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A군의 슈퍼마리오에 대한 불만사항

쿠파!

by 에센

수직낙하해 어디론가 사라지는 수퍼마리오에 관해.


1990년대, 첨단이라는 말은 어색하고 PSP는 아직 이른 시기, 시대를 주름 잡던 게임기가 있었다. 일제 슈퍼패미콤이 그것이었는데, 거기에는 안자면 게임기를 부숴버리겠다는 폭언에도 굴하지 않게 하는 불가사의한 힘이 있었다.


게임팩의 주류는 105 in 1 같은 합본팩이었다. 그 안에는 무려 105가지의 게임이 있었는데, "모든 일은 기초가 중요해-" 라는 듯이 수퍼마리오를 칩셋 깊숙히 품고 있었다. 국제 정세와 기후 변화에 따라 마리오는 너구리가 되기도 날개와 아가미를 달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수퍼마리오도 간단하지만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옳은 쪽으로 끊임없이 전진해 결승점에 도달해야하고(제한시간이 있으므로), 둘째, 적을 살포시 즈려밟아 화면 아래로 떨어뜨려야하고, 셋째, 구멍을 피하고 함정을 조심해야한다.


스릴이 게임의 필수요소라지만 제한시간 내 결승점에 다다르기 위해 싱크홀 위를 펄쩍펄쩍 뛰고, 거북이를 경쾌하게 밟고 버섯도 찍 밟고 패닉에 빠져 달려간다 생각하면, 마리오가 불쌍해서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정교함의 미학을 숭상하는 수퍼마리오의 철학 때문에 퉁퉁한 손을 가진 아이들은 키패드를 움켜쥐고 수없이 오열해야했다. 잘은 몰라도 손이 가늘고 능숙한 아이들도 충혈된 눈으로 신경쇠약에 걸렸을 것이고 꿈 속에서 끝없이 낙하하는 마리오가 되었을 것이다. 또 몇몇은 거북이 공포증, 버섯 거식증에 걸렸을 거다.


이 참에 게임을 더 살펴보면, 이거야 말로 정말 폭력투성이다. 비폭력주의자 거북이가 적의 주력부대이고, 빠알간 꽃은 화주를 마셨는지 불덩어리를(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뿜어대고, 버섯(식재료 아닌가?)은 날아다니며 마리오 척추를 공격한다. 이도 모자라 백수십여 초가 지나면 마리오는 폴짝 뛰더니 죽어버린다. (시간은 돈이라는 자본주의적 죽음) 그리고 씽크홀에 떨어지면 폴짝 뛰고 죽는다. 그 아래 무엇이 있길래? 페르시아 왕자처럼 가시함정에 빠져 죽으면 그나마 미련이라도 없을텐데. 대략 수퍼마리오의 정서는, 밑에는 위험한 것이 있으니 돈이나 딸랑딸랑 벌면서 제한된 삶에서 목표에 다다르라 가 아닐까.


올리브(??)공주를 구해야한다는 궁극적 목표는 정의롭지만 도를 넘게 구태의연하다. 쿠파는 재력가고 올리브한테 나름대로 잘해주는 것 같은데 굳이.. 공주면 바라는 게 또 얼마나 많을까. 점프력이 줄면 이혼당할지도 모르고 위자료는 금화로 감당이 안될게다. 기본포인트에 해당하는 건 금화인데 금화100개가 있으면 목숨 1개가 더 생긴다. 황당한 산수 같지만 금화 100개=목숨1개 라는 공식은 예리한 통찰이다.


폭력성과 구태의연함은 그렇다쳐도 백초 안에 결승점에 들어오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은 정말 불만이다. 시간과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수퍼마리오 제작자가 있다면 백초 안에 초코파이 한 박스를 먹이고 연병장 10바퀴를 돌리고 싶다. 100초 안에 못 들어 오면 폴짝- 뛰게 할테다. 그리고 "당해보니 알겠어?" 라고 말해줄테다. 아마 제작자는 "마리오를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바꾸겠습니다" 라고 빌겠지.


뭐 불후의 게임이니 그럴 필요는 없겠지만 그냥 말해보고 싶었어. '어릴 적에는 꼭 공주를 구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마리오는 그냥 화면 위로 풀쩍 뛰어올라 시계를 꺼놓고, 결승점 따위는 잊고 싶지 않았을까? 빨간 꽃에게 화주도 한잔 받고 거북이와 간디 얘기도 하고 버섯과 유전자조작 식품에 대해 토론하고 싶었던 거 같아. 이끼 낀 파이프 옆에 누워서 얼굴이 달린 태양의 햇빛도 쐬면 좋았을텐데. 그냥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런 기분이 들어.. 시계를 끄고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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