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학년 2학기는 정신없이 흘러갔다.
제로에서 다시 시작한 취업 준비. 하루 종일 채용 공고를 확인하고 자소서를 쓰고 또 고쳤다.
인적성 공부까지 더해지니 내 하루는 온통 취업으로 채워졌다.
다행히 토익은 미리 점수를 확보해 둔 덕분에, 자소서와 인적성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서류 전형은 줄줄이 붙었다. 정작 가고 싶은 회사를 깊게 고민하지도 않았다.
그저 “어디든 취업만 하면 된다”는 절박함에 무지성으로 원서를 넣었다.
합격 메일을 받을 때마다 자신감이 조금씩 올라갔다.
대학 시절 내가 해온 것들이 서류 통과 100%라는 성적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서류 전형 따위는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는 걸.
진짜 문제는 인적성이었다.
인턴 생활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고, 원래도 약한 영역이었다.
결과는 뻔했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기업들의 시험을 봤지만, 줄줄이 탈락이었다.
등에 식은땀이 배었다.
“여기서 또 떨어지면 갈 곳이 없다.” 초조감이 점점 커져갔다.
그때 다가온 게, 지금까지 13년을 몸담게 될 회사의 인적성 시험이었다.
이번만큼은 집중했다.
문제 하나하나를 붙잡았고, 인성 검사마저 진지하게 임했다.
다른 회사 일정은 이미 끝난 뒤였기에, 이 시험이 마지막 기회였다.
2012년 10월 말,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인적성 시험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면접 준비 안내 드립니다.’
처음 받아보는 인적성 합격 통보였다.
심장이 뛰었다.
“여기다.”
곧바로 전공 면접 대비 족보와 회사 관련 자료를 결제하고 출력했다.
찌르면 대답이 튀어나올 정도로 달달 외웠다.
26년 인생에서 가장 집중했던 시기였다.
그러다 최종 면접 하루 전, 사고가 터졌다.
친구와 연습하던 중, 자소서 안에 다른 회사 이름이 그대로 적혀 있던 걸 발견한 것이다.
“야, 이 미친놈아. 내일 면접 보러 가는 놈이 이걸 놓쳤냐?”
욕설이 쏟아졌다. 머리가 핑 돌았다.
면접에 가야 할지, 가서 욕만 먹고 오진 않을지... 온갖 걱정이 덮쳐왔다.
결국 나는 자소서 걱정을 품은 채 면접장으로 향했다.
KTX에서 정장을 입은 수많은 학생들이 내리자마자 택시를 잡았다. 모두 면접자였다.
경쟁률은 3:1. ‘나는 그 1이 되겠다.’ 속으로 다짐하며 회사 입구로 들어섰다.
자소서에 다른 회사 이름을 적어둔 채. 지금 돌이켜보면 어디서 그런 당당함이 나왔는지 모르겠다.
면접은 의외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면접관들은 자소서를 깊게 보지 않았고, 정해진 질문만 던졌다.
나는 적극적으로 대답하며 면접을 마쳤다.
그리고 2012년 11월 14일.
집으로 돌아와 졸업 과제 모임을 마치고 있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2013년 신입사원 최종 면접 결과 발표”
발끝에서부터 전기가 올라오는 듯했다. 숨을 고르고 컴퓨터를 켰다. 메일함을 열어 재빨리 눈을 훑었다.
“최종 합격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순간 온몸의 힘이 빠졌다. 다섯 번은 더 확인했다. 이게 진짜일까.
곧장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저녁시간이라 고깃집은 분주했지만, 이번만큼은 미룰 수 없었다.
“어머니! XX 합격했어요!”
잠시의 정적 뒤, 들려온 울먹이는 목소리.
"...... 고생했다.”
나도 눈물이 터졌다. 그 한마디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아들에 대한 미안함, 그럼에도 잘 버텨낸 나에 대한 고마움.
그렇게 나는 소원을 이뤘다. “적어도 대기업 하나만이라도 붙자.” 그 바람이 현실이 되었다.
이제 나는 신입사원 연수를 준비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