해 본 거야. 이걸 해결해야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수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면서도 형사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눈앞의 광경에 온 신경을 빼앗겼다. 그곳은 개들이 사육되는 곳으로 몇 개의 구역으로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다. 개밥을 언제 주었는지 빈 그릇들이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었고 개들이 갖고 놀았을 것 같은 바람 빠진 공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들이 없었다. 숲 쪽으로 가까이 둘러 처진 철조망에 담쟁이덩굴이 올라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개들이 누워 있었다. 아니, 담쟁이덩굴을 몸에 뱅뱅 감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기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지도 않았는데 왠지 오싹한 기운이 느껴졌다.

  “개들이 죽었나요?”

  “그래. 저기 옆에 담쟁이덩굴 줄기만 있는데 보이지? 저기에도 개 한 마리가 있었거든. 죽은 개를 처리한다고 했는데, 개를 감은 덩굴이 너무 강해서 떼어낼 수가 없는 거야. 그래서 덩굴을 잘랐거든. 근데 그 순간 덩굴이 살아있는 것처럼 몸을, 아니, 줄기를 움츠리는 거야. 전에 봤는데, 뭐더라? 완전히 살아있는 인간처럼 만지면 갑자기 잎사귀를 팍 모으는 식물이 있었는데…….”

  “신경초요?”

  “아, 맞아! 그거야. 근데 담쟁이덩굴도 그럴 수 있나? 그때 사람들이 너무 놀라서 다른 걸 자를 엄두를 못 내고 있어. 자기들도 저 개들처럼 저주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이 떠돌 정도거든. 개들이 뼈가 부러졌다고 하던데. 어떻게 생각해? 식물이 살아있는 동물을 저렇게 잡아서 뼈를 부러뜨릴 힘이 있는 거야?”

  형사는 정말 궁금하다는 눈빛으로 수림을 바라보았다. 그건 수림이 형사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정말 이게 누가 조작한 게 아니라 진짜 일어난 일인지 말이다. 수림은 형사의 눈빛이 부담스러워 무슨 말이든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솔직히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들은 적도 없고요. 담쟁이덩굴이 개를 잡는다고요? 무슨 판타지 영화도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요. 여기 숲이랑 주변을 좀 살펴봐야겠어요.”

  “그래. 그건 그렇게 하고. 먼저 이 담쟁이덩굴부터 어떻게 좀 해줄래? 다들 꺼림칙해서 손도 못 대고 있거든. 진짜 곤란해서 죽을 지경이야.”

  연신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어색하게 웃는 형사를 보며 이상한 현상 때문이 아니라 오직 담쟁이덩굴을 잘라줄 수 있는 사람을 불러온 것 같았다. 기분이 상했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담쟁이덩굴에 대해서 호기심이 일기도 했다. 수림은 어쩔 수 없이 가위를 받아 담쟁이덩굴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싶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이 보내는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부담스러웠다. 

  담쟁이덩굴은 철조망을 지나 저 너머에 우거진 숲으로 뻗어 있었다. 어떻게 이게 며칠 사이에 여기까지 와서 철조망을 넘어오게 되었는지 어떤 상상도 되지 않았다. 저 너머의 숲으로 가 보면 뭔가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며 담쟁이덩굴을 망설임 없이 잘랐다. 뒤에서 수림의 과감한 손짓에 헉하고 숨을 들이켜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늘어진 고무줄이 탄성에 의해 튕기듯 덩굴의 줄기도 순식간에 철조망을 넘어가 땅에 털썩 떨어졌다. 수림은 이런 탄성을 자연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신경초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탄력이었다.

  나머지 줄기도 연이어서 잘랐다. 그럴 때마다 담쟁이덩굴은 철조망 너머로 툭툭 잘도 떨어졌다. 유전자가 조작된 변형 식물인 것 같았다. 그런 게 아니라면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는 없었다. 그것을 다 자르자마자 뒤에서는 안심하는 한숨과 함께 박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담쟁이덩굴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공포였는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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