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전 연인이 꿈에 나왔다.
이제는 남이 되어, 소식조차 끊긴 그녀가.
꿈의 줄거리는 흐릿하고,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또렷한 게 하나 있었다.
바로 그녀의 얼굴, 그리고 그 눈빛.
한때 내가 마음을 줬던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처럼,
그녀의 얼굴은 너무 생생했다.
이별 직전, 우리는 여행을 갔다.
툭툭 부딪히면서도 끝내 끈을 놓지 않았던 그 시절.
그리고 마지막 밤,
우리는 마치 처음처럼 서로를 안았다.
익숙하고 따뜻한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녀의 눈빛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제 곧 멀어질 나를
안쓰럽게 바라본 건 아니었을까.
이미 그녀의 삶에서 나는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나 역시, 그 끝을 어렴풋이 직감했기에
그 눈빛이 더 깊이 각인된 건 아니었을까.
그녀와의 이별은
내게 사람과의 거리를 두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감정을 열기보다,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
그런 그녀가
가끔 꿈에서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아직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다.
한때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감정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그래서일까.
찝찝한 꿈이었지만,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실제 그녀가 아니더라도,
내 감정의 조각 하나가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줬으니까.
그리고 이제,
그녀를 떠나보낸 지금
이런 마음으로 그때를 돌아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