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를 리드할 것인가, 아니면 아날로그로 남을 것인가
고교 시절 친구들 사이에는 단화가 유행했다. 잘 사는 집 아이들은 가죽으로 만든 단화를 신고 다녔는데, 당시 유명했던 금강제화의 랜드로바나 에스콰이아의 영에이지를 선호했다. 나처럼 넉넉하지 못한 형편의 아이들은 합성피혁이나 에나멜로 만든 단화를 신었는데 가죽 제품은 진한 적갈색을 띠었던 반면, 피혁제품은 밝은 황토색 계통이 많아한눈에 봐도 구별이 되었다. 당연히 가죽 단화를 신은 아이들은 매점에 갈 때 당당하게 걸었고 소위 '짝퉁'을 신은 아이들은 랜드로바나 영에이지 그룹이 지나간 후 뒤에서 쫄래쫄래 뒤따라 가곤 했다. 당시 한 창 사춘기를 지나던 시절이었으니 다른 친구들의 옷과 신발에 얼마나 민감했을지 상상이 간다. 요즘으로 따지면 나이키 에어포스 신고 다니는 친구 뒤에 프로월드컵 신는 친구가 따라가는 격이다. 나는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고 나면 반드시 랜드로바를 신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대학에 입학하고도 여전히 랜드로바와 영에이지가 유행을 했다. 나는 입학하자마자 돈을 모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싹 다 바꿨다. 있어 보이는 잠자리 안경에 재킷, 와이셔츠, 양복바지에 랜드로바 단화를 신고 대학생용 가죽 가방을 들고 당당하게 집과 학교를 오갔다. 당시 최고의 유행이라던 대학생 패션을 완성하고 나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서 1학년 내내 기분이 좋았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고, 2년 2개월이 지난 후 제대를 하였다. 대학으로 복학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하여 약간의 돈을 모았고 영어 공부도 하고 책도 읽으며 여유롭게 지냈다.
신학기가 시작되고 나는 1학년 시절의 패션을 유지한 채로 복학하였다. 깜짝 놀랐다. 나처럼 입고 다니는 친구들이 없었다. 세미 정장 스타일에 대학 가방, 밤색 단화를 신고 캠퍼스를 활보하던 시대가 지난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이 문화 트렌드를 바꿔 버렸다. 도서관에는 '컴퓨터'라는 것이 비치되어 있었고, 그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이라고 하는 신문명을 활용하는 학생들이 즐비했다. PC 통신이라는 신개념 소통 장치가 등장했고 사람들은 파란 모니터 화면을 통해 익명의 존재와 e-mail이라는 무형의 편지를 빠르게 주고받고 있었다. 이른바 '3차 산업혁명'의 시대, '디지털 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최고의 동아리는 단연 컴퓨터 동아리였다. 이 친구들은 나처럼 문명에 뒤떨어지는 학생들을 모아 컴퓨터 배우기 과정을 도와주었고, 학교에는 전산실이라는 방이 생겨 그곳에서 문명의 이기를 맘껏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세종대왕'님과 '세 개의 보석'이 우리나라의 디지털 흐름을 이끌어 가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최신 트렌드를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나만의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딱 하루 동안 심각한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렸다.
다음날, 나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안경은 왕잠자리에서 슬림형으로 바꿨다. 처음 써 보니 불편했다. 왕잠자리 안경을 쓸 때는 눈을 아무렇게나 돌려도 세상이 잘 보였지만, 슬림형 안경은 크기가 왕잠자리의 반밖에 되지 않아서 눈을 돌리면 바로 안경의 시야를 벗어났다. 눈 대신 고개를 돌려야 하는 조금 불편한 상황을 견뎌야 했다. 대신 훨씬 맵시 있고 세련된 이미지를 내게 선사했다. 시골 청년이 차도남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재킷과 양복바지를 벗어버리고 후드티와 청바지로 갈아입었다. 아끼던 랜드로바 단화를 과감히 벗어버리고 최신상 르까프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거울 앞에 선 나는 무척 낯설었다. 너무 빠른 시기에 나의 외모를 '전면 개편'하고 나니 내가 아닌 것 같았고 나의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 하루를 고민했다. 하지만 이번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시대에 뒤처지느니 차라리 시대의 트렌드를 온몸으로 경험해 보기로 결심했다. 오히려 한 발 더 나아가, 나는 '아이와(aiwa)'라고 하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허리춤에 꽂았고, 매일 아침 [오성식의 굿모닝팝스]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피 같은 사재를 털어 자전거를 샀고 신나게 캠퍼스와 인근 동네를 누볐다. PC 통신 하이텔과 유니텔, 천리안에 가입했다. 그리고 나만의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이 모든 것이 한 학기 만에 다 이루어졌다. 복학생 하면 떠오르던 특유의 어수룩하고 꺼벙한 이미지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파이스 걸스의 'Wannabe'를 들으며 캠퍼스 도로를 달리는, 제법 괜찮아 보이는 대학생이 있을 뿐이었다.
30여 년이 지나, 나는 또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매년 새로운 트렌드가 소개되고 있고, 자고 나면 처음 보는 아이템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전히 나는 새로운 선택과 도전을 감당해 내야 한다. 주변 지인들은 '그래도 아날로그 시절이 즐거웠다'라며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곤 한다. 지금도 특별한 날에는 손 편지를 주고받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의 랜드로바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렸고 알파 세대의 메타버스 시대가 도래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선택은 여전히 앞을 보고 있다. 시대의 트렌드에 뒤처져 신문명의 미아로 남아 헤매기보다는 제페토 할아버지와 친해지는 중이다. 이프랜드에 가입 후 젊은 캐릭터로 변신해 힙한 옷들로 갈아입고 사이버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빠르게 회전하는 '디지털 목마' 속에서도 X 세대가 탑승할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마음만 먹으면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이전 세대들이 신인류의 문화와 트렌드를 익힐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자연인으로 돌아가고픈 랜드로바 세대이지만 나는 아직 문명의 버스를 타고 좀 더 새로운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르까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