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루틴과 성공
매주 일요일엔 나만의 루틴이 있다.
아침 7시에 교회에 도착하여 찬양대실 내에 있는 락커를 열고 가운을 꺼내 파트별로 옷걸이에 정렬해서 놓는다. 9시 정각에 찬양 대원으로서 예배를 드리고 구역 목사님과 지인 집사님들을 뵙고 약간의 시간 동안 교제를 한 뒤 식사를 하고 집으로 온다.
보통은 이런 일과가 나의 주일 루틴인데 오늘은 한 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12시 교회 식당 내 설거지 봉사가 그것이다. 이전에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안쪽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시는 분들을 보면서 어느 그룹에서 오신 분들일까 궁금해했는데, 어느덧 나도 봉사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순서에 따라 식당 봉사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식사를 하고 가족을 마을 도서관에 내려 준 후 교회로 향했다. 옷을 갈아입고 고무장갑, 앞치마, 그리고 장화를 신었다. 영락없이 '생활의 달인' 코스프레이다. 잠시 후 교회 영상 담당 집사님께서 멋진 카메라를 가지고 와서 사진을 몇 컷 찍어 주셨다. 어수룩하던 나의 자세에는 어느덧 식당 사장님의 포스가 뿜어져 나왔다. 젓가락을 한 움큼 쥐어들고 두 눈을 부릅떴다. 어쩜 이렇게 연출을 잘해 낼까? 아무래도 연기 분야로 진출할 걸 그랬나 보다.
한 시간 반 정도 열정적으로 설거지를 한 뒤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가서 보니 옷과 양말이 젖어 있었다. 몰려드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정신없이 씻어내다 보니 물이 장갑과 장화 속으로 들어온 줄을 몰랐나 보다. 한 편으로는 뿌듯함과 보람이 차올라 옴을 느꼈다. 어딘가에서 봉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식당에서 한 집사님이 챙겨주신 귤 두 개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아빠를 맞아 주면서 '무슨 일을 하고 오셨냐'라고 묻길래 식당에서 설거지 봉사를 열심히 하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설거지만 하시네요. 하하하!"
"... "
요 녀석 봐라? 아빠가 무슨 '당신은 설거지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보이니? 조금 황당해서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길에 주방을 보니 설거짓거리가 남아 있었다. '아차!'
아침에 급히 나가느라 어제저녁의 설거짓거리를 미처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교회에서 설거지 봉사를 하고 온 것은 잘한 일인데, 집안 설거지도 해결하지 못한 채로 교회 설거지 봉사한 것을 자랑한다고?
잠시 고민을 해 본다.
오래전 한 TV 토크쇼에서 유명 인사가 출연한 적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 남자에게 토크쇼 진행자가 질문을 던졌다.
"이렇게 성공한 아빠를 보면 아드님께서 무척 자랑스러워하겠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담담히 대답하였다.
"제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사실 가정에서는 그렇게 좋은 아빠나 좋은 남편으로 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밖의 일에만 신경 쓰느라 가정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진 못했거든요."
남자들은 '성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가끔씩 착각하는 것이 있다. 바로 '성공은 밖에서 유명해지는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유명해지기 위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다니고 유명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여기저기 퍼 나르며 자랑한다. 때로는 유력한 자와의 연줄을 자랑하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유명인과 사진을 찍고 그 사람의 사인을 받기 위해 한나절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랑하는 가족과 식탁에 앉아 1-2시간 대화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성공이라는 단어는 받아들이는 자마다 다르기에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돈, 명예, 권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논할 수 있고, 각 분야에서 성공했다고 지명된 사람들의 책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가 각 서점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빠르게 올려지기도 한다.
과연 성공이란 무엇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철학자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진정한 성공을 '평화로운 상태에 놓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평화로운 상태를 얻으려면 '주체의 삶을 회복하고 타인이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된다'라고 말한다. 성공을 외적인 명성 속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이 인정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외부에 의해 흔들리는 '일시적 성공'이 아닌 진정한 나만의 '영속성 있는 성공'을 이룰 수 있다.
우리 집 설거지를 먼저 끝내고 다른 곳의 설거지를 해보자. 외부의 설거지를 먼저 하고 우리 집 설거지를 하려면 미안한 마음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집, 우리 가족을 먼저 챙겨 보자. 남들은 좋을 때나 이웃사촌이지 힘든 상황이 생기면 자기네 가족 먼저 챙기기 바쁘다. 내가 힘들 때 나를 먼저 챙겨줄 수 있는 사람들, 그게 바로 가족이다.
난 오늘도 저녁 설거지를 할 예정이다. 설거지 루틴을 실천 중이지만 오늘은 왠지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 설거지에 관한 한 우리 집에서 나보다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 없다. 설거지를 하고 주방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면 서서히 내적으로 평화로운 상태에 이른다.
이렇게 본다면 적어도 설거지 분야에 있어서는, 나는 제법 성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